표 “최악의 20대 국회 책임 지겠다… 조국 사태에 불면의 밤”
與 “나가야 할 중진들 꼼짝 않고, 꼭 필요한 분들이…” 침통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여권이 종일 술렁였다. 같은 당 이철희 의원도 지난 주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터라, 여당 의원들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렵사리 영입한 스타 초선 의원들이 줄줄이 ‘탈진’을 호소하며 떠나는 여의도에는 누가 남을까. 한국 의회 정치에는 어떤 희망이 있을까. 정치적 미래가 보장된 두 초선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던진 난문에 총선을 6개월여 앞둔 여당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표 의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국회가 정쟁에 매몰돼 민생을 외면하고 본분을 망각했다”며 “사상 최악의 20대 국회,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표 의원은 “사상 최저라고 알려진 법안 처리율, (야당의 국회 회의) 20여 회 보이콧, 패스트트랙 처리를 둘러싼 폭력과 회의 방해 사태, 막말과 무례와 비방과 억지 독설들”을 비롯한 국회의 구태를 조목조목 열거했다. 이어 “여야 각자 나름의 이유와 명분은 있겠지만, 국민 앞에 내놓을 변명은 없어야 한다”며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반성과 참회를 하고, 저는 제가 질 수 있는 만큼의 책임을 지고 불출마의 방식으로 참회하겠다”고 밝혔다.
표 의원의 입장문에는 ‘정치를 하는 이유’를 끝내 찾지 못한 고민과 회의가 가득 담겼다. 표 의원은 “정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다짐,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않고 오직 정의만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겠다는 초심이 흔들리고 위배한 것은 아닌가 고민, 갈등, 아파하며 보낸 불면의 밤이 많았다”며 “합리화를 해도 분명 객관적 ‘정의, 공정, 기준’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었을 것”이라고 반성했다. 이어 “하나하나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4년의 임기를 끝으로 불출마 함으로써 그 총체적 책임을 지고자 한다”고 했다.
표 의원은 이날 오후 의원회관에서 취재진을 만나 “미리 말하면, 출마하라고 하실 것 같아 (지도부에는) 10분 전 말씀 드렸다”고 했다. 또 “(조국 정국에서) 무척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고 괴로웠다”며 “우리가 그간 그렇게 공정, 정의를 주장했는데 내로남불로 비쳐지는 게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젊은 세대, 청년들이 느꼈을 실망감이 너무 가슴 아팠고, 30년 가까운 평생을 경찰, 프로파일러로 살았는데 수사 절차에 있어 독립성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주고 싶어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여당 의원으로서 검찰 수사에 날을 세우는 것이 심한 내적 갈등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는 “제 개인의 감상이나 생각, 갈등 때문에, 우리 당이나 정부,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텼지만 법사위는 지옥 같았다”고 돌이켰다.
표 의원의 갑작스러운 불출마 선언에 여당 의원들은 침통해 했다. 한 중진 의원은 “극구 말렸는데 표 의원이 기어코 마음을 먹었다”며 “정작 나가야 할 사람들은 복지부동인데 훌륭하고 유망한 초선들이 떠나고 있어 큰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같은 초선인 박찬대 의원은 페이스북에 “표 의원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다. 부럽기도 하고. (…) 밥 생각도 없다"고 적어 어수선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불출마가 알려진 직후 여당 의원들의 모바일 단체 채팅방에는 “이 불출마 반대일세” 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철희, 표창원 의원의 연쇄 불출마 선언은 암담한 정당 정치의 미래에 시사점을 던지며 종일 여의도를 동요시켰다. 개혁 성향의 두 의원은 대중 인지도와 전문성을 두루 갖춰 정치권의 자산으로 평가돼 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이었던 2015년 공들여 영입한 의원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변이 없는 한 차기 총선 공천을 받을 것으로 점쳐졌음에도 ‘자발적’ 불출마를 택했다. 정치 생명이 강제 종료될 위기에 처한 다선 의원이 아닌, 한창 주가가 높은 초선 의원들이 연달아 불출마를 택한 이례적 상황이다.
‘국회의원의 금배지 = 권력의 정점’이라는 구세대의 공식이 깨지는 시그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두 의원은 불출마의 변에서 “무기력에 길들여지고, 절망에 익숙해졌다.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기조차 버겁다. 이미 소진됐다”(이 의원)거나 “병역 의무를 치르는 느낌으로 지치고 소진됐다”(표 의원)고 토로하며 막막한 무기력함을 호소했다. 두 의원 모두 국회 법제사법회원회 소속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 참여했다. 때문에 ‘조국 사태’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며 정치의 실상을 목격한 것이 불출마 결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나왔다.
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전문성과 스타성을 갖추고 노력하는 초선들이 재선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면서 “당을 위해 퇴진을 결단해 주셔야 할 중진들은 출마 의지를 다잡고, 초선들이 지쳐서 불출마를 밝히는 현 상황이 씁쓸하다”고 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정지용 기자 cdrag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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