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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 혼자 앓다 마음 수렁에… 젊으니까 안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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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 혼자 앓다 마음 수렁에… 젊으니까 안 괜찮아요”

입력
2019.10.24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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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준을 바꾸는 ‘청년 개척자’들] <2>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

4년째 청년 마음건강 정책 제안하는 김희성씨

4년째 청년 마음건강 정책을 제안해온 김희성씨가 22일 서울시청에서 “이삼십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현실이 더 이상 우리의 미래가 되어선 안 된다”며 “더 이상 청년이 아프지 않은 건강한 미래를 위해 청년 마음건강 증진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4년째 청년 마음건강 정책을 제안해온 김희성씨가 22일 서울시청에서 “이삼십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현실이 더 이상 우리의 미래가 되어선 안 된다”며 “더 이상 청년이 아프지 않은 건강한 미래를 위해 청년 마음건강 증진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우리 사회는 청년의 아픔을 인정하는 데 인색합니다. 젊을 때니 다 괜찮다고, 마음이 나약해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건강은 자기관리의 문제라는 ‘자기책임론’, 취직만 하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취업 만능론’은 청년과 건강을 분리하는 거대한 장벽이 되고 있죠.”

올해로 4년째 청년의 마음건강을 위한 정책을 제안해 온 김희성(30)씨가 말했다. 청년들의 건강을 도외시한 결과 이삼십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현실에 마주했다는 것이다. 22일 서울시청에서 만난 김씨는 “청년의 마음건강이 악화되고 자살률이 느는 건 한국 사회가 그만큼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일종의 경고음”이라며 “청년이 왜 아픈 건지 들여다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모든 게 사회구조적으로 켜켜이 쌓인 문제가 곧바로 청년 세대를 관통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얘기다. 단순히 개인이나 세대의 척도로 청년 문제를 보는 시각에도 선을 그었다.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청정넷) 운영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주변에서 혼자 앓다 마음의 수렁에 빠지는 청년들을 많이 봐왔다. “누구나 일상적으로 우울이나 불안을 겪을 수 있어요. 다만 이러한 감정이 적절히 해소되지 못해 독소처럼 쌓이거나 사회적 관계망에서 고립되면 실제 질병으로 이어지는 거죠.” 특히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 상경한 청년은 더욱더 혼자되기가 쉽다. 언제든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생활권 내에 서로 마음을 돌봐줄 수 있는 또래가 필요한 이유다. 김씨는 청소년 또래상담처럼 편하게 고민을 터놓을 수 있는 청년 마음건강활동가 양성을 계속해서 요구해 왔다.

무엇보다 이미 아픈 후에 치료하는 현재의 공공 지원 체계로는 충분치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마음건강에도 골든타임이 있어요. 그저 혼자 감내하거나 문제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요. 의학적으로 주요한 정신질환은 10대 중ㆍ후반~20대 초ㆍ중반 많이 발생하는데 이때 치료 시기를 놓치면 만성질환으로 가기 쉽다고 해요.” 일상 생활이 가능하지만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 정책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음건강의 위기를 당연히 치료받아야 하는 감기 정도로 여기는 인식 개선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문제의식은 청정넷 활동을 하면서 구체화됐다. 4년 전 처음 마음건강 문제를 제기했을 때만 해도 홀대받기 일쑤였다. 그후 몇 년 새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 ‘자존감 수업’, ‘미움 받을 용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무례한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 등이 오르내릴 정도로 마음건강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올해 청정넷 내 9개 분과 아래 소주제별로 모인 35개팀 중에서도 ‘마음건강&관계건강’에 가장 많은 청년(56명)이 몰린 것도 이를 증명한다.

청정넷 운영위원장이기도 한 김희성씨는 “청정넷 활동을 하게 되면 1년짜리 민주시민 교육을 받는 셈”이라며 “단순히 나만의 문제가 아닌 공통의 문제를 찾아 협의하고 토론하면서 갈등 조정도 하게 되는데 이전 청년들은 경험해볼 수 없는 일들”이라고 강조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청정넷 운영위원장이기도 한 김희성씨는 “청정넷 활동을 하게 되면 1년짜리 민주시민 교육을 받는 셈”이라며 “단순히 나만의 문제가 아닌 공통의 문제를 찾아 협의하고 토론하면서 갈등 조정도 하게 되는데 이전 청년들은 경험해볼 수 없는 일들”이라고 강조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올 한 해 이들 청년은 크게 △청년 건강 증진 기반 구축을 위한 청년건강팀 신설 △예방 차원의 마음건강사업 편성 △건강 관리 비용 부담 완화 등의 내용을 담아 ‘서울형 청년 건강 증진 종합대책’으로 정리했다. 김씨가 대표로 지난 8월 열린 서울청년시민회의에서 제안한 정책이다. 서울시는 이중 일부를 받아 내년부터 마음이나 신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청년 5,000명에게 상담료 등을 지원하는데 예산 20억원을 편성했다. 인식개선 사업과 생활체육 커뮤니티 운영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앞서 지난 5월 청년 건강 증진 관련 조항이 추가된 청년기본조례 개정안이 시의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데에도 김씨를 비롯한 청년들의 노력이 있었다.

“자발적으로 모인 청년들이 정책 제안을 했을 때 단순히 아이디어 수렴이나 청취 정도로 끝나지 않고 실제 정책으로 반영하기 위한 민관 협력의 협치 구조를 만들었다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서울시의 뉴딜일자리사업 중 하나인 청년혁신활동가 양성 사업에 참여했다가 청정넷과 인연을 맺은 김씨는 “나부터가 정책 대상자였다가 이제는 정책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실제로 변화를 만들고 경험하면서 큰 효능감을 느낀다”고 했다. 당사자인 청년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일자리 중심이던 기존 청년 정책은 청년들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청정넷 활동을 ‘1년짜리 민주시민 교육’에 비유한 그는 청정넷 홍보도 잊지 않았다.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서울청년주간’입니다. 그간 청년 활동과 청정넷이 궁금한 분들은 특히 11월 2일 연세로를 꼭 찾아주세요.”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N포, 무기력, 정치무관심, 각자도생… 우리 사회가 청년을 규정하는, 익숙한 수식들이다. 그런 가운데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빛을 내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쉽게 지워지고 만다. 한국일보가 더 많은 변화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나선 청년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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