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주무관이자 추리소설 쓰는 송시우 작가 
송시우 작가는 최근 방영된 OCN 드라마 ‘달리는 조사관’의 원작자이자, 현직 인권위 공무원으로서 드라마 자문도 겸했다. 송 작가는 “캐스팅이 정말 상상한 그대로였다”고 했다. 왕태석 기자

30년 만에 범인이 특정된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진범의 존재를 비롯해 복합적인 충격을 안겼다. 피의자 이춘재가 8차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라고 진술하고 나섰고,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이미 복역을 마친 당사자가 수사 과정에서의 가혹행위와 강압수사를 밝히면서다. 진술의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열악했던 대한민국의 수사 상황과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논의를 재점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18일부터 방영 중인 OCN 드라마 ‘달리는 조사관’에는 경찰의 관행적인 강압 수사로 교도소에 수감된 외국인 노동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화가 나온다.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인권증진위원회’ 조사관들이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인권증진위원회는 가상의 조직으로 등장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모델이다. 드라마는 2015년 출간된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밑그림 삼았다. 현직 인권위 정책교육국 사회인권과 주무관인 송시우 작가의 작품이다.

‘달리는 조사관’으로 대중에게 널리 이름을 알렸지만, 송 작가는 추리소설 분야에서는 일찌감치 주목을 받아왔다. 2008년 단편소설 ‘좋은 친구’로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첫 장편소설 ‘라일락 붉게 피는 집’이 추리소설로는 드물게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선정됐다. 송 작가의 출간작 모두가 영상화 저작권 계약을 맺었다. 가히 한국 장르문학의 기대주라 할 만하다. 드라마 ‘달리는 조사관’의 방영과 더불어 신간 ‘대나무가 우는 섬’을 내놓은 송 작가를 16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소설과 드라마 속 ‘국가인권증진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모델로 한다. 등장인물들은 억울한 사연을 가진 피해자들을 위해 발벗고 나선다. OCN 제공

“인권위에 다닌다고 하면 다들 추리소설 쓰기 좋은 직장에 다닌다고들 하지만 처음에는 오히려 절대 인권위를 소재로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조직에 누를 끼칠까 걱정됐죠. 그러다 2012년에 처음 단편소설에 인권위 얘기를 녹였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생각해보면 인권위를 배경으로 추리 소설을 쓸 사람이 나밖에 더 있나 싶기도 했고(웃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인권위를 등장시킨 소설을 썼습니다.”

송 작가는 2001년 인권위 설립 당시 민간인 특별 채용에 응시해 인권위에서 일을 하게 됐다. 작가 데뷔는 2008년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해서 윤리나 정의, 인권 같은 추상적 가치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97학번인데 당시는 시민운동이나 인권운동, NGO운동이 막 활발해지던 때였습니다. 인권위에 취업하고 처음 6년간을 ‘달리는 조사관’ 내용처럼 조사관으로 일했어요. 그때의 경험이 소설의 바탕이 됐습니다. 주변에서 소재 제보를 많이 해주기도 하고요.”

소설에는 유령 정치인의 성추행 공방, 경찰 테이저건 사격에 의한 피해, 강압수사에 의한 억울한 옥살이 등 한국인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인권위가 이렇게까지 사회 전방위적으로 일을 하는 기구였나 새삼 놀랄 정도다. 인권위의 방대한 ‘업무 영역’은 한국 사회만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인권 체계가 이미 잡혀있는 나라에서 국가 인권기구는 보통 차별 사건만을 다뤄요.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는 자정기구가 따로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부터 정신병원, 아동보호시설, 군대, 등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와 차별 사건을 모두 인권위가 맡아요. 최근 들어 국가나 공권력에 의한 침해 사건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정신질환자 차별과 성소수자 혐오 같은 이슈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권 상황이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해요.”

송시우 작가의 대표작들. 왼쪽부터 '라일락 붉게 피던 집', '달리는 조사관', '검은 개가 온다', '대나무가 우는 섬'

송 작가뿐만 아니라, 판사 출신의 도진기 작가나 현직 신문기자인 최혁곤 작가 등 추리소설 분야에서는 직업 전문성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많다.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미스 함무라비’의 문유석 판사도 자신의 경험을 살려 법정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다. 송 작가는 “디테일과 전문지식 활용 등에 있어서 확실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인권위 내부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인권위를 알리고 홍보해주는 걸 고마워하세요. 다만 사무실 세트가 너무 호화롭다거나 과장 방이 따로 있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을 하기도 하지만요. (웃음)”

‘달리는 조사관’이 인권위 조사관이라는 생소한 직업을 등장시킨 작품이었다면, 신작 ‘대나무가 우는 섬’은 정통 추리소설을 추구한다. 사람들이 섬마을에 고립된 가운데 시체가 발견되고, 그 중 범인이 있다는 ‘클로즈드 서클(Closed Circle)’ 클리셰를 이용한다. “오락성 강한 본격 미스터리를 써보고 싶었고, 기왕 쓰는 거 클래식 중의 클래식으로 가보자 싶었어요. 우리나라는 섬이 300개에 달하는 반도국인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클로즈드 서클 추리소설은 별로 없거든요.”

송시우 작가는 평일에는 인권위 주무관으로 일하고, 주말에 소설을 쓴다.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일과 소설 말고 다른 취미생활이 없어서 괜찮다”며 웃었다. 왕태석 기자

인권위 소속 주무관이자 추리소설 작가로서, 송 작가의 꿈은 두 가지일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의 인권 상황이 나아지는 것, 더불어 한국 추리소설의 발전이다. “일단은 추리소설이니까 재미로 즐겨주시되, 다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질문 하나 정도가 남는 것. 그게 제 바람입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