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기립박수 생략은 ‘관례’로 자리잡아 
 미국선 연설 중 고함 쳤다간 사과문 내야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와 지도부가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 중 손으로 X를 만들고 있다. 뉴스1

“조국! 조국!”

문재인 대통령의 22일 국회 시정연설 도중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한국당 의원들은 단상 위에 서 연설 중이던 문 대통령을 향해 두 손으로 엑스(X)자를 그리고 귀를 막거나 “사과부터 하세요”, “말도 안 된다”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한국당 의원들의 고성을 덮기 위해 박수 소리를 높이면서 국회 본회의장이 극도로 시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늘 갈등과 반목을 거듭해 온 대한민국의 정치사에서도 대통령의 국회연설에서 이처럼 큰 소리를 지르며 반박한 전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2017년 문 대통령의 첫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검은색 상복과 ‘근조’라고 적힌 리본을 착용하고 항의 현수막을 펼쳤지만, 연설 도중엔 대부분 침묵했죠. 이를 둘러싸고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한국당에선 “과거 민주당이 야당일 때도 그랬다”고 맞서고 있는데요, 과연 과거 대통령들의 국회연설 풍경은 어땠을까요.

 ◇대통령은 갈수록 국회 자주 찾는데… 의원들 반응은?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본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은 통상 재임 중 신년 연두교서 발표와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을 비롯해 10여 차례 국회에서 연설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마다 국회를 찾은 횟수는 천차만별입니다. 노태우ㆍ노무현 전 대통령은 4번, 김영삼ㆍ박근혜 전 대통령은 3번, 김대중ㆍ이명박 전 대통령은 단 1번의 연설을 가졌습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3년 연속으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에 서면서 벌써 4번째 연설을 했습니다. 이전에는 총리의 대독이 당연시됐지만, 점차 대통령이 직접 국회에서 연설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것이죠.

대통령은 이전보다 더 자주 국회를 찾지만 정작 이를 맞이하는 국회의원들의 태도는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사실 대통령이 국회에서 그 해의 국정운영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신년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방식을 처음 도입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당시엔 야당도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해 직접 발표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참석했고 대통령의 입장과 퇴장 때 기립박수의 예의도 지켰습니다.

야당의원들이 박수를 치지 않는 모습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처음 보이기 시작했는데요, 1993년 11월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의원들은 쌀 수입 개방정책에 반대해 당초 본회의장에 불참했다가 대통령의 연설 도중 줄지어 입장했습니다. 2003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들어설 때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은 박수를 보내지 않았죠.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낸 여당 의원들과는 달리 한나라당 의원은 수 십여 명만 기립했고, 연설 도중 여기저기서 잡담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첫해(2008)에 국회를 찾았을 때에도 역시 박수는 없었는데요, 대신 ‘현수막’이 등장했습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서민 살리기가 우선이다’ 등이 적힌 현수막을 의석에서 펼쳐 보인 후 단체로 퇴장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7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정운영과 예산편성에 관한 시정연설을 하는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이 항의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류효진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를 찾았을 때 야당의 항의 규모는 더욱 커졌습니다. 국정교과서 문제가 쟁점이던 2015년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의원들은 ‘국정교과서 반대’ ‘민생우선’이라고 적힌 종이를 의석마다 설치된 모니터에 붙였습니다. 그 다음해 2017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할 때에도 일부 야당 의원들은 비선실세 의혹을 제기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었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가 바뀔 때마다 서로 대통령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고 탓하는 일이 반복된 셈이죠.

 ◇미국선 야유 보냈다가 ‘사과성명’ 내기도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요. 국회연설을 하는 대통령을 향한 야유, 흔한 일일까요.

버락 오바마(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2009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을 하던 도중 손짓을 하자 조지프 바이든(왼쪽)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오른쪽) 하원의장이 손뼉을 치며 환호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2009년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를 찾았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과 관련한 특별연설 중 “거짓말이야”라는 고함이 끼어들었습니다. 공화당 소속 존 윌슨 하원의원의 목소리였죠.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저분의 주장이야말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응수한 후 연속을 계속했습니다. 이후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대통령을 모독하고 의회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였다는 것이죠. 오바마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은 물론 야당인 공화당 의원들도 한마음이었죠. 220년 미 하원 역사상 처음으로 그에 대한 비난결의안이 채택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윌슨 의원은 성명을 통해 “의원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동을 한데 대해 반성하며 대통령에게 사과한다”고 밝혀야 했습니다.

국내 정치권에서도 한국당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23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 보낸 한국당의 야유를 두고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국민과 대통령께 사과해야 한다. 그러한 정치를 하니 문 대통령은 ‘야당 복 있다’ 하며 한국당 지지도가 떨어진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불만이 있더라도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예우”라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우리는 대통령의 예우로 기립했고 박수를 보냈다”고 했습니다.

여당인 민주당 소속 정성호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보여준 일부 야당의 모습은 너무나 부끄럽다”며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국가와 국민의 대표이고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입법부의 품격은 없다”고 쓴 소리를 했습니다.

국회서 이뤄지지만,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그들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새해 예산안을 설명하는 시정연설은 세금을 내는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국정 전반을 직접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한다는 의미가 크죠.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국회와 국민에 대한 존중이라면 마땅히 국회의원들 역시 예의와 존중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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