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 인터뷰… “수사권 조정, 반드시 매듭짓는 게 소원”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진 사퇴 이후 국회가 사법개혁 법안(형사소송법ㆍ검찰청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자 경찰 내부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었다. ‘조국 사태’ 와중에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진 데다 청와대에서 검찰개혁을 직접 챙기는 모양새가 과거와 사뭇 다르다는 판단이다. 경찰은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70년 가까이 이어진 검경 갈등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21일 경찰의 날을 앞두고 이런 경찰 내부 분위기를 숨기지 않았다. 민 청장은 지난 14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수사권 조정은 형사사법체계에서 반칙과 특권을 없애라는 국민적 요구에서 출발했다”며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매듭짓는 게 소원”이라며 강력한 의지도 전했다.
지난 4월 말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린 사법개혁 법안은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경찰에게 수사종결권을 주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수사권 조정에 따른 경찰 비대화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 청장은 “수사권 조정을 통해 권한의 분산이 가능해지면 경찰과 검찰이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게 돼 수사기관의 객관적 통제가 더욱 강화될 수 있다”며 “경찰 유착, 봐주기 수사 등 국민이 싫어하는 것들을 다 거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_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면 국민은 뭐가 좋아지는 것인가.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 수사지휘권, 영장청구권, 기소권, 형 집행권 등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며 형사절차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막강한 권한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로 인한 폐해가 너무 많지 않았나. 이제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권한을 분산, 경찰과 검찰이 서로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형사사법체계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향상되고 국민이 바라는 사회정의 실현도 앞당겨질 것이다.”
_제도가 바뀐다고 사회정의 실현을 어떻게 확신하나.
“국회에서 심사 중인 사법개혁 법안은 검사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과 검찰의 협력 조항을 신설하는 게 포인트다. 기존 ‘명령과 복종’의 수직적 관계에서 ‘견제와 균형’의 대등한 관계로 설정한 것이다. 협력 관계는 기존 검사-경찰로 이어지는 수직적 수사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를 없애줄 것이다. 또 경찰을 수사 주체로 규정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범죄 혐의가 있을 때만 검찰에 송치)을 부여해 경찰의 수사 책임이 상당히 커지게 된다. 경찰이 1차로 수사를 종결하는 만큼 1차 수사에 대한 책임 또한 경찰이 온전히 지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검찰이 모든 걸 결정하니 수사 결과에 대해 일부 경찰은 별 다른 책임을 느끼지 않는 게 사실이다. 제도가 바뀌면 경찰로선 부실수사를 막기 위해 더욱 세심히 수사할 수밖에 없다. 또 경찰 단계에서 1차적으로 사건을 종결하게 되면 연간 56만여 명이 조기에 불안정한 사건관계인 지위를 해소할 수 있다. 사건종결을 위해 검찰에게서 이중조사를 받을 필요가 없으니 이로 인한 국민 불편과 경제적 손실도 줄어든다.”
◇화성사건 경찰 수사 비난 “수사 종결한 검사 책임 없나”
_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올해 ‘버닝썬 사태’로 경찰 유착의 폐해가 또 지적됐다.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나타나자 오히려 과거 경찰의 엉터리 수사가 부각되고 있다.
“그런 지적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따져보자. 지금은 검찰이 수사지휘부터 종결까지 모든 수사를 독점한다. 그럼 과연 최종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수사지휘를 하고 종결했던 사람들(검사)은 왜 비난을 안 받나. 지금 수사체계는 검찰이 모든 걸 움켜쥐고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으면 마는 식이다. 경찰은 아무런 권한이 없다. 경찰이 수사를 하고 검사가 수사 품질을 철저히 검증하는 방식으로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면 달라질 것이다. 경찰에는 수사가 잘못됐을 때 가혹할 정도로 책임을 물으면 된다. 경찰과 검찰이 대등해져서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면 경찰 유착이나 검찰이 적당히 사건을 끝내는 등 국민이 싫어하는 것들은 다 거를 수 있다. 경찰이 수사를 하고 검찰이 철저히 검증하면서 새로운 혐의가 드러난 버닝썬 사건이 좋은 예다.”
_경찰의 버닝썬 수사를 두고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이 나온다. 경찰은 ‘경찰총장’으로 불린 윤모 총경을 불구속 송치했지만, 검찰은 추가 수사를 해 구속했다.
“현재 서울경찰청 차장을 수사책임자로 해서 제기된 의혹을 모두 밝혀나가는 중이다. 윤 총경에 대해선 아직 수사가 끝난 게 아니다. 수사 대상자가 경찰이라고 해서 수사를 적당히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은 ‘가수 승리’(빅뱅 전 멤버), 윤 총경 등과 관련된 의혹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수사했다. 다만 검찰은 경찰의 수사 자료와 추가 압수수색 등을 통해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을 찾아냈다. 원래 경찰이 수사를 해서 검찰로 송치하면 검찰은 다른 기관에서 확보한 자료 등을 묶어 새로운 걸 찾기도 한다. 수사의 흐름이고 다반사로 있는 일이다. 외부에서 보기엔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수사팀은 정말 최선을 다해 수사를 했다.”
_이번에도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서 불발되면 경찰로선 대안이 있나.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으로 수사권 조정이 공론화돼 지금까지 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반 발짝 나간 것 이외에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2011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경찰의 독자 수사가 가능해진 것을 의미) 매번 대통령 공약으로 선정됐지만 잘 안 됐다. 듣기 좋은 노래도 세 번 들으면 싫증 나지 않나. 수사권 조정 논의는 벌써 5번째 정부를 거치고 있는데, 이번에도 안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다시 공론화하려면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경찰은 출근하면 지역 주민을 위해 무엇을 할지, 도둑은 어떻게 잡을지 이런 고민을 하지 우리처럼 검사 지휘를 어떻게 받아야 하나 따위의 고민은 안 한다. 경찰과 검찰 모두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기관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다.”
_최악의 미제사건으로 꼽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를 33년 만에 특정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심정이 어땠나.
“솔직히 말해 만감이 교차했다. 경찰이 그동안 범인을 잡지 못해 상당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유가족들을 뵐 면목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철저한 진실 규명뿐이다.”
_하지만 화성연쇄살인사건 피의자 이춘재가 8차 사건도 본인이 저질렀다고 자백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경찰이 과학수사로 범인을 검거했다고 자부한 사건인데, 이춘재의 자백으로 무고한 시민에 대한 강압수사 의혹이 번지고 있다.
“경찰로서는 마음의 짐이 크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증거물 감정 결과 도출과정을 확인하고 있고, 그때 수사관계자들을 상대로 피의자로 처벌받은 윤씨를 범인으로 특정해 자백받은 경위도 조사하고 있다. 이 사건은 반드시 모든 진상을 밝혀서 피해자의 한을 풀어내는 게 우리의 남은 과제다. 다신 이런 과오나 실수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여러 조치들도 필요하다. 해야 할 일이 많다.”
_또 다른 장기미제인 ‘개구리 소년 사건’ 해결을 위해 수사팀을 새로 꾸렸는데 해결 가능성은 있나.
“고인과 유족분들께 정말 죄송스럽다. 올해 4월부터 대구경찰청 미제수사팀으로 사건을 이관해 조사 중인데 지난 9월부터 광역수사대 인력을 보강했다. 지금으로선 사건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만 드리겠다.”
_지난해 7월 취임 이후 1년 이상이 지났다. 경찰 조직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경찰개혁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큰 상황에서 민주ㆍ인권ㆍ민생경찰을 지향점으로 국민이 바라는 경찰개혁을 추진한 일이 가장 뜻 깊다. 경찰위원회를 실질화했고 정부기관 최초로 ‘인권영향평가’를 도입하는 등 경찰활동 전반에 걸쳐 민주적 통제를 강화했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수사권 조정 법안이 국회에 상정돼 선진 형사사법체계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찰이 창설된 지 100주년 되는 의미 있는 해다. 현재 경찰은 뛰어난 치안역량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안전을 유지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 선진시스템을 전수하고 있다. 21일 경찰의 날을 기념해 열리는 치안산업박람회, 서울 국제경찰청장 회의 등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