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집행유예 선고한 항소심 판결 유지… 롯데그룹 안도
신격호 명예회장 ‘횡령ㆍ배임’ 징역3년 벌금 30억원 확정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약 70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17일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가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신 회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다.
신 회장은 2016년 3월 박 전 대통령에게 면세점 특허를 청탁하는 대가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뇌물공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신격호 명예회장 등과 공모해 롯데시네마가 직영으로 운영하던 영화관 매점을 가족회사 등에 임대해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발생(업무상 배임)시키고, 한국 롯데그룹에서 아무런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 신동주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과 신 명예회장의 사실혼 배우자인 서미경씨 및 그의 딸에게 급여를 지급(횡령)한 혐의 등으로도 기소됐다.
앞서 1심은 70억원이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징역 2년6월에 추징금 70억원을 선고하고 신 회장을 법정구속했다.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의 성공적인 상장을 위해 면세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월드타워 면세점의 특허 재취득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신 회장이 2016년 3월14일 박 전 대통령과 가진 단독면담을 통해 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본 것이다. 신 회장은 별도로 진행된 경영비리 재판에서도 매점 임대 관련 배임혐의와 서씨 모녀 급여 관련 횡령 혐의 등이 유죄로 판단돼 징역 1년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반면 두 사건을 합쳐 진행한 항소심은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수뢰자의 강요행위로 인해 의사결정의 자유가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지원금을 교부한 피해자에 대해 뇌물공여 책임을 엄히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뇌물을 공여했다는 점이 양형에 반영된 결과로, 추징금도 면제됐으며 신 회장은 즉시 석방됐다. 경영비리 관련해서도 서씨 모녀 급여 관련 횡령 혐의에 대해 추가로 무죄가 선고됐다.
상고심에서는 신 회장이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한 행위가 뇌물공여에 해당하는지가 가장 큰 쟁점으로 부각됐다.
대법원은 뇌물공여에 대해서는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를 선고했지만, 그 과정에서 강요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에서와 달리 이를 ‘적극적 뇌물’로 본 것이다. 앞서 최순실씨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이와 관련된 강요죄를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신 회장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고 설명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신 회장 상고심 판결문에는 이에 대한 별도의 설명 없이 “기존 판례의 법리에 따라 검토한 결과 원심의 유무죄 판단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간단히 명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이 원심 판결을 판단할 때는, 원심이 제시한 이유가 아니라 결론에 초점을 맞춘다”며 “수동적 뇌물이든 적극적 뇌물이든 뇌물공여가 유죄라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을 붙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의 결정적 이유가 됐던 ‘수동적 뇌물’이 ‘적극적 뇌물’로 바뀌었음에도 원심 양형은 그대로 유지됐다. 기본적으로 양형부당은 상고이유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사형이나 무기징역, 징역 10년 이상의 형 등이 선고된 사건에서 양형이 현저히 부당할 때만 예외적으로 상고심에서 심판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대법원이 직권으로 파기할 수도 있지만, 이는 대체로 소송절차에 법령위반이 있거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황이 있을 때에만 예외적으로 적용된다.
한편 업무상 횡령ㆍ배임 혐의로 신 회장과 함께 기소됐던 신 명예회장도 이날 징역 3년과 벌금 30억원이 확정됐다. 검찰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구속 재판을 받았던 신 명예회장에 대한 형을 조만간 집행할 예정이다.
롯데그룹은 신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되자 오랫동안 지속돼온 경영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며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롯데지주는 입장문을 통해 “그동안 큰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많은 분들의 염려와 걱정을 겸허히 새기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해 신뢰받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