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참사 6개월, 정신질환 응급현장은] <하> 속도 못 내는 중증 정신질환자 대책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모습. 최근 대학병원들도 ‘돈이 안 되는’ 입원병동을 줄이면서 증상이 일시적으로 심각해진 급성기 환자들이 입원해 증상을 가라앉힐 수 있는 의료기관이 줄어들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강원도에 거주하는 박옥희(59)씨는 지난해 9월 조현병 음성증상이 재발한 아들을 구급차에 싣고 입원이 가능한 대형병원을 찾아 온종일 강원도를 누볐다. 음식을 입에 대지 않고 누워만 있는 아들에게 콧줄을 끼운 채 헤매던 박씨는 결국 한양대구리병원에 가서야 입원시킬 수 있었다.

지난 4월 17일 사회에서 고립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던 조현병 환자 안인득이 방화ㆍ살인을 저질러 5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다친 진주참사 이후 6개월이 흘렀다. 사건 발생 후 한 달 만인 지난 5월 정부는 ‘중증정신질환 보호ㆍ재활 지원을 위한 우선 조치 방안’을 발표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중증 정신질환자 사례관리 인력을 대폭 늘리는 한편, 24시간 응급대응을 강화해 환자가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헤매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당시에 연내 시행하겠다고 밝혔던 대책들은 아직 대부분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정신과적 응급상황에서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의료기관이 전국에 얼마나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는 사이 중증 정신질환자의 가족은 응급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아 전국을 헤맨다. 발달장애인이나 치매처럼 가족에게 과도한 부담이 지워져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책임을 국가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신동준 기자
◇진주참사 이후에도 어려운 응급입원

응급입원은 중증 정신질환자에게 정신적 응급상황이 발생하고 본인이 입원을 거부할 때 이용 가능한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이다. 경찰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동의를 전제로 최대 3일간 정신의료기관에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어, 긴급한 상황에서 환자를 보호할 가장 빠른 방법이다. 의료계에서는 안인득처럼 난동을 거듭한 사람에 대해 경찰이 응급입원을 시도했다면 안씨가 일찍 정신과적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응급입원은 진주참사 당시나 지금이나 시행이 쉽지 않다. 정신질환자가 정신과적 응급상황에서 입원을 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외상 등을 치료하기 위한 응급실 △환자를 안정시키기 위한 보호실 △이후 입원을 이어가는 정신건강의학과 폐쇄병동이 필요한데 이들을 모두 갖춘 의료기관이 드물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이라고 사정이 낫지 않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폐쇄병동을 줄여나가는 추세인 탓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나 시립은평병원마저 응급실이 없어 신체 손상이 있는 환자는 돌보지 못한다.

◇정부 대책시행 지연

정부도 문제점은 알고 있다. 복지부가 5월 내놓은 대책 중에는 24시간 응급입원이 가능한 정신응급의료기관을 지정하고, 정신질환자 응급입원의 건강보험 수가를 올리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가 3가지 시설을 모두 갖춘 의료기관을 정신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하고 그에 맞는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들은 10월 현재까지도 시작도 하지 못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응급의료기관 가운데 정신질환자 응급의료센터를 지정할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실제로 정신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된 곳은 아직 한 곳도 없다. 해당 법안은 내년 2월 말부터 시행된다는 점을 고려해도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복지부는 “현재는 시범사업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말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시범사업 내용을 건강보험 정책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하지도 못했다.

응급의료포털에 응급입원 가능 병원을 실시간으로 안내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작업 역시 지난해 말 이후 진전된 사항이 없다. 응급의료포털은 활용 가능한 응급실과 수술 가능 여부 등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띄워 경찰이나 소방이 참고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정신질환자가 응급입원 가능한 시설에 대한 정보가 빠져 있다. 복지부도 이를 인식하고 지난해 말 관련 부처와 협의를 마쳤지만 인력부족으로 구축작업이 지연되고 있다. 경찰과 소방이 환자를 싣고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의료계는 “실현될까” 불신도

의료계와 환자단체 등 정신보건 현장에선 정부가 대책을 꾸준히 밀고 나갈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나온다. 이명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홍보이사는 “신체질환 동반 정신질환자 치료를 위한 체계 구축은 전혀 진전되고 있지 않다”면서 “공공이 적자를 보면서 이 역할을 수행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공공 정신의료기관도 부족하며 신체질환 동반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지원기능이 전무하다”고 평가했다. 이해국 가톨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의료수가를 조정하는 문제부터 응급체계를 갖추는 문제 등은 정신보건이 아니라 의료체계 전반에 걸친 사안”이라면서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국가가 정신건강 컨트롤타워(조종실)를 구축해 정책의 외연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응급입원 강화뿐만 아니라 현재 절대적으로 부족한 정신재활서비스의 강화 등 전체 정신보건복지 분야 정책을 다루려면 국가가 정신건강을 책임진다고 선언하고 전담기구도 두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5월부터 중증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지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정부가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선언하고,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범사회적 논의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권오용 한국정신장애연대 사무총장 역시 “의사 등 의료공급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현재 정신보건정책을 환자와 그 가족 등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려면 의료소비자를 전담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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