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아세안 30년, 메콩 시대가 열린다] <1> 핫 플레이스 떠오른 메콩 지역 
 베트남 태국 “물류 이동 불편” 호소에 라오스 “검문소 철폐” 
 부산 아세안회의 때 韓ㆍ메콩 첫 정상회의, 신남방정책 핵심파트너 
 
태국 묵다한과 라오스 사바나켓을 연결하는 우정의 다리를 건너기 위해 아세안 소속 국가의 시민들이 태국 측에서 출국심사를 받고 있다. 묵다한(태국)=정민승 특파원

미얀마 항구도시 모울메인에서 태국과 라오스를 거쳐 베트남 다낭으로 연결되는, 길이 1,450㎞의 ‘동서경제회랑’ 중간에 자리 잡은 라오스 사반나케트. 지난달 10일 이곳의 한 호텔 대회의장에는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태국의 묵다한주와 베트남 꽝찌성, 그리고 그 중간의 라오스 사반나케트주 관계자 등 100여명이 모여 앉았다. 이들 국가의 육로로 이뤄지는 국경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전날 도착해 만찬까지 함께한 터라 이미 친해진 각국 대표단은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까지 마쳤지만, 회의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특히 베트남 관계자들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응우옌 콴 친 꽝찌성 부성장은 “베트남 트럭이 라오스 출입국 사무소와 세관을 거쳐 입국 승인을 받고서도 태국 국경까지 230㎞를 가는데 경찰 검문을 세 차례나 받아야 한다”며 “검문소 3개 중 2개를 없애달라”고 요구했다. 모두 필요 없어 보이는 검문소지만, 주권 존중 차원에서 완전 철폐까지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다한주의 수빠꼰 물수완 부지사도 쏘아붙였다. “태국 트럭들이 베트남으로만 가면 언제 돌아올지 알 수가 없어요. 시간이 곧 돈 아니겠습니까?”

지난달 10일 메콩연구소 주최로 ‘태국-라오스-베트남 G2G 대화’ 행사가 열린 라오스 사바나켓의 한 호텔 대회의장 앞에 아세안 회원국들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앞에 보이는 강은 인도차이나반도의 젖줄 메콩강으로, 건너편에 보이는 곳은 태국 묵다한이다. 사반나케트(라오스)=정민승 특파원

예상치 못했던 ‘협공’이 벌어지자 회의는 멈춰 섰다. 라오스 사반나케트주 부지사인 톤케오 푸타카냐랏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검역이 까다롭다거나 부족한 트럭 입출국 수속 차선, 비싼 통관 수수료, 직원들의 뒷돈 관행 등 불친절까지 거론된 뒤였다. 동서경제회랑이 관통하는 사반나케트주는 서쪽으로 태국, 동쪽으로 베트남과 면하고 있다.

몇 통의 전화를 돌려 가며 라오스 대표단 자체 회의를 마친 톤께오 부지사는 즉석에서 그 결과를 발표했다. “검문소는 모두 당장 없애고, 다른 문제들도 속히 바로 잡겠다.”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사반나케트는 동서경제회랑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북쪽 중국으로 연결되는 ‘중부경제회랑’이 지나는 물류 중심인 만큼, 특단의 조치를 내놓지 않고선 라오스가 ‘고립국’ 오명을 벗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라오스는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끼지 않은 나라다.

이날 자리를 마련한 와차랏 리라왓 메콩연구소(MI) 소장은 “회의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왔다. 라오스의 결단 덕분에 물류 시간이 5시간은 줄어들 것 같다”며 “동서경제회랑의 이음매(seam)들이 보다 매끈해지고 있는 만큼 역내 ‘밸류 체인(가치사슬)’은 더 강해지고, 기업들의 투자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라오스-베트남 3개국 간 국경무역 활성화 방안 논의를 위해 지난달 10일 라오스 사바나켓의 한 호텔에서 열린 국제회의가 끝난 뒤, 3개국 대표와 메콩연구소 소장이 손을 맞잡고 이날 합의 결과의 성실한 이행을 다짐하고 있다. 사반나케트(라오스)=정민승 특파원

인도차이나 반도의 메콩 국가들이 단단히, 빠르게 뭉치고 있다. 메콩 국가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회원국 중 메콩(Mekong)강을 끼고 있는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등 대륙 5개국으로 아세안 내 대표 소지역(Subregion) 그룹이다.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등의 해양 아세안 국가들과 달리 모두 9개의 경제회랑이 격자 모양으로 연결돼, 국경 운영 여하에 따라 하나의 국가처럼 움직일 수 있는 물리적 여건을 갖췄다. 아세안 내에서도 ‘노른자위 그룹’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메콩(강)은 티베트에서 발원해 남중국해로 흘러나가는, 총 연장 4,020㎞의 동남아 최대(세계 11위) 강으로, 이 지역 5개국 인구 2억4,000만의 젖줄이다.

 ◇메콩국, 아세안 성장ㆍ통합 견인 

태국 출라롱꼰대 메콩연구센터의 우크리스트 팟마난드 소장은 “아세안 일원이면서 이 같은 지리적 이점을 적극 활용, 메콩지역 국가들은 다양한 협력을 하고 있다”며 “아세안 평균치를 능가하는 성장세를 내는 것도 바로 이 덕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아세안 10개국 평균 경제성장률은 5.3%를 기록한 반면, 메콩 지역 5개국 평균은 6.32%에 달했다. 특히, 메콩 5개국 중 이미 중진국 대열에 올라선 태국을 제외하면 성장률은 6.9%에 이른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목소리를 높여 가면서도 이들 메콩 국가가 뭉치는 것은 역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여기에 최근 짙게 드리워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이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지난 6일 방콕에서 동아시아ㆍ아세안 경제연구소(ERIA)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수타드 셋분사릉 전 아세안 사무차장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방황하는 자본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아세안이 더욱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라며 “아세안 안에서도 메콩 지역 국가들이 좋은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메콩경제권(GMS) 경제회랑. 그래픽=송정근 기자

아세안에는 메콩경제권그룹(메콩 지역 국가들을 지칭) 외에도 해양 아세안 회원국들로 구성된 브루나이ㆍ인도네시아ㆍ말레이시아ㆍ필리핀 동아세안 성장지대(BIMP-EAGA) 등 다른 소지역 그룹들이 있지만, 메콩 지역 그룹이 독보적이다. 태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아세안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의 성장동력은 이들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특히 동서남북으로 5개국을 연결하는 교통망이 발달해 유럽연합(EU)처럼 단일 생산기지, 단일 시장을 목표로 하는 아세안경제공동체(AEC)의 비전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는 곳이다.

림 족 호이 아세안 사무총장은 6일 ERIA 세미나에서 “세계 경제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아세안은 역내 무역 비중을 2025년까지 현재의 두 배로 늘리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며 “역내 교역 비중을 높여야 대외 의존도를 줄일 수 있고, 안정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아세안 역내 교역 비중은 25% 수준으로, 유럽연합(EU)의 3분의 1에 그친다.

한국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메콩 국가들과 처음으로 한ㆍ메콩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1989년 아세안과 대화관계를 수립한 지 30년 만에, 아세안과의 협력을 4강 수준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정부의 신(新)남방정책 시행 2년 반 만의 성과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ㆍ메콩 정상회의를 통해 한국도 본격적으로, 메콩 국가들과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1차 한ㆍ메콩 정상회의는 오는 11월 25~27일 부산에서 열리는 한ㆍ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다.

 ◇한ㆍ메콩 첫 정상회의 

이번 첫 한ㆍ메콩 정상회의는 신남방정책 안에서도 새로운 외교적 접근이다. 인종, 문화, 종교, 언어 등이 서로 다른 이질적 국가들이 한데 뭉쳐 형성한 협의체인 아세안은 각종 사안에 있어 만장일치제를 고수하는 등 느린 의사 결정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또 연계성은 뛰어나지만 10개국 대집합체인 아세안으로는 급변하는 세태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내부 목소리도 있다. 서정인 한ㆍ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은 “아세안이 숲이라면 개별 국가는 나무에 비유할 수 있다. 숲은 너무 크고, 나무는 너무 작아 협력 효율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라며 “그 중간에 해당하는, 규모와 속도를 모두 갖춘, 메콩 그룹과 본격적인 협력을 함으로써 양자 협력은 물론 대(對)아세안 협력에도 보다 내실을 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세안ㆍ메콩경제권 경제성장률. 그래픽=송정근 기자

메콩 지역은 우리 정부의 신남방정책이 대상으로 하는 아세안 하위 그룹이지만, 그들과의 협력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태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사회주의 국가였고, 1990년대 냉전 종식과 맞물려 ‘전장에서 시장으로’라는 구호와 함께 개혁개방이 본격화한 곳들이다. 메콩 지역과의 협력을 통해 한국의 경제산업 분야는 물론, 외교 안보 측면에서도 든든한 우군을 얻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홍구 부산외대 동남아창의융합부 교수는 “메콩 국가들은 북한에 편안함을 느끼고, 한국에는 큰 호감을 보인다”라며 “세계 무대로 북한의 연착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국가들”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문제 등 안보 측면에서도 이 지역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존재라는 이야기다.

메콩 국가 중 베트남을 제외하면 개발 수준이 너무 떨어지거나 일본, 중국이 물량공세로 선점한 상태여서 새로운 투자처로 큰 매력이 없다는 게 한국 기업들의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엄은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는 “기본적으로 중국, 일본과는 물량으로 경쟁하기는 힘들지만 그들이 이미 도로, 항만 등 기반시설을 다 깔아놨기 때문에, 이제는 한국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라며 “물류, 교통, 각종 제도 등 한국이 상대적 우위에 있는 운용 측면에서 접근하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태국의 돈 쁘라믓위나이 외교장관은 서면 인터뷰에서 “아세안은 한국의 무역ㆍ투자 측면에서 큰 잠재력을 가진 곳”이라며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메콩 협력에서도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방콕ㆍ콘깬(태국)ㆍ사반나케트(라오스)=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 위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태국 방콕포스트ㆍ한국일보의 공동 취재를 통해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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