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춘씨의 캠핑카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캠핑카에서 먹고 자며 전국을 여행 중인 그는 계획을 세워 이동하지 않는다. 하루도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은 미련 없이 떠나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좋았던 경주에는 2주를 머물렀다. 래춘씨 제공

“저희 집 한강 뷰(View) 괜찮죠?” 저도 한강 조망권을 가진 곳에 삽니다.”

한강이 내 것도 아닌데, 아파트 거실 창 너머 보이는 한강을 위해 수십억원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세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래춘씨(가명ㆍ30대)가 한강 둔치에 1톤짜리 캠핑카를 세운다. 약 11㎡(3.6평) 정도 되는 차량 내부에 설치된 매트리스 위에 누워 창문 너머를 바라보면 그 ‘대단한’ 한강뷰가 말 그대로 코 앞이다. 그러다 팔을 위로 쭉 뻗어 차량 천장에 난 창문을 열면? 높이 2m가 넘는 캠핑카를 내려다보는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온 얼굴로 느낄 수 있다. ‘숲세권’은 멀리 있지 않다.

지난해 8월부터 살기 시작했으니 래춘씨는 캠핑카에서 사계절을 지냈다. 집세와 관리비, 공과금을 포함해 다달이 100만원씩 쏟아 부으며 혼자 살던 월셋집을 정리하고 캠핑카에 살림을 차린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먹고 자고 씻고 TV 보고 화장실 가는 게 캠핑카에서도 가능하잖아? 그럼 굳이 콘크리트 집에 살 필요가 없네?”

당시만 해도 직장인 신분이었지만 그게 걸림돌은 아니었다. 아예 서울 마포구에 있는 직장에서 2, 3분 거리 지상 주차장에 캠핑카를 세워두고 “매달 40만원씩 들던 교통비도 안 들고 출퇴근길도 가깝다”고 만족하며 ‘매우 성실하게’ 직장생활도 했다. 가족들을 포함한 모든 지인들로부터 ‘미친X’이란 소리를 들었지만 래춘씨는 “캠핑카 생활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단순한 주거형태의 변환일 뿐 대단한 괴짜행위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더 이상 월세 올려 달란 얘기를 안 들어도 되고 지긋지긋한 층간 소음에서도 자유로워졌다. 원하는 곳에 머물기 위해 운전대만 잡으면 되는 캠핑카 삶. 1년을 살아보니 웬만한 불편함에는 도가 텄다. 냉장고, 싱크대, 세탁기, TV, 샤워기 등 살림살이도 특별히 부족할 게 없다.

하지만 처음엔 모든 게 스트레스였다. 더위와 추위의 무차별한 공격, 늘 부족하기만 한 야속한 물과 전기, 처치곤란 생활(음식물) 쓰레기, 벌레와의 사투. 불편하고 고생스러운 정도는 안 겪어본 사람은 상상도 못 할 정도다. 물이든 전기든 아끼는 것만이 능사, 음식물은 안 남기는 게 답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불편한 게 있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온다. “택배 받는 건 지금도 힘들어요. 주로 여성안심 무인택배 보관함을 이용하는데, 지방은 이마저도 별로 없어 늘 이동 스케줄을 고려하면서 택배를 받아야 해요. ‘어디 주차장, 무슨 색 캠핑카 앞으로 갖다 주세요!’ 할 순 없으니까요.”

지난 5월 직장도 관뒀으니 래춘씨 말대로 이제는 “매일이 여행, 떠난 곳이 집”이다. 언제까지 캠핑카에서 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다가올 겨울에 뚝 떨어질 습도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 지 걱정뿐이다. 전화기 너머로 자신의 캠핑카 삶을 들려준 지난 9일에도 그는 전북 군산의 한 공원에서 3일째 머물고 있다고 했다.

캠핑카 내 ‘거실’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는 래춘씨. 그는 캠핑카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선택지는 될 수 있지만 집이란 공간에 원하는 역할이 최소한일 때 가능한 일”이라고 조언했다. 래춘씨는 “먹고 자고 씻을 수 있는 것만 해결되면 굳이 한 곳에 정착할 필요를 못 느끼는 나 같은 경우가 거기에 해당된다”며 웃었다. 래춘씨 제공
 ◇“불편하지만 괜찮아, 언제든 떠날 수 있으니까” 

캠핑족 600만 시대. 캠핑은 더 이상 소수의 사람들만 즐기던 이색적인 취미가 아니다. 모든 살림살이가 차량 내에 구비돼 있어 비교적 안락하고 수월하게 여행이 가능한 캠핑카 역시 캠핑족 증가로 이용자 수가 늘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4년 4,131대 수준이던 캠핑카는 올해 3월 기준 2만892대로 5배가 됐다. 물론 대부분은 지친 일상을 뒤로한 채 떠나는 여행용으로 캠핑카를 구입한다. 캠핑카 시장이 아직은 활성화돼 있지 않은 탓에 가격도 저렴하지 않다. 모델과 사양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기본적인 옵션이 갖춰진 새 캠핑카 한 대당 평균 가격은 약 6,000만~8,000만원에 달한다. 1억원이 훌쩍 넘는 캠핑카도 많다. 웬만한 오피스텔 전세 보증금과 맞먹는다.

하지만 최근 출시되는 캠핑카의 면면을 보면 ‘가정집의 압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가정집보다야 좁고 물과 전기 같은 에너지 사용이 한정돼 있는 탓에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있다. 그러나 집이란 공간에 바라는 기대를 최소한으로 줄인다면 ‘캠핑카 살기’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캠핑카에서 사는 동안만큼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거비용 부담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대리운전 기사로 일하는 김동해(33)씨도 그래서 캠핑카 살기를 선택했다. 지난 4월부터 약 4,000만원을 주고 구입한 10년된 중고 캠핑카에 살기 시작한 김씨는 자신을 “생계형 캠핑카족”이라고 밝혔다. 여행용 캠핑은 해 본 적도 없고 특별히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전라도 광주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 정착한 지 벌써 10년. 늘 성실하게 살았던 것 같은데, 벌어도 벌어도 ‘내 집 마련’은 꿈을 꿀 수조차 없는 기분. 캠핑카에 살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다. “30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하면서 몇 백 만원씩 모아도 서울에 내 집 하나 갖기가 힘들 것 같더라고요. 돈도 절약하고 아직 젊으니까 좋은 경험도 될 것 같았죠.” 자신의 캠핑카 삶을 소재로 유튜브(캠핑카똘이)를 운영 중이기도 한 그는 주로 경기 남양주, 구리, 성남 등지의 널찍한 공원을 오간다.

생활비는 확실히 줄었다. 김씨는 캠핑카에서 살기 시작한 첫 달 총 140만원 가량을 지출했다. 첫 달이니만큼 절반(69만원)을 캠핑카 용품을 구입하는 데 썼고 식비(18만원) 유류비(13만원), 차 보험료(9만원) 등에 돈이 들었다. 식비나 통신비 등 고정비용을 제외하고 오직 캠핑카 생활만을 위해 추가로 지출(캠핑 용품 제외ㆍ유류비, 차 보험료)한 돈은 약 22만원 남짓. 월세와 각종 공과금으로 월급의 절반 가까이를 떼 줘야 하는 가혹한 서울살이에서 이 정도면 선방이 아닐까.

가장 불편한 점을 묻자 “(웃으며) 모든 게 다 불편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캠핑카 내부에도 화장실이 있지만 여름엔 냄새 문제로 공중화장실을 찾고 사용할 물이 떨어지면 물을 찾아 삼만 리다. 절약하는 습관이 저도 모르게 몸에 밸 수밖에 없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겨울나기도 걱정스럽다. “캠핑카에 살아보니 불편한 게 있고 불가능한 게 있더라고요. 불가능한 건 과감하게 포기. 어디에 살든 불편한 것들은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것 아니겠어요?” 마음먹은 대로 언제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캠핑카만의 매력이 잠시나마 불편함을 잊게 할 뿐이다.

김동해씨가 지난 4월부터 살기 시작한 10년 된 중고 캠핑카. 가족들은 “밥이라도 해 먹을 수 있겠냐”며 걱정했지만 김씨는 “웬만한 요리를 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어 반찬도 일일이 해 먹는 편”이라고 말했다. 김동해씨 제공
김동해씨의 캠핑카 내부. 경기 남양주, 구리, 성남 등의 공원주차장을 오가며 캠핑카에서 사는 김씨는 “10년 전 서울에 처음 올라와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캠핑카에 살아볼까 고민했다”며 “불편해서 도저히 못 살겠다 싶을 때까지 살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동해씨 제공
 ◇“‘우리 여기 머물까?’ 이게 매력이지” 

널찍한 숙소, 푹신한 침구 위에서 잠을 청하고 깊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씻을 수 있는 여행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캠핑카는 ‘비효율의 극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캠핑카족들은 한번 캠핑카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 가족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캠핑카에 정식으로 살 순 없지만 ‘언젠가 캠핑카에서 살아보리라’ 꿈을 꾸는 사람들은 많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이소현(34)씨는 지난 4월 구입한 캠핑카로 얼마 전 3박4일 홀로 살기 체험을 했다. 남편과 매주 캠핑카 여행을 다니지만 혼자 캠핑카에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경기 김포의 한 공원 주차장에 캠핑카를 세웠다. 차 트렁크 속 텐트 하나 싣고 떠나던 캠핑부터 시작해 어느새 6년차 캠핑족이지만 여성 혼자 캠핑카에서 생활한다는 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다. 캠핑카 안에서 커피도 내려 마시고 소고기 구이, 파스타 등 고급(?) 요리까지 자신에게 선물하며 평온한 낮 시간을 보냈지만 밤이 되니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다. “아무래도 치안 문제가 가장 힘들었죠. 워낙 겁이 없는 편이지만 자다가 밖에서 들리는 다른 차 소리나 소음에 깜짝 놀라 깨기도 했고요. 물을 아끼기 위해 5분 안에 샤워를 끝내야 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웃음)”

이소현씨가 지난 4월 구입한 캠핑카 내 주방 모습. 야외에 따로 텐트를 설치해가며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캠핑카의 장점 중 하나다. 이소현씨

하지만 집처럼 넓지 않은 아늑한 공간에 오롯이 홀로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건 귀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조만간 남편과 캠핑카를 배에 실어 3주 동안 제주 여행에 나선다는 이씨는 “아무런 제약 없이 발길 닫는 데로 돌아다니다가 ‘우리 여기 머물까?’ 싶으면 머물면 된다. 그보다 좋은 여행이 어디 있겠냐”고 말했다.

텐트를 치고 다시 해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생각보다 큰 장점이 된다. 5년 전 캠핑카를 구입해 주 1회씩 가족여행을 다니는 직장인 김성학(50)씨도 마찬가지다. “낯선 곳을 찾아 떠나고 어떤 환경에도 구애 받지 않고 밥도 해 먹고 잠도 자는 삶, 안 해본 사람들은 그 즐거움을 모른다”며 “지금이야 휴일을 이용해 여행을 다니지만 10년, 15년 뒤 퇴직 후 자유인이 된다면 아내와 캠핑카 살기에 반드시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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