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협의체 회의에 실무자들이 참석… 형식적 운영
7월 서울 관악구에서 아사(餓死)한 탈북민 한성옥씨 모자 사건을 계기로 북한이탈주민 지원체계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범(汎)정부 고위급이 참석해 북한이탈주민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북한이탈주민대책협의회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급 협의체란 말이 무색하게 대부분 회의엔 사무관ㆍ서기관 등 실무자가 대신 참석했고, 아예 대면회의가 생략되는 경우도 있었다.
13일 국회 외교통일위 소속 자유한국당 김재경 의원이 통일부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이후 북한이탈주민대책협의회(이하 협의회) 전체회의는 총 7회 개최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1회)을 제외하면, 매년 2번씩 회의가 개최된 셈이다.
하지만 협의회 운영은 형식적이었다. 관련법상 협의회 기본 참석 대상은 15개 부처ㆍ5개 기관(국가정보원ㆍ경찰청 등)의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일반직 공무원(국장급)’이다. 하지만 최근 ‘아사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이 커진 직후 열린 9월 회의를 제외하면, 6차례 회의 대부분 과장ㆍ서기관ㆍ사무관이 대신 참석했다. 가령 지난해 4월 ‘제2차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기본계획’을 심의한 전체회의 당시 참석자 23명(지자체 포함) 중 11명(과장 7명+사무관 4명)이 대참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통상 북한이탈주민의 국내입국 승인 등 기술적인 안건을 심의할 땐 그렇다 쳐도,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대참이 많은 것은 문제”라고 했다. 게다가 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지난해 1차 회의(1월)는 서면심의로 대체됐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실무협의회를 수차례 개최하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전직 통일부 당국자는 “2017년쯤 협의회를 위원회로 격상하고 차관인 위원장을 통일부 장관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을 추진하다 흐지부지됐다”고 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무관심은 지자체도 마찬가지였다.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서 12주간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오면 5년간 지자체의 거주지 보호 담당관으로부터 정착 도움을 받게 된다. 담당관은 주민등록, 생계급여 지급, 의료급여 대상자 지정 등을 돕고, 반기마다 실태조사도 실시한다. 그런데 2016년 이후 현재까지 전국 245개 지자체 담당관의 평균 담당기간은 약 15개월에 불과했다. 특히 경남 고성에선 이 기간 담당관이 9번, 부산 연제구와 경기 구리시에선 7번 교체됐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한직’이란 인식이 강해 전문성을 쌓기도 전에 교체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신속한 제도 개선을 위해 당장 북한이탈주민법 개정안 발의에 착수할 예정이며, 이를 계기로 다시는 고 한성옥 모자와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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