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수상자 페터 한트케
페터 한트케. 문학동네 제공

2019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는 찬사와 비판, 호평과 혹평을 함께 받은 우리 시대 가장 전위적인 작가로 꼽힌다. 희곡과 소설, 에세이, 시,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류신 중앙대 유럽문화학부(독일어문학 전공) 교수는 “한트케는 언어 자체의 파괴를 통해 허위와 위선을 드러낸 작가”라며 “가짜뉴스 등 언어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트케의 작품은 특히 시사점이 있다”고 수상의 의미를 밝혔다.

한트케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오스트리아 그리펜의 소시민 가정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문화적으로 척박한 벽촌에서 보내며 일찍부터 전쟁과 궁핍을 경험했다. 한트케의 어머니인 마리아 한트케는 오스트리아 영토인 옛 슬로베니아 케른텐 태생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케른텐에 주둔했던 독일 병사와 사랑에 빠져 한트케를 잉태했지만 독일 병사가 이미 가정이 있었던 탓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 이후 또 다른 독일 병사인 한트케의 아버지와 결혼했지만, 건강 악화와 불행한 결혼생활을 비관하며 한트케가 스물 아홉 살이 되던 해에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이때의 경험과 가해국 독일에 대한 한트케의 반감은 이후 자전적 성격의 소설인 ‘반복’에서 아버지의 국적을 슬로베니아로 바꾸는 것에서 드러난다.

기숙사 생활을 했던 고등학교 졸업 뒤,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한트케는 첫 소설 ‘말벌들’(1966)이 출간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해 전후 독일 문학계를 주도하던 ‘47그룹’ 모임에 합류, 파격적인 문학관으로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으며 이목을 끌었다. 1960년대 말 독일은 참여문학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한트케는 이에 반기를 들고 언어내재적 방식에 주목했다. 한트케는 47그룹이 미국 프린스턴대에 초청됐을 당시 “문학이란 언어로 만들어진 것이지 그 언어로 서술된 사물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며 기존의 문학적 가치관을 강력히 거부했다. 기존 문학계와 연극계, 정치계에 대한 반권위적이고 비판적인 한트케의 도발은 비평가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았고 47그룹은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된다.

페터 한트케의 희곡을 바탕으로 국내 상연된 연극 '관객모독'.

1966년, 전통극 형식에 대항해 희곡 역사에서 가장 도발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첫 희곡 ‘관객 모독’을 발표하고 연극계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한트케는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전통적 관극 태도를 고발하는 작품으로, 끊임없는 독백으로 이뤄져 있다. 관객들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음으로써 현대 사회의 허위와 위선을 조롱하고 풍자한 마지막 부분은 이 작품의 절정으로 꼽힌다.

이처럼 논문적 성격을 띄는 한트케만의 희곡은 다음 발표작 ‘카스파’(1968)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이 작품에서 한트케는 팬터마임과 언어극을 절충, 개인이나 단체가 사회적 의식을 형성하는 데 언어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또 조작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내용보다 서술을 우선하는 실험적 작품으로 다수의 혹평과 소수의 호평을 함께 받던 한스케는 1970년 발표한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통적인 서사를 회복한다. 이후 소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1972), ‘소망 없는 불행’(1972), ‘반복’(1986), 예술 에세이 ‘어느 작가의 오후’(1987),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1997) 등 다양한 작품을 꾸준하게 발표해왔다. 빔 벤더스 감독과 함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1987)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국제입센상(2014), 프란츠 카프카상(2009), 오스트리아 국가상(1987), 브레멘 문학상(1987), 잘츠부르크 문학상(1985), 그릴파르처상(1983) 등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2006년 뒤셀도르프시가 주관하는 하인리히 하이네 수상자로 지명됐지만 독일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일관한 탓에 시의원들이 심사를 거부해 수상은 무산됐다.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리아의 페미니즘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페터 한트케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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