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증자 가게서 몰래 1장 찢어온 후 진품 확인되자 재차 방문해 반출” 
 훔친 1장 거래 시도 정황도 확인돼… 배씨는 “사실 무근 음해” 반발 
훈민정음 상주 해례본을 소지한 배익기씨가 2009년 10월19일 낱장으로 분리한 상주본을 본보 기자에게 공개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으로 판명된 후 원본을 촬영한 것은 이 사진이 유일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훈민정음 상주 해례본 은닉 소장자인 배익기(56)씨가 상주본을 두 번 훔쳤다는 주장이 배씨의 지인인 김모(60)씨로부터 나왔다. 그 동안 정상적인 거래로 상주본을 소유하게 됐다며 문화재청의 반환 요구를 거부해 온 배씨의 설명과는 확연하게 다른 입장이어서 주목된다. 배씨는 현재 1,000억원의 국가 보상을 요구하면서 문화재청의 상주본 반환요구에 불응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성삼문과 박팽년 등 집현전 학사들이 세종을 보필하면서 한글에 대한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정리한 해설서로, 문화재청에선 이 가치를 1조원으로 감정한 바 있다.

8일 김모씨에 따르면 배씨는 상주본 국가 기증자인 조용훈(2012년 사망)씨의 가게 민속당에서 2008년 7월 중순 책자의 일부를 몰래 찢어 나온 이후 진품임이 확인되자, 같은 달 하순 재차 방문해 책자를 다른 고서적에 끼워 반출했다. 김씨는 배씨와 함께 1990년대 후반, 10개월 가량 골동업으로 협력관계를 유지한 사이다.

이런 내용은 올해 4월 김씨의 검찰 조사에서 처음 드러났다. 2008~11년 조씨와의 상주본 소유권 다툼 도중 불거진 송사 과정에서 배씨에게 불리한 위증을 했다는 혐의로 올해 4월 대구지검에 고소당한 김씨의 진술이다.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김씨에게 민속당에서 상주본을 반출한 배씨의 행적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김씨는 또 2008년 7월 상주본의 최초 방송 촬영 당시, 누군가 “한 장이 없어졌다”고 하자 “표구를 위해 빼놓았다”고 둘러댔던 배씨의 고백을 진술에 덧붙였다. 김씨는 이어 검찰 조사 말미에서 “먼저 뜯어낸 한 장은 찢긴 흔적이 있을 것이고 대조하면 쉽게 판별이 될 것”이라며 “만약 이 진술이 거짓이라면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고 확약했다. 검찰은 배씨가 제기한 김씨 상대 위증혐의 고소사건에 대해 올해 8월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

“상주본을 한 장, 먼저 찢어 나왔다”는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정황도 취재 결과, 확인됐다. 대구 중구에서 인터넷 골동품 유통망을 운영 중인 조모(58) 대표는 배씨로부터 방송 공개 직전인 2008년 7월 중순께 ‘훈민정음 한 장’에 대한 거래 제안을 받았다고 전해왔다. 배씨가 상주본 최초의 방송 공개 시점 보다 보름 전쯤 전화를 걸어왔고 훈민정음 한 장에 대한 가격 여부를 물어왔다는 것.

보다 구체적인 대화내용도 소개했다. “배씨가 ‘훈민정음 한 장을 확보했는데 가치가 얼마나 되며 진품이면 300만원 줄 수 있냐’며 확답까지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에 조 대표는 “그런 조건이라면 구매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배씨의 연락은 끊겼다고 회고했다. 조 대표는 “배씨가 그 때 훈민정음 진품 한 장을 손에 쥔 뒤 내게 간만 보고 소식을 끊었기에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떠올렸다.

관계된 증언은 더 있다. 상주본 방송 공개 하루 전인 2008년 7월30일 유물조사를 의뢰 받은 임노직(57) 한국국학진흥원 자료부장이다. 임 부장은 이날 상주시청 관광과 조연남 학예사와 함께 방송 카메라 앞에서 상주본을 한 장씩 넘기며 고찰하는 과정에 책자의 일부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배씨에게 사유를 물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배씨는 이 질문에 “따로 보관을 위해 빼놨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배씨는 이처럼 “상주본 한 장을 몰래 찢어 나왔다”는 증언에 대해 “이미 오래 전 기초조사 때 나를 음해하는 정모씨 등 증인들이 이러한 주장을 폈으나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며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황당한 주장으로 음해를 계속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2011년 9월 훈민정음 상주본 절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씨는 1심에선 징역 10년의 유죄 판결이 났지만 2심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은 상주본 회수에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상주본의 소유권은 분명 국가에 있다”며 “법치주의를 근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이 불법행위에 휘말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편 경북 상주고와 상주 우석여고, 서울 해성여고, 세종 국제고 재학생들은 9일 한글날을 맞아 배씨 자택을 방문해 상주본 반환 관련 서명록과 요청서도 전달한다. 상주고 2학년에 재학 중인 김동윤군은 "상주본은 한글의 창제 원리가 담긴 문화재이자 상주시민의 자부심"이라며 "고등학생들의 염원이 담긴 반환 요청서로 상주본이 국민들 곁으로 올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상주=김용태기자 kr88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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