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을 개혁하기 위해 1년여간 진행된 연금개혁특위가 지난 8월 30일 종료되었다. 논의 결과, 노동시민사회가 요구한 국민연금의 노후소득 보장기능 강화 및 장기적 지속 가능성 제고를 위한 ‘소득대체율 45% 및 보험료율 3%p 단계적 조정’이 다수안으로, ‘현행 제도를 방치하는 안’을 고수한 경영계의 몽니는 소수안으로 정리되었다. 연금개혁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음을 감안한다면 노사뿐만 아니라 청년, 여성, 은퇴자, 소상공인 등 여러 계층이 직접 참여하는 구조 아래, 다수안과 소수안으로 정리된 것조차도 작은 성과라 할 수 있다.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이어 연금개혁특위까지 논의된 국민연금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제도 개혁에 관한 내용들이 실현될지 여부는 결국 정치의 손에 달려 있다. 법 개정 권한을 가진 국회가 국민연금법을 개정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해 주는 행정부의 권한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즉, 정부와 국회가 이번 연금 개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구 고령화의 시계가 더욱 빨라지고 있는, 노후 빈곤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정치의 힘이 절실한 순간이다.
그런데 국회와 정부가 침묵하고 있다. 마치 서로 짜맞춘 것처럼 누구 하나 국민연금 개혁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 스스로 청사진을 제시해도 모자랄 황금같은 시간인데도 말이다. 각자 정치적 혹은 조직적 셈법에 기초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정부, 특히 청와대는 대통령 지지율만 바라보고 있어 국민연금 보험료를 올리면 일부 지지층 이탈이 생길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정부 부처에서는 개인의 승진 내지 조직의 안위라는 관료들의 판단 아래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않으려는 유인이 생겼을 것이다. 총선을 앞둔 국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야당은 국민연금 개혁에 관심 자체가 별로 없거나, 국민연금을 이용하여 정부와 여당을 흔드는 하나의 카드 정도로 고려할 것이다. 여당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기에 총선을 앞두고 국민연금 개혁 자체를 덮어두고자 할 것이다.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논의한 결과가 나온 지 한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우리는 정치권이 책임져야 할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과제를 그들 스스로 부정하고 덮어두고자 하는 행태를 목도하고 있다. 그야말로 ‘나쁜 정치’의 표본이다. 연금 개혁을 주도해야 할 정부와 국회가 슬쩍 발을 빼는 모양새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필자는 이러한 나쁜 정치의 결과가 곧 공적연금의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국민 노후에 대한 국가의 ‘포기 선언’인 것이다. 최악의 노인 빈곤 국가라는 오명을 계속해서 간직해야 하는 현실, 공적연금의 역할이 너무나도 작아서 서민뿐만 아니라 중산층도 노인이 되면 절반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실, 그 현실이 장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됨에도 정치권 스스로가 나몰라라 하는 상황을 국민들이 어떻게 이해할까.
국민의 노후를 위해, 지금 당장 정치가 나서서 2,100만명의 노후를 책임지는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한다. 소득대체율을 높이며 국민이 부담할 수 있는 보험료율을 점진적으로 높여야 한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동시에, 보완적 제도인 기초연금을 보다 내실있게 개편해야 한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도 필요하다. 국회와 정부가 당장 시대적 과업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 주길 희망한다.
김정목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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