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쓸데없으면서도 신비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이 연예계입니다. ‘연예 B하인드’는 사소하고 시시콜콜하게 화제의 인물과 콘텐츠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1세대 아이돌그룹 그룹 핑클이 JTBC 예능프로그램 '캠핑클럽'에서 다시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 JTBC 제공

“사랑한다 말하기엔 어색한 건 사실야”. 가수 이효리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젖힌 뒤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수줍게 노래를 합니다. “콜 미 콜 미 콜 콜, 기브 어 콜”. 1세대 아이돌그룹 핑클이 1998년 낸 히트곡 ‘내 남자 친구에게’ 옛 방송 영상이 아닙니다. 이효리, 옥주현, 이진, 성유리 등 핑클 네 멤버는 최근 경기 포천의 한 캠핑장에 작은 무대를 꾸려 ‘블루레인’ ‘루비’ 등 옛 노래를 들려줬습니다. 100여 명의 핑클 팬을 초청해 꾸린 특별 공연이었습니다.

가수 이효리가 JTBC 예능프로그램 '캠핑클럽'에서 핑클 멤버들과 노래를 부르고 있다. JTBC 제공

핑클 네 멤버가 모두 다시 모여 노래를 함께 하기는 2005년 낸 앨범 ‘핑클’ 이후 14년 만입니다. 핑클은 ‘핑클’ 활동을 마지막으로 드라마와 뮤지컬로 활동 무대를 넓혀 각자 활동을 해왔습니다. 팀 해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해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 핑클이 오랜만에 다시 무대에서 노래하자 일부 팬들은 결국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리웠던 마음과 반가움이 뒤섞여 나온 반응일 테지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들에 따르면 방송 카메라에 잡히진 않았지만, 핑클 네 멤버도 무대 뒤에서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1세대 아이돌그룹 핑클이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떠난 여정을 담은 JTBC 예능프로그램 ‘캠핑클럽’. JTBC 제공
 ◇’그들만의 축제’로 끝나지 않은 핑클의 여행 

핑클의 소환은 JTBC ‘캠핑클럽’으로 이뤄졌습니다. 핑클 네 멤버가 직접 캠핑카를 몰고 강원 영월 법흥계곡 등으로 여행을 떠나 그간 쌓인 벽을 허무는 과정을 그린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지난 7월 첫 방송이 나간 뒤 핑클은 새삼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효리와 비교하는 사람들로 속앓이를 해야 했던 옥주현의 상처, 세 동생을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에 늘 세 멤버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는 이효리의 그늘까지. 핑클 활동 당시엔 볼 수 없었던 그들의 평범하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 덕입니다.

핑클의 재회는 ‘그들만의 축제’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핑클은 방송에서 “참 수동적”이라며 옛 히트곡 ‘루비’(1998)의 가사를 몸서리치며 부끄러워합니다. ‘루비’ 속 여성은 바람피운 남자친구를 향해 ‘난 여전히 너의 여자’라고 고백하고, 남자친구와 바람피운 여자를 찾아가 ‘다신 만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과거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지만, 이젠 시대착오적이라 비판받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핑클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끝낸다’는 뜻의 ‘Fine Killing Liberty’의 약자(Fin.K.L)입니다. 혁명적인 그룹명과 배치되는 ‘루비’를 큰 문제의식 없이 부른 자신들의 과거가 쑥스러워진 겁니다. 핑클의 변화는 시대 그리고 ‘우리’의 성장과 맞물려 묘한 울림을 줍니다.

1990~2000년대 핑클의 활동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우리 무슨 역할 맡아야 하는 거 아냐?” ‘탑골 연예인’의 기우 

핑클은 1998년 1집 ‘블루레인’으로 데뷔했습니다. 네 멤버가 17~19세 때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홍안의 소녀들 중 과반은 불혹(40세)이 됐고, 옥주현을 제외하곤 모두 가정을 꾸렸습니다. 사는 곳도 제각각입니다. 이효리는 서울을 떠나 제주에, 이진은 미국 뉴욕에 삽니다. 그런 네 명은 지난 5월 ‘캠핑클럽’ 첫 여행을 떠났습니다. 7박 8일 일정이었습니다. 삶의 방식도 환경도 너무 달라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닙니다. 마음속 응어리도 있었을 네 멤버는 어떻게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떠나게 된 걸까요.

프로그램을 연출한 마건영 PD가 본보에 들려준 기획 과정은 이랬습니다. 마 PD는 지난해 6월 ‘효리네 민박’을 끝낸 뒤에도 이효리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지난해 12월엔 이효리ㆍ이상순 부부를 만나러 제주에 갔습니다. 그때 이효리는 ‘핑클 애들이 꿈에 자꾸 나와’란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은 마 PD의 머릿속을 맴돌았고, ‘핑클의 우정 여행’ 기획으로 이어졌습니다. 일주일이란 여행 기간 그리고 날씨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라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건 어려움이 많아 보였습니다. 대안은 캠핑카 여행이었습니다. 다행히 핑클 네 멤버 모두 운전면허가 있었습니다. 제주에 사는 이효리와 뉴욕에 사는 이진은 큰 차를 적지 않게 몰아봐 캠핑카 운전에 큰 부담을 느끼진 않았다고 합니다. 이효리를 시작으로 제작진은 옥주현, 이진, 성유리에 모두 출연 승낙을 받고 올 초부터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처음엔 핑클 일부 멤버가 걱정을 하기도 했답니다. 네 명이 여행만 하는 모습을 방송으로 보여줄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서이었습니다.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데 대한 불안이 아닌 각자 역할을 맡아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1990년대 예능 방식이 몸에 익어 요즘 자연스러운 관찰 예능에 낯선 ‘탑골 공원 연예인’의 기우였던 겁니다.

가수 이효리가 그룹 핑클의 신고 '남아있는 노래처럼' 녹음을 하고 있다. JTBC 제공
 ◇이효리가 쓴 ‘남아있는 노래처럼’… 이상순이 추천한 김현철 

사실 ‘캠핑클럽’ 제작 소식이 올봄에 방송가에 퍼졌을 때 연예계 관계자들은 핑클의 재결합 기획 공연을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여겼습니다. 핑클이 재결합 공연을 확정해 사전에 예능 프로그램까지 찍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었습니다.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핑클은 공연장이 아닌 야영장에서 조촐하게 작은 무대를 꾸렸습니다. 제작진에 따르면 애초 핑클은 공연 개최 여부를 정하지 않은 채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공연을 비즈니스로 하지 말자’는 게 네 멤버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뒤 핑클 멤버들은 정식 공연을 준비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최종 결정을 내렸습니다. 10년 넘게 무대를 떠난 멤버들이 있는 상황에서 한 시간 넘게 정식 공연을 여는 건 무리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요즘 큰 공연장에서 하는 가수들의 공연을 ‘면봉 공연’이라고 합니다. 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너무 멀어 좋아하는 가수를 면봉처럼 봐야 하는 아이러니를 일컫는 표현입니다. 14년 만의 재결합 그리고 오랜만의 팬들과의 재회를 좀 더 가까이에서 격의 없이 하고 싶다는 바람도 핑클 공연이 ‘야영장 무대’로 이어진 배경이었습니다.

성대한 부활이 아닌 소박하게 마음을 나누는 핑클의 작은 첫걸음은 그들이 지난 22일 낸 신곡 ‘남아있는 노래처럼’에도 잘 드러납니다.

핑클은 이 곡에서 “남아있는 노래처럼 늘 우리 그대로”라고 노래합니다. 네 멤버가 모두 작사에 참여했지만, ‘남아있는 노래처럼 늘 우리 그대로’란 대목은 이효리가 썼습니다. 핑클은 이 곡에서 격정 없이 덤덤하게 ‘영원’을 꿈꿉니다. 신곡 프로듀싱은 가수 김현철이 했습니다. 방송에 나오진 않았지만, 이효리가 직접 김현철에 전화해 신곡 프로듀싱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작업에 다리를 놓은 건 이상순이었습니다. 이효리가 곡 작업을 맡길 음악인을 고민하고 있을 때 김현철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1990년대 감성을 가장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는 창작자가 김현철이라고 여긴 겁니다. 김현철은 요즘 10~20대 사이 부는 ‘시티팝’ 바람에 강제소환돼 새삼 그의 옛 노래가 재조명 받고 있습니다. 그는 이르면 내달 낼 새 앨범 ‘돛’(가제) 작업으로 정신없었지만, 짬을 내 후배(핑클)들의 우정 다지기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1세대 아이돌그룹 핑클이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떠난 여정을 담은 JTBC 예능프로그램 '캠핑클럽'. JTBC 제공
 ◇제주 방문 기획중인 핑클 

‘캠핑클럽’에서 이진과 성유리, 이효리는 서로 손을 뾰족하게 세워 엉덩이를 찌르는 장난을 주고받습니다. 지난 5월 ‘캠핑클럽’을 위해 만났을 때만 해도 어른처럼 서로를 대했던 핑클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 ‘소녀’가 됐습니다. 핑클 네 멤버 측에 따르면 핑클은 여전히 단톡방에서 활발하게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29일 ‘캠핑클럽’ 마지막 방송까지 넉 달 동안 서로 살을 비비며 정을 나눈 뒤의 변화입니다.

이효리는 ‘캠핑클럽’ 여행이 끝난 뒤 이진을 만나러 미국에 다녀왔습니다. 올 연말에는 핑클 세 멤버가 함께 이효리의 제주집을 찾을 계획도 세우고 있답니다. ‘캠핑클럽’를 즐겨본다는 강윤미(34)씨는 “중학생 때의 내가 보여 종종 뭉클하다”라고 말했습니다. 핑클을 통해 시청자는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의 나를 돌아봅니다. ‘캠핑클럽’으로 다시 불을 지핀 핑클의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