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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곽철용 열풍에 ‘껄껄껄’…김응수 “내가 직접 고른 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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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곽철용 열풍에 ‘껄껄껄’…김응수 “내가 직접 고른 역이었다”

입력
2019.09.27 04:40
수정
2019.09.27 12:33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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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년 만에 재조명 ‘타짜’ 덕에 ‘강제 전성기’ 

‘타짜 곽철용 열풍’으로 배우 김응수의 신들린 애드리브도 주목받고 있다. “연기엔 의외성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극적이죠.” 사진=배우한 기자
‘타짜 곽철용 열풍’으로 배우 김응수의 신들린 애드리브도 주목받고 있다. “연기엔 의외성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극적이죠.” 사진=배우한 기자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최근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타짜3) 개봉을 계기로 13년 전 원조 ‘타짜’(2006)의 순정파 건달 곽철용 캐릭터가 온라인에서 재조명되며 ‘곽철용 신드롬’이 거세게 번지고 있다. 곽철용을 연기한 중견배우 김응수(58)는 난데없이 ‘강제 전성기’를 맞이했다. 곽철용 출연 장면을 모은 동영상은 26일 현재 조회 수가 70만건에 육박하고, 곽철용의 명대사를 응용한 패러디가 쏟아진다. 네티즌은 ‘타짜3’의 최대 수혜자가 김응수라면서 곽철용의 대사를 이렇게 또 패러디한다. “‘타짜2’도 안 되고, ‘타짜3’도 안 되고. 이 안에 곽철용이 없다. 이게 내 결론이다.”

26일 서울 상암동 한 카페에서 마주한 김응수는 갑작스러운 인기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곽철용 캐릭터를 갖고 재미있게 놀아 주니 기쁘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지인들이 동영상과 댓글을 보내 줘서 잘 챙겨 보고 있다는 그는 “‘철용’을 영어로 ‘아이언 드래곤’이라 표현한 걸 보고 가장 크게 웃었다”고 말했다. “중학생이 만든 영상엔 시험 고민이 담겨 있고, 패러디마다 각자가 처한 현실이 녹아 있더군요. 사회적 모순과 삶의 고통마저 웃음으로 풀어내다니, 한국인은 탁월한 유머 DNA를 갖고 있다니까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건 배우에게도 큰 보람이죠.”

“묻고 따블로 가!”를 외치는 ‘타짜’의 곽철용. 싸이더스 제공
“묻고 따블로 가!”를 외치는 ‘타짜’의 곽철용. 싸이더스 제공

‘타짜 곽철용’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건 1년 전 즈음이다. 젊은이들이 팬이라며 반갑게 다가와서는 그의 대사를 줄줄 읊더란다. “나 깡패 아니다. 나도 적금 붓고 보험 들고 살고 그런다.” “화란아, 나도 순정이 있다.” “어이 젊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찰진 애드리브가 버무려진 이 맛깔스러운 대사들을 정작 김응수 본인은 잊고 있었다고 한다. “비록 건달이지만 젠틀하잖아요. 어떻게든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으려고 순정이니 적금이니 들먹이고. 갑질하는 재벌보다 깡패의 윤리를 아는 곽철용이 낫다고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타짜’엔 촬영 시작 일주일 전에 합류했다. 최동훈 감독이 김응수에게 캐릭터 선택권을 줬고, 김응수는 곽철용을 골랐다. 최 감독의 외삼촌이 연극배우라서 최 감독과 김응수는 영화계에서 만나기 이전부터 친분이 두터웠다. “시나리오를 보니 초반부가 자칫하면 인물 소개하다 끝나겠더라고. 곽철용이 중심을 딱 잡고 끌고 가야 후반부가 매끄러울 거 같았어요.”

왼쪽은 영화 ‘코리아’(위부터)와 ‘미스터 고’, KBS ‘직장의 신’. 오른쪽은 MBC ‘해를 품은 달’(위)과 영화 ‘공작’. 각 방송사ㆍ배급사 제공
왼쪽은 영화 ‘코리아’(위부터)와 ‘미스터 고’, KBS ‘직장의 신’. 오른쪽은 MBC ‘해를 품은 달’(위)과 영화 ‘공작’. 각 방송사ㆍ배급사 제공

곽철용뿐 아니라 잊지 못할 캐릭터가 여럿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2012)의 부장검사, ‘부러진 화살’(2012)의 판사, KBS ‘추노’(2010)의 좌의정, MBC ‘해를 품은 달’(2012)의 영의정, KBS ‘임진왜란 1592’(2016)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주로 ‘악의 축’으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다. 김응수는 “일본만 해도 악역이란 용어 자체가 없는데 한국에선 캐릭터를 선과 악 이분법으로 가르더라”며 “재미가 있고 당위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면 선악 관계 없이 출연한다”고 말했다.

살벌하게 악랄하지만 위엄과 카리스마가 흐르는, 김응수만의 악인은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 “그걸 어떻게 설명해요. ‘감’으로 하는 거지. 장자(莊子)의 ‘천도(天道)’에 목수 ‘윤편(輪扁)’ 일화가 나와요. 왕이 책을 읽고 있고, 그 앞에서 목수가 수레바퀴를 깎다가 왕에게 무슨 책이냐고 물어요. 왕이 옛 성현의 말씀이라 답하죠. 그러자 목수가 ‘그것은 술 찌꺼기 같은 것’이라고 응수해요. 왕이 불같이 화를 내니까 목수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죠. ‘수레바퀴를 덜 깎으면 뻑뻑해서 굴대가 돌아가지 않고, 더 깎으면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다. 더도 덜도 아니게 정확하게 깎는 건 손의 감각이지, 성현의 말씀 같은 것이 아니다.’ 연기도 똑같아요. 무한히 훈련하고, 고생하고, 때론 실패도 하면서 감을 기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1년에 한 편씩 연극을 해요. 나를 심판하고 점검하기 위해서. 높은 곳엔 진리가 없어요, 낮은 곳에 있지.”

배우 김응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왼쪽)과 KBS ‘임진왜란 1592’. 쇼박스ㆍKBS 제공
배우 김응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 ‘범죄와의 전쟁’(왼쪽)과 KBS ‘임진왜란 1592’. 쇼박스ㆍKBS 제공
영화 ‘양자물리학’과 tvN ‘청일전자 미쓰리’가 25일 동시에 공개됐다. 메리크리스마스ㆍtvN 제공
영화 ‘양자물리학’과 tvN ‘청일전자 미쓰리’가 25일 동시에 공개됐다. 메리크리스마스ㆍtvN 제공

충남 서천 출신인 김응수는 지역 명문고로 꼽히는 군산제일고 재학 시절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손바닥 크기 삼중당문고 시리즈를 탐독하면서 책에서 본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에게 들려주곤 하다가 “나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부자의 연을 끊자”는 아버지의 거센 반대에도 재수까지 하면서 1981년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했고, 그와 동시에 극단 목화에서 연극을 시작했다. 10년간 간판 배우로 촉망받던 그가 1990년 일본의 영화 대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설립한 영화학교로 유학을 떠났을 때는 대학로가 발칵 뒤집혔다. 김응수는 “연극을 오래 하다 보니 연극 문법에 한계를 느꼈다”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저평가하는 연극계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마무라 감독 아래서 영화 연출을 수련하며 7년간 감독 데뷔를 차근차근 준비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귀국할 때도 스승은 그를 아까워하며 붙잡았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김응수는 연극, 영화, 드라마를 종횡무진했고, 38년간 100편 가까운 작품에 나왔다. 최근에는 영화 ‘양자물리학’과 tvN ‘청일전자 미쓰리’로 관객과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좋은 인격에서 좋은 연기가 나오는 법입니다. 연기 이전에 삶의 철학이 있어야 해요. 평상시에 고전을 비롯해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지금도 저는 아침마다 시를 한 편씩 읽어요. 인격 수양인 동시에 발성 연습까지 되거든요.”

“관객에게 감정이 잘 전달돼야 좋은 연기죠. 관객이 ‘감’(느낌)을 받으면 ‘동’(움직임)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감동인 거예요.” 사진=배우한 기자
“관객에게 감정이 잘 전달돼야 좋은 연기죠. 관객이 ‘감’(느낌)을 받으면 ‘동’(움직임)하게 돼 있어요. 그래서 감동인 거예요.” 사진=배우한 기자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선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요.” 듣는 이를 빨아들이는 배우 김응수의 달변은 오랜 독서와 사색으로 다져진 인문학적 소양에서 비롯된다. 사진=배우한 기자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선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요.” 듣는 이를 빨아들이는 배우 김응수의 달변은 오랜 독서와 사색으로 다져진 인문학적 소양에서 비롯된다. 사진=배우한 기자

숱한 작품에서 숱한 희로애락을 빚어낸 김응수에게도 미답의 영역이 있을까. 마지막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얼 더 하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예컨대 출근길에 집에서 5분 늦게 출발하고선 지하철도 5분 늦게 와 줬으면 하고 바라겠지만, 진짜 그렇게 되면 대형 사고가 나요.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세상이 돌아가는 겁니다. 일이 있으면 돈 벌어서 좋고, 일이 없으면 놀아서 좋고.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말이 있어요. 어딜 가든 주인으로 살면 그곳이 진리라는 뜻이에요. 내가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요. 그거면 충분하죠, 뭐.”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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