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감성 무장한 ‘천리마마트’, ‘워크맨’ 등 인기
천리마 마트 사장 ‘정복동’ 역을 맡은 배우 김병철씨가 해바라기 탈을 쓰고 “빅 똥을 싸겠다”며 병맛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tvN 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 화면 캡처

지난 20일 tvN에서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됐다. 웹툰 원작인 ‘쌉니다 천리마마트’ 이야기다. 그룹 내에서 이 마트로 발령 난 직원을 두고 ‘유배지로 갔다’는 표현을 쓸 만큼 허름한 마트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드라마다.

그런데 이 드라마 곳곳에 B급 감성을 자극하는 코드가 숨겨져 있어 웃음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바르면 털이 나는 왁싱이 대박 아이템으로 떠오르는가 하면, 마트 사장이 해바라기 탈을 쓰고 “(유배지나 다름 없는 천리마 마트로 본인을 좌천시킨) 회사에 ‘빅 똥’을 싸서 폭삭 망하게 하겠다”는 대사를 날리는 식이다. 첫 방송 이후 ‘한국 드라마 역사에 길이 남을 병맛’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병맛’은 맥락 없지만 웃긴 감정을 유발하는 대상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주류에서 벗어난 ‘B급 감성’을 대표한다. 2030은 이에 열광한다.

2030 사이에서 병맛은 보통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틀에 박히지 않아 자유분방한 느낌이 나고 유쾌한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완전함을 강요 받아온 이들이 이로부터 해방된 재미를 찾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병맛 문화와 관련, “2030이 취업난과 같은 부정적 사회에 주로 노출돼 있어, 진지하고 깊게 접근해야 하는 사안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욕구가 담긴 것”이라고 해석했다.

◇ ‘인생 말년처럼 여유롭고 느긋하게’ 병맛 웹툰
웹툰 속 주인공들이 불타고 있는 버스를 몰고 뜬금없이 ‘청와대로 가자’고 외치고 있다. 웹툰 ‘이말년 씨리즈’의 ‘불타는 버스’ 편 캡처

병맛 열풍의 시작은 원래 웹툰이었다.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체도 아니고 개연성이 전혀 없어도 웃기다는 이유로 주목 받는 작품들이 생겼다. 병맛 웹툰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작가는 이말년(본명 이병건ㆍ37)이다. 그의 예명 ‘말년’에도 ‘인생 말년처럼 여유롭고 느긋하게 살자’는 B급 감성이 담겨 있다. 그의 대표적인 만화 ‘불타는 버스’는 만화 속 버스 승객이 담배꽁초를 요금통에 실수로 넣어 버스에 불이 붙었는데, 버스기사가 뜬금 없이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고 말해 유명세를 탔다. 해당 장면은 영화 ‘실미도’의 한 장면을 패러디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예측할 수 없는 참신한 내용 전개로 웃음을 유발해 젊은 층의 사랑을 받았다.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 중인 웹툰 작가 기안84(본명 김희민ㆍ36)도 B급 감성 충만한 작가로 꼽힌다. 그의 대표작 ‘패션왕’ 속에는 고등학생 주인공들이 갑자기 신생아로 변해버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패션 대결에서 서로 귀여움을 어필하다 너무 귀여운 탓에 모습까지 바뀐다는 내용이엇다. 이런 웹툰을 즐겨 본다는 고등학생 한동준(19)씨는 “병맛 웹툰은 수험생의 유일한 낙”이라며 “진지한 구석 없이 장난스럽게 전개되는 웹툰을 보다 보면 수험 생활의 스트레스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이모티콘도 귀여움보다는 병맛으로
20대 카카오톡 유저들이 대화 중간 병맛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모습. 카카오톡 화면 캡처

병맛은 2030의 일상 곳곳에 녹아 있다. 젊은 층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에도 등장했다. 이들은 성의 없어 보여도 웃음을 주는 ‘발 그림’ 이모티콘에 지갑을 연다. 과거 귀여운 캐릭터 이모티콘이 주로 소비되던 것과는 다르다. 회사원 이윤정(24)씨가 병맛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이유는 “소소한 일탈과 스트레스 분출을 위해서”다. 그는 “현실에서는 주책을 떨면 이상한 사람 취급 받기 일쑤지만, B급 감성의 이모티콘을 사용하면 이모티콘이 대신 주책을 부려주는 느낌이라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했다.

◇ 병맛, 유튜브 대세 키워드가 되다
방송인 장성규씨가 유튜브 ‘워크맨’에서 놀이공원을 방문해 춤을 배우고 인형 탈을 쓰는 등 일일 알바를 하고 있다. 유튜브 ‘워크맨’ 캡처

유튜브에서도 병맛을 소비하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유튜브 중 하나인 ‘워크맨’, ‘와썹맨’ 등도 모두 B급 개그를 주제로 하고 있다. 구독자 261만명의 유튜브 채널 워크맨에서 방송인 장성규(37)씨는 놀이공원을 찾아 일일 아르바이트를 했다. 손님들에게 우스꽝스러운 춤을 선보이는가 하면, 자신에게 혹독한 일을 준 매니저에게 “머리 박으라”는 망언 아닌 망언도 한다. 이 영상은 2030의 폭발적 지지를 얻어 업로드 한 달 만에 조회수 1,027만회를 기록했다. 영상에는 “장씨는 독보적이다. 드립(애드리브)이 2030에 특화돼 있다”(나***) 등 댓글이 달렸다.

워크맨을 구독하는 회사원 박은지(26)씨는 “장성규씨가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센스 있는 말을 하는 게 웃기다. 퇴근 길 지하철에서 워크맨을 보면 회사에서 쌓인 피로가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병맛
대학 졸업식 현장에 과거 유명 드라마를 패러디한 유쾌한 졸업 축하 현수막이 걸려있다(왼쪽). 졸업식에 꽃다발을 들고 가는 대신 꽃 인형을 들고 가는 이도 늘고 있다(오른쪽). 네이버 블로그 ‘횸쓰’, 인스타그램 minas_garden 캡처

진지하고 엄숙해야 할 것 같은 장소에서도 2030의 병맛 사랑이 드러난다. 대학 졸업식 현장에 등장한 웃긴 현수막이 그 예다. 단정한 옷을 입고 함께 사진을 찍는 관습에서 벗어나 B급 감성 현수막을 거는 졸업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졸업식에 평범한 꽃다발이 아닌 커다랗고 ‘병맛스러운’ 꽃 모양 인형을 선물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2030이 이렇게 병맛을 추구하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 욕구로부터 비롯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곽 교수는 “청년들이 사회에 복잡하게만 접근해야 하는 것에 질렸을 수 있다”며 1월 개봉해 관객 1,600만명을 모은 영화 ‘극한직업’을 예로 들었다. “2030이 무겁고 진지한 메시지 대신 웃음을 주고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취업난, 이직 고민 등에 몰린 2030이 다양한 병맛 소재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곽 교수는 말했다.

정유정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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