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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들어가도 빚쟁이로 전락, 노동시장은 양극화… 밀레니얼 세대에 희망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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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들어가도 빚쟁이로 전락, 노동시장은 양극화… 밀레니얼 세대에 희망은 있나

입력
2019.09.27 04:40
수정
2019.09.27 09:5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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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가 맞닥뜨린 현재는 40년 넘게 지배적인 양식으로 세력을 넓혀온 자본주의의 결과다. 게티이미지뱅크
밀레니얼 세대가 맞닥뜨린 현재는 40년 넘게 지배적인 양식으로 세력을 넓혀온 자본주의의 결과다. 게티이미지뱅크

‘선언’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밀레니얼 선언’을 읽으며 새삼 곱씹는다. 선언은 해결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되레 해법 찾기를 촉구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이제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선포이기도 하다.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생)인 1988년생 저자 맬컴 해리스가 썼다. 물론 한국어판의 제목이기는 하지만, 선언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를 더듬어가며 책을 읽는 건 의미가 있다.

‘밀레니얼 선언’은 미국사회의 밀레니얼 세대가 맞닥뜨리게 된 사회적 운명의 원인을 탐색한 책이다. 이 세대가 그간의 어떤 세대보다도 풍족하게 자랐으면서도 왜 평생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게 됐는지를 자본주의의 구조에서 찾는다. 원서의 제목이 ‘인적 자본과 밀레니얼 세대의 형성(Human Capital and the Making of Millennials)’인 이유다. 미국판 밀레니얼 세대 분석이기는 하지만, 한국사회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의 삶을 21세기의 ‘숙제기계’로 살아가는 아동기, 공립대에 한정해도 1970년대에 비해 280%나 뛴 대학 등록금과 수업료로 채무자 신세가 되는 대학 재학 기간, 극도로 양극화 된 일자리로 불안정의 극치를 달리는 노동의 시간에 따라 차근차근 짚어 나간다.

저자는 밀레니얼 세대의 아동기를 기술하며 헬리콥터 부모(아이의 주변을 맴돌며 간섭, 통제하는 부모)를 거론한다. 아이의 시간을 통제하고 책임을 지며 과보호하려 드는 상류층 부모는 한국사회에도 이미 엄존한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미국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스스로 만든 규칙에 따라 친구들과 놀거나 음식을 먹는 등 자신들이 즐겁게 여기는 활동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며 “이전 세대에 비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저자는 말한다.

행복한 삶으로 가는 자격조건처럼 여겨지는 대학 입학은 어떤가.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처럼 대학에 가는 게 인생에서 좋은 투자일까. 대학 교육에 들어가는 돈이 얼마가 됐건 간에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고등교육의 비용이 비합리적으로 치솟은 데 반해 그것의 질은 높아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학자금 대출이 가장 큰 고민이 된 건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 만이 아니다.

그렇게 자라고 교육 받아 노동시장에 진입해도 낙관적이지 않다. 저자는 “21세기까지 살아남은 직업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이 해야만 하는 종류의 일뿐”이라며 “그것은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무급 감정노동은 과거보다 더욱 많이 강요된다.

이 책에서 괄목할 만한 부분이 여기서 나온다. 밀레니얼 세대가 진입한 노동시장에서 일자리의 여성화를 분석한 대목이다. 이는 대부분 기계나 컴퓨터가 대신하게 돼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춘 중간 소득 일자리가 남성 노동자의 것이었던 탓이다. 그렇다면 노동시장에서 줄어든 남성들의 일자리는 고스란히 여성들에게 이어질까. 저자는 “남자의 종말이 여성의 이익과 제로섬 게임을 이루지는 않는 듯하다”며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국 유리천장에 머리를 부딪치게 된다”고 진단한다. 그러니 노동시장의 변화를 거론하며 남성들이 설 땅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건 잘못된 추론이다. 여기서 비롯된 여성혐오는 과녁을 잘못 찾은 결과다. 저자는 페미니스트 탓을 하도록 몰아가는 기업을 가진 계급의 선동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일하면서 덜 벌게 됐는데 기업의 이익은 증대된 배경, 즉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측면에서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서문에서 설명한다. “우리(밀레니얼 세대)는 우연의 결과물이 아니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본주의는 사회를 구성하는 유일하고 지배적인 양식으로 그 세력을 넓혀왔다.”

그렇다면 이 책을 왜 썼을까. 현실이 이렇게 암울한 건 이런 이유이니 순응하라는 의미인 건가. 아니다. “우리의 결정적 순간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용기를 끌어내지 못하고 행운의 도움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마치 우리에게 아무 선택지가 없었던 것처럼 돌이켜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우리는 이미 다 가지고 있다. 우리를 우리의 모습으로 만들어낸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몫이다.” 저자의 선동에 고개라도 끄덕여볼 일이다.

밀레니얼 선언

맬컴 해리스 지음ㆍ노정태 옮김

생각정원 발행ㆍ456쪽ㆍ1만8,000원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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