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고희수(왼쪽부터), 정연비, 임지수씨가 서울 용산구 용문전통시장 상인들과 상생하는 카페 겸 공방 ‘디 공방’에서 직접 구운 빵과 음료를 선보이고 있다. 디 공방 제공.

‘구상한 사업 아이템을 실현시키고 싶어서’, ‘월급으로 받는 돈보다 큰 돈을 벌고 싶어서’, 혹은 ‘조직문화가 싫어서’. 2030 청년들이 창업을 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창업에 뛰어드는 2030이 늘어나는 상황은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확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9 정부 창업지원사업 통합 공고에 따르면 약 1조 1,180억원이 창업지원사업 예산으로 책정됐다. 소관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창업진흥원’ 등을 통해 약 9,975억원을 들여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대학에서도 청년 창업자를 육성하기 위한 수업과 지원이 이뤄진다. 숙명여대에는 ‘앙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ㆍ기업가 정신) 전공이 있다. 2010년 만들어진 이 학과는 자본이 아닌 혁신적 사고로 창업을 하거나 신 사업을 기획하는 기업가 육성을 목표로 한다. 2017년부터는 ‘캠퍼스타운사업단’을 만들어 서울시, 용산구와 협력해 청년 창업자를 육성하는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이 캠퍼스타운사업단에서 주최한 창업 공모전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서울 용산구 용문전통시장에 가게를 차렸다. 청년 창업과 전통시장 활성화를 접목시킨 복합문화공간 ‘디 공방’ 이야기다. 이곳에 숙명여대생 정연비(26ㆍ산업디자인,앙트러프러너십)씨와 임지수(26ㆍ한국어문학부)씨, 그리고 호서전문대학의 고희수(21ㆍ제과제빵)씨가 모였다.

용문시장 내부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디 공간 입구. 음료와 빵을 판매하는 카페이자 각종 수업이 자유롭게 열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정유정 인턴기자

‘디저트 공방’ 혹은 ‘시장에서의 디딤돌이 되는 공방’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디 공방은 음료와 빵을 판매하며 다양한 주제로 강의도 진행한다. 프랑스국립제과제빵학교(INBP)와 일본제과제빵학교 ‘파티세리 이치류’, 그리고 일본과자전문학교 ‘사카히마사히데’까지 수료한 고희수씨가 제빵사로서 각종 빵과 쿠키를 만들어 판매하고, 제과제빵 수업도 진행한다. 정씨는 가게 디자인과 강의 기획 업무를, 임씨는 강의 보조 업무를 맡고 있다.

전통 시장 활성화를 꿈꾸며 만들어진 곳인 만큼 디 공방이 시장 상인들과 상생하는 방법 중 하나는 시장에서 식재료를 구입해 카페 메뉴로 활용해 판매하는 것이다. 시장 내 채소가게, 두부가게, 과일가게, 떡집 상인들로부터 매일 새벽에 들어온 재료를 받아 메뉴를 만든다. 9월 한 달 동안에는 당근 케이크, 두부 티라미수, 레몬 마들렌, 인절미 도지마롤 등을 만들어 판매했다.

용문시장 내 털실 가게 상인을 초청해 진행한 에어팟 케이스 뜨개질 클래스 포스터. 디 공방 제공

본인의 경험을 나누고 싶은 상인이나 지역 주민에게 공간을 제공해 주는 역할도 한다. 지난달에는 털실로 에어팟(Airpodsㆍ애플의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 케이스를 만들어 판매하는 뜨개질 수업이 열리기도 했다.

용문시장에서 털실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실 뭉치만 팔면 2,000원 정도를 받는다. 그런데 이렇게 에어팟 케이스로 만들어 팔면 2만원에 팔린다는 것을 몰랐다”며 디 공방에 감사를 표했다. 시장에서 젊은이를 볼 일이 없어 아쉬웠는데, 디 공방에서 만난 2030 세대가 단골 손님이 돼 가게로 자주 찾아와 좋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디 공방에서 운영한 케이크 만들기 클래스. 지역 주민과 상인들이 참여해 베이킹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했다. 디공방 제공

디 공방 자체적으로 시장 상인이나 주민을 대상으로 강의를 열기도 한다. 강의는 디 공방을 운영하는 세 명 각자가 전공한 베이킹, 미술 관련 재능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된다. 고희수씨가 추석을 맞아 병아리 만주 베이킹 수업을 진행하고, 정연비씨가 아크릴 그림 그리기 수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특히 미술 수업은 어려서 학비 때문에 미대 진학의 꿈을 포기했던 시장 상인들의 참석률이 높았다고 한다. 이 외에도 임지수씨가 스마트폰 사용이 미숙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스마트폰 원데이 클래스’를 열기도 했다.

디 공방에서 만난 정연비(오른쪽)씨와 임지수씨. 직접 만든 털실 에어팟 케이스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정유정 인턴기자

“학교에서 산업디자인과 앙트러프러너십을 공부하면서 ‘내가 디자이너로서 세상을 지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정연비씨는 ‘취직에 비해 어려운 창업을 택한 이유’로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꼽았다. 이들은 회사원이 되면 세상에 자신만의 영향력을 떨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많은 창업 아이템 중에 전통시장 공방을 택한 것은 ‘2030의 시각으로 바꿀 수 있는 점이 굉장히 많을 것 같아서’였다. 이들에게는 2030만의 창의력으로 시장 경제를 아름답게 디자인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시장 조사 후에는 디 공방만의 철학도 세웠다. 여성 상인들과 더 많이 협력해 ‘여권 신장에 기여하는 가게’가 되기로 방향성을 잡았다. 이들이 봤을 때 여성 상인들은 유독 이윤을 많이 남기지 못 하는 소자본가게나 술집을 영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보통 도ㆍ소매상에게 수수료를 많이 뗄 수 있어 인기가 좋은 정육점이나 과일가게 같은 곳은 남성 상인이 많고, 여성 상인은 반찬ㆍ털실가게처럼 조그만 가게를 많이 하더라는 것이다. 가게 주변에 소위 ‘아가씨’가 있는 술집이 있어, 그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디 공방에서 진행되는 클래스에 초청해 다른 일을 배울 수 있게 이끌어 주고 싶다는 포부도 털어놨다.

직접 창업을 해보니 이상과 다른 현실적 문제도 있었다. 창업 이전에는 감성적인 카페로 꾸미고, 팔고 남은 것은 맛있게 먹을 생각에 마냥 들떴다. 그러나 창업을 해 보니 무엇보다 ‘가꾸고 유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위생이 중요해 매장 청소나 가게 앞 개똥 치우기, 화장실 청소 등에 가장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창업 전에는 왜 아무도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하기 싫은 일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지 않은 걸까요.” 정연비씨가 멋쩍게 웃었다.

비싼 월세 때문에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도 있었다. 현재 이들이 내는 월세는 120만원이다. 지금은 학교와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어 괜찮지만, 나중에 지원금 없이 자립해야 할 때가 오면 사업을 지속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럼에도 이들은 “창업을 망설이는 이가 있다면 꼭 도전해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임지수씨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창업하기 좋은 시기”라며 “정부에서도 지원금을 주고 많은 학교에서도 창업 공모전이 열리니 지금 비교적 창업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연비씨는 “창업을 해서 뿌듯한 순간은 단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순간’”이라며 “마음껏 지역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니 행복하다”라고 전했다.

정유정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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