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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만나다] 오스타펜코 “지고도 울지 않으면 테니스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입력
2019.09.26 07: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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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017 프랑스오픈 우승자’ 엘레나 오스타펜코와 유망주 명세인 

 ※ 어린 운동 선수들은 꿈을 먹고 자랍니다.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를 보고 자란 선수들이 있어 한국 스포츠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여전히 스타의 발자취를 따라 걷습니다. <한국일보>는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롤모델인 스타를 직접 만나 궁금한 것을 묻고 함께 희망을 키워가는 시리즈를 격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옐레나 오스타펜코와 명세인이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공원 테니스 경기장에서 본보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옐레나 오스타펜코와 명세인이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공원 테니스 경기장에서 본보와 인터뷰 도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꿈 많은 14살 테니스 소녀 명세인(정자중2)은 어젯밤 잠들지 못해 새벽이 돼서야 겨우 눈을 붙였다. 우상인 엘레나 오스타펜코(22ㆍ라트비아)를 만난다는 설렘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2017년 밤새 프랑스오픈을 TV로 지켜봤던 이유도, 그 해 코리아오픈 현장을 찾았던 이유도 모두 자신의 꿈이었던 오스타펜코를 먼 발치에서나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된 1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 오스타펜코가 눈앞에 나타나자 긴장한 명세인은 조심스레 준비했던 선물을 꺼냈다. “곰돌이 가방을 선물로 준비했다. 한참 고민해서 골랐는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며 작은 쇼핑백을 건넸다. 오스타펜코는 “너무 귀엽다(So cute)”를 연발하며 명세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여전히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여자테니스는 다시 한 번 비상을 꿈꾸고 있다. 그 중에서도 명세인은 테니스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대표 유망주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활약 중인 그는 지난해 6월 일본, 11월 경북 안동에서 열린 아시아 주니어챔피언십테니스대회 14세부 단식을 연속 제패했고, 지난 3월 경북 김천에서 열린 전국종별테니스대회에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체구는 작지만 빠른 발을 갖췄고, 뛰어난 밸런스에서 나오는 다부진 플레이가 장점이다. 명세인의 꿈은 투어 레벨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되는 것. 그런 그가 ‘약관’의 나이에 롤랑가로스를 제패한 오스타펜코를 만났으니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닐 수 없었다.

엘레나 오스타펜코가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공원 테니스 경기장에서 본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엘레나 오스타펜코가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픽공원 테니스 경기장에서 본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동호인 아버지의 추천으로 테니스를 시작했다는 명세인은 오스타펜코가 처음 라켓을 잡게 된 계기가 가장 궁금했다. 오스타펜코는 “어머니(엘레나 야코블레바)가 선수 출신 테니스 코치였는데, 5살 때 레슨을 받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보니 어느 순간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하고 있었다”며 웃었다. 이어 “어렸을 때 누구도 테니스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은 덕분에 ‘테니스는 즐겁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함께 온 명세인의 어머니에게 “절대 부담주거나 몰아붙이지 말고 뒤에서 서포트만 해주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어떤 상대를 만나도 물러서지 않는 오스타펜코의 ‘닥공(닥치고 공격)’ 스타일이 좋다는 명세인은 “언니는 힘이 왜 이렇게 세냐”고 그 비결을 묻기도 했다. 오스타펜코는 “사실 파워는 타고 나는 것이라 본인에 맞는 스타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코트 위에 설 때 상대 선수를 잡아먹겠다는 생각으로 덤벼서 샷마다 온 힘을 실으라”고 강조했다. 이어 “라켓을 잡을 때는 절대 힘이 많이 들어가 꽉 쥐면 안 된다. 그립이 자유로워야 오히려 더 빠른 서브를 넣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스타펜코는 큰 시합에 나설 때의 루틴도 공개했다. 그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 위해 경기 전날엔 외식을 안하고 조용한 호텔 방에서 룸서비스나 배달 음식을 먹는다”며 “시합 전까진 계속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기도 한단다”고 귀띔했다.

엘레나 오스타펜코가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핑공원 테니스 경기장 대기실에서 본보와 인터뷰 후 명세인 선수의 국가대표 유니폼에 싸인을 해주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엘레나 오스타펜코가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올림핑공원 테니스 경기장 대기실에서 본보와 인터뷰 후 명세인 선수의 국가대표 유니폼에 싸인을 해주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오스타펜코는 어린 친구 앞에서 경계심이 풀어진 듯 최근 부진으로 힘들었던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오스타펜코는 2018년 윔블던 4강에 진출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최근 슬럼프에 빠지며 커리어 최고 5위였던 세계랭킹도 벌써 70위권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 불과 22살이기에 많은 팬들은 그의 재기를 의심하지 않고 있다. “지면 울 때가 많다”는 명세인에게 “나도 그렇다”며 맞장구를 친 오스타펜코는 “졌을 때 슬프다는 건 테니스를 사랑한다는 증거야. 울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닐까”라고 위로했다. 이어 “모든 것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완벽주의 때문에 지금도 패배를 용납하기 힘들어. 나도 얼마 전까지 질 때마다 울었어”라고 말했다.

그런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오스타펜코는 춤과 쇼핑으로 푼다고 솔직히 말했다. 오스타펜코는 ‘사교 댄스(ballroom dance)’가 취미인데, 경력만 7년에 수준급 실력까지 갖췄다고 자랑했다. 이어 대회 상금으로 쇼핑을 즐긴다며 “쇼핑 싫어하는 소녀가 어디 있겠어. 스트레스는 무조건 쇼핑으로 푸는 거야”라며 성적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라는 농담을 던졌다.

오스타펜코의 말에 웃음을 터트린 명세인은 “다음에 한국에 오면 예쁜 거 많이 파는 가게를 추천해주겠다.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하러 가자”고 말했다. 두 사람은 새끼 손가락을 걸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다만 오스타펜코는 “코리안 바비큐랑 해물전은 정말 좋아하는데 찌개는 너무 매웠다”며 “매운 건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새 명세인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명세인은 “오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며 “아까 오스타펜코 언니한테 나중에 대회에서 선수 대 선수로 만나고 싶다고 했다. 꼭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당찬 다짐을 전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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