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 공격 배후로 지목된 이란을 겨냥해 “공격준비가 완료됐다(locked and loaded)”고 일갈한 것은 2년 전 북한을 향해 한 말과 같아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잠금(lock)과 장전(load)이 끝났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어놓은 사수의 ‘결정’만이 남아있다는 뜻. 상대를 제압할 준비를 마쳤고,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이 표현은 넓은 의미로는 중요한 사태를 앞에 두고 결단력과 빠른 실행능력을 약속하는 말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발언에 활용하면서 그의 전매특허 수사가 된 듯하다.
하지만 ‘공격준비완료’의 함의를 트럼프에 앞서 전 세계에 알린 인물은 따로 있다. 1926년 할리우드에 데뷔해 50여년 동안 미국을 대표하는 ‘서부활극 주인공’으로 활동했던 배우 존 웨인(1907~79)이다. 그는 49년 개봉 영화 ‘샌즈 오브 이오지마(Sands of Iwo jimaㆍ유황도의 모래)’에서 일본군과 싸우는 미군 분대장으로 출연했다. 43년 타라와섬 전투, 45년 이오지마(硫黃島) 상륙작전을 재현한 이 영화는 미국인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의도로 제작된 면이 적지 않다.
그가 죽음을 무릅쓰고, 대원들에게 상륙명령을 내리는 대목에서 ‘lock and load’는 이렇게 등장한다. “공격준비(lock and load!), 안전벨트 풀고 상륙하라(drop those lifebelts when we hit the beach!).” 이후 주저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터프가이’들의 단어장에 쓰여 돌고 돈 이 말이 스트롱맨 트럼프의 입에도 오르게 된 것이다. 존 웨인의 ‘공격준비’를 신호탄으로 영화 속 이오지마는 함락됐고, 역사는 미국의 일본 본토 침공 교두보를 완성한 45년 이오지마 전투로 일제의 패망이 확정됐음을 보여줬다. 영화라는 가상공간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어쨌든 존 웨인의 외침은 결단과 실행을 거쳐 결실을 이끌어냈다.
영화 개봉 70여년 뒤, 존 웨인과 같은 말을 외쳤던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미국이 당면한 가장 큰 골칫거리인 이란이라는 상대를 향해 그럴듯한 결단력이나 실행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핵합의 탈퇴 이후 미군 무인기 격추, 유조선 피습, 그리고 사우디 석유시설 피격으로 이어진 이란과 관계된 일련의 사태가 벌어지는 동안 그는 정작 군사적 압박을 제대로 하거나, 핵합의 파기 이후를 감당해줄 새로운 계획을 마련하지도 않았다. 군비절약을 위해 동맹국의 호르무즈 연합군 합류를 압박하는 정도가 그나마 구체적이었다. 추가한 제재는 술에 술 탄 듯, 실효를 기대하기 힘든 수준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러한 트럼프를 “자기 모순적”이라 평하며 “한 손에 칼을 들어 휘둘러 보지만, 동시에 어떻게든 중동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은 그가 줄곧 강조하는 ‘최대의 압박’과 배치된다”고 분석했다.
이란 문제 해결을 위한 무대로 세계는 유엔총회를 주목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말한 것과 달리 ‘준비완료’와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 정상들은 이란을 비난하면서도 미국ㆍ이란 정상회담을 위해 애쓰고 핵합의를 대신할 합의체계를 구상하느라 분주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골칫거리를 숨기듯 이란을 외면하며 한쪽에선 노벨평화상을 자천하기까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은 이란보다 내년 대선가도를 가로막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가득한 것 같다. 자국이기주의를 넘어 순수한 이기주의 행태마저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질적인 각오 없이 ‘(공격)준비완료’를 외치는 일은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세계는 무겁게 말하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지도자를 원한다.
양홍주 국제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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