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무너져도 가게를 찾으러 무조건 다시 들어갈 거야. 다들 마찬가지 심정이야. 그냥 보고 싶다고. 내가 하던 가게, 내 전부를 말이야."
23일 오전 서울 중구 제일평화시장 앞에서 상인 A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되뇌었다. 그의 시선이 머문 7층 규모 시장 건물은 불에 시커멓게 탔고 폴리스라인이 쳐진 출입구는 경찰이 통제했다.
A씨는 전날 새벽 불이 났다는 뉴스를 듣고 달려와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10년 넘게 새벽까지 발로 뛰면서 일군 삶의 터전이 하루 아침에 불길에 사라지는 걸 바라봤다.
동대문 의류상가 중 하나인 제일평화시장에 불이 난 건 22일 0시 40분쯤이다. 큰 불길은 약 1시간 만에 잡혔지만 발화지점인 3층 곳곳에 퍼진 잔불이 문제였다. 불이 쉽게 옮겨 붙을 수 있는 원단과 의류 속 남은 불씨까지 완전히 끄는 데 무려 16시간이 걸렸다.
상인 2명이 연기를 마셔 6층에서 구조됐고, 4층에서 타일 시공을 하던 작업자 2명이 대피해 큰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3층의 의류 도ㆍ소매 점포 200여 곳이 불길에 전소됐다. 날씨가 쌀쌀해지자 점포마다 가을ㆍ겨울 장사를 대비해 코트 등 의류를 무더기로 구입해놓은 상황이었다.
B씨는 “월요일에 지방에서 올라와 물건을 사가기 때문에 (일요일은) 제일 중요한 날이었다"며 " 수억 원씩 빚을 내 3개월 동안 장사를 하는 건데, 모든 게 끝났다”고 울먹였다. 1층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C씨는 “3층 지인이 자살하겠다고 하는데, 건물이 타면서 그 사람 인생도 다 타버린 것”이라고 전했다.
제일평화시장 건물은 창문이 없고, 외벽이 철판으로 둘러싸여 안으로 소화용수가 닿지 않았다. 결국 소방당국은 전날 오후에 외벽 철판을 뜯어내고서야 건물 내부에 물을 뿌렸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은 3층 상인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회의를 열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책위는 3층 복구까지 최소 두 달, 나머지 층도 한 달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시장 관리사무실과 상인연합회는 임시 텐트를 치고 장사를 할 상인들을 모집했지만 대부분 “팔 물건도 타버렸다”며 허탈해 하고 있다.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임시 매대나 다른 건물 임대 등을 구청 측과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발화지점과 화재 원인 등을 규명하며 건물 안전진단을 진행할 계획이다. 상인들은 손님이 끊길 수도 있는 안전진단 결과에 특히 긴장하고 있다. 2층에서 장사를 하는 최모씨는 “유동인구가 많은 건물 특성 상 안전진단이 웬만큼 잘나오지 않으면 장사를 못 하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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