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 용의자는 어떤 심리 상태일까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가 정신분석학적으로 ‘초자아’(Superego)가 형성되지 않은 ‘원초아’(Id) 상태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창수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용의자를 만나보지 않아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용의자가 진범일 경우, 드러난 범죄행위만 놓고 보면 용의자는 비합리적이며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원초아적 정신상태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초아는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가 제시한 ‘성격구조이론’에 등장하는 용어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원초아에서 자아(Ego), 마지막으로 초자아 단계를 밟으며 성격이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드는 주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본능적인 욕구를 추구하는 것으로, 마음대로 울고 보채는 갓난아기의 행동과 같다. 어른들의 훈육 등 사회관계 속에서 자신을 통제하는 자아가 발달하며, 최종적으로 사회의 윤리 규범을 내면화하는 초자아 단계에 이른다.
한 교수는 “이춘재가 검거된 처제 살인 사건이나 이전 화성 사건을 보면 여성 등 신체적 약자를 끔찍한 방법으로 살인했다”며 ”죄의식과 도덕의식을 담당하는 영역인 초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 흉포한 행위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므로, 범죄를 계속 저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무조건적으로 여성을 굴복시키고 강제하려는 왜곡된 성의식도 살인을 일으킨 원인으로 보인다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말한다. 최준호 한양대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건을 살펴보면 용의자는 여성을 살인한 후 피해 여성의 몸을 속옷으로 결박하는 것도 모자라 성기를 훼손하는 등 여성을 혐오하는 행위를 저질렀다”며 “이는 여성을 자기 뜻대로 하려는 성도착적 증세가 있어야 가능한데 용의자는 여성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0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교도소 안에서도 음란물 사진 10장을 본인 사물함에 보관하고 있었다”는 동료 재소자의 증언을 토대로 “성도착에 해당하는 가학적인 성적 욕망이 강렬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씨가 분명 반사회적 범죄를 저질렀지만, 반사회적 인격장애 판정을 받은 사람이 모두 이씨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므로 섣불리 예단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서정석 건국대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의학적으로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다고 진단된 사람은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범해도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죄책감이 없고 그것이 잘못인지를 인정하지 못한다”면서도 “이런 경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진단을 받은 사람이 모두 이씨와 같은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사실과 다른 편견”이라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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