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우리나라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에 대해 “다른 개도국들이 우리나라의 특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앞으로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우리 농업이 받고 있는 기존 혜택에는 영향이 없다”고도 했다. 이러한 발언을 두고 정부가 개도국 특혜 포기를 시사했다는 해석이 나오자 홍 부총리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며 다음달 정부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홍 부총리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이같이 말하며 “국익을 우선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WTO에서의 개도국 특혜 관련 동향 및 대응 방향이 대외경제장관회의 공식 안건으로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 부총리는 한국이 개도국 지위를 잃게 되더라도 국내 농업 분야 등이 당장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WTO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도국 특혜 이슈는 해당 국가들이 기존 협상을 통해 확보한 특혜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WTO 협상에서 특혜를 적용 받을 수 있을지에 관한 사안”이라며 “우리의 경우에도 농산물 관세율이나 WTO 보조금 규모 등 기존 혜택에 당장 영향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무리 단계에 있는 쌀 관세화 검증 협상결과도 영향을 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26일(현지시간) 무역대표부(USTR)에 내린 문서에서 “WTO 회원국 중 거의 3분의 2가 스스로 개도국으로 지정해 우대를 받고 있으며 일부 개도국 지정은 적절하지만 다수는 명백히 현재의 경제상황에 비춰 (현 지위가) 지탱될 수 없다”며 이 같은 나라 중 하나로 한국을 지목했다. 또 WTO가 90일 내로 이 문제와 관련해 실질적인 진전을 이뤄내지 못할 경우 미국 독자적으로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다만 회의 종료 후 취재진이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뜻인가’라고 묻자 “그런 뜻은 아니다”라며 “10월 대외경제장관회의 때 다시 논의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그는 “10월 회의 때는 최대한 (정부 방침) 발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홍 부총리는 회의에서 쌀 관세화 협의 관련해 “정부는 5개국과 협의를 진행해 현재 합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으며, 기존 513% 쌀 관세율도 유지되는 만큼 농업에 추가적인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지금껏 40만8,000톤 규모의 쌀 수입에 대해서만 낮은 관세를 부과하는 저율관세할당물량(TRQ) 제도를 시행하면서 초과분에 대해 관세 513%를 부과해왔는데, 미국 등 5개국은 높은 관세율과 TRQ 운영방식에 문제 삼으며 WTO에 이의를 제기해왔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합의 결과 관세율도 유지되고, 국가별 쿼터(CSQ)도 기존 TRQ 내에서 배분됐다는 게 홍 부총리의 설명이다.
홍 부총리는 글로벌 통상규범 수준이 강화되고 있다며 한국도 이에 맞게 국내 규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경제와 연관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WTO 체제 유지, 강화와 역내 무역체제 가입이 불가피하다”며 “수산보조금 제도, 국영기업 지원, 위생검역 강화, 전자상거래 제도 등 4가지 분야에 대해 글로벌 논의 동향, 대응 방향을 논하고 구체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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