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풍광과 잘 어울려 영화촬영 장소로 인기
손예진과 박해일 주연으로 2016년 개봉한 ‘덕혜옹주’의 한 장면. 친일파 한택수(윤제문분)는 조선의 ’마지막 황녀’인 어린 덕혜옹주(김소연분)가 백성들을 만나는 야외 행사에 입을 의상으로 기모노를 보내 모욕을 주려고 한다. 양장차림으로 차에서 내리는 덕혜옹주를 본 한택수는 불같이 화를 내고, 이에 덕혜옹주는 “대한제국의 옹주에게 기모노를 입으라고 보낸 것이냐”며 점잖게 ‘한방’을 날리고 기다리던 어린이들을 만나러 이동한다. 어린 덕혜옹주가 차를 타고 들어와 어린이들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 곳이 한남대 교내에 선교사촌이다.
한남대 선교사촌은 대학 정문에서 56주년기념관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아 5분가량 올라가면 마주하는 경상대 옆 숲 속에 자리하고 있다. 숲 속으로 난 흙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붉은 벽돌에 한식 기와를 올린 건물 여러채가 보인다. 아름드리 나무들과 50여종의 새들이 서식하는 곳에 조용하게 자리한 이곳이 대전시 문화재 자료 44호인 한남대 선교사촌이다. 일반인들에겐 지명을 딴 ‘오정동 선교사촌’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정동 선교사촌은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내 선교활동 거점지로 조성됐다. 호남선교에 집중했던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부는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인구증가와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대전을 주목했다. 이들은 선교활동을 위한 거점지 확보차원에서 대전과 인접한 충남 대덕군 회덕면 오정리(현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 지역의 땅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이들은 선교거점지를 조성하면서 지도자 양성을 위한 대학을 세운 한편 각 지역 대표들로 ‘대학위원회’를 구성하고 1955년 선교사 주택과 대학본관 공사를 시작했다.
선교사들은 한남대의 전신인 ‘대전대학’을 1956년 개교했다. 대전대는 같은 기독교계인 서울 숭실대와 통합, 숭전대 대전캠퍼스로 바뀌었다가 1982년 다시 분리되면서 한남대로 개칭됐다.
선교사촌의 건물들은 서양식 붉은 벽돌에 대들보와 서까래를 올리고 한식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으로 동서양이 융합된 형태다. 입구의 첫 번째 집이 한남대 설립위원장이자 초대 총장을 지낸 윌리엄 린톤(한국명 인돈) 선교사가 거주했던 린튼하우스다. 선교사촌에선 영화 덕혜옹주에 앞서 이병헌, 수애 주연의 ‘그 해 여름(2006)’과 설경구, 김남길이 연기한 ‘살인자의 기억법(2017)’, tvN드라마 ‘마더(2018)’ 등이 촬영됐다. 생태숲 배경의 선교사촌은 서양과 한국 전통양식이 결합된 디자인으로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선교사촌과 함께 한남대 캠퍼스 곳곳이 영화 촬영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으로 참가해 우승의 영광을 그린 ‘코리아(2012)’에서 남의 현정화(하지원분)와 북의 이분희(배두나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볍게 달리기 한 장소도 한남대 운동장이다. 이외에도 한국 포크계의 전설로 통하는 트윈폴리오를 그린 영화 ‘세시봉(2015)’이 사범대 잔디밭 앞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촬영했고 ‘변호인(2013)’이 학생회관, ‘1987(2017)’은 계의돈 기념관에서 촬영됐다.
허택회기자 thhe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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