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16>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게티이미지뱅크

20세기에 사라진 것들 가운데 협궤열차가 있다. 기존 철로보다 폭이 좁은 협궤(762㎜)를 오가는 두 량짜리 열차. 협궤열차로 유명한 노선은 1937년 7월 11일 개통한 수인선이다. 경기 수원에서 안산, 시흥을 지나 인천까지 오가던 협궤열차는 1995년 12월 31일 마지막 운행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초엽의 단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면서 뜬금없이 20년도 더 전에 사라진 협궤열차가 떠올랐다. 먼저 소설 속 미래의 사정부터 살펴보자. 제목처럼 빛의 속도만큼 빠른 우주선을 만드는 일은 몽상에 가깝다. 소설 속 인류는 포기하지 않고 “빛의 속도로 갈 수 없어도” 우주 곳곳을 여행하는 방법을 찾는다.

첫 번째 우주 개척 혁명은 이른바 ‘워프 항법’의 발명으로 가능해진다. 우주선을 둘러싼 시공간을 왜곡해서 만든 ‘워프 버블’로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이다. 인류는 이 방법으로 빛의 속도로 가더라도 수백 년에서 수만 년을 가야 할 먼 우주를 몇 년 만에 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우주 개척 시대가 시작한다.

두 번째 우주 개척 혁명은 우주 곳곳을 가로지르는 이른바 ‘웜홀’의 발견이 이끈다. “셀 수 없이 많은 웜홀” 통로를 이용해서 우주선을 우주 곳곳으로 보낼 수 있다. 웜홀을 이용한 방법은 워프 항법보다 더 안전하고, 결정적으로 더 쌌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이미 존재하는 통로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목적지를 인류 마음대로 고르기가 어려웠다.

이 대목에서 문제가 생긴다. 이미 워프 항법으로 인류가 개척한 우주 가운데 웜홀로 연결되지 않은 곳은 어떡할 것인가. 지구에는 그곳에 가족과 연인을 먼저 보내고 뒤따라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워프 항법 우주여행 노선을 유지해야 할까, 포기해야 할까. 워프 항법 우주선도 마치 먼 과거의 협궤열차가 그랬듯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까.

다행히 협궤열차가 다니던 수원, 안산, 시흥, 인천은 좀 더 빠른 전철로 촘촘히 연결되었다. 하지만 1970~80년대에 승객이 많았던 전국 곳곳 간이역은 대부분 폐쇄되었다. 그 가운데는 이용객이 없어서 사라진 곳도 있지만, 비둘기호나 통일호 같은 완행열차 노선이 폐지되고 나서 KTX 같은 고속열차가 서지 않아 잊힌 곳도 많다. 마치 워프 항법으로 갈 수 있었던 먼 우주가 잊힌 것처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김초엽이 펴낸 같은 제목 소설집의 표제작이다. 그는 대학에서 생화학을 공부하다 2017년 ‘관내 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중단편)과 가작을 동시에 수상하며 데뷔했다. 그의 첫 책을 읽으면서 설렜다. 이렇게 ‘따뜻한 상상력’이라니.

김초엽처럼 과학자나 과학도가 SF를 쓰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극소수다. SF의 ‘S(Science)’는 있는데 ‘F(Fiction)’가 빠진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 용어와 과학 개념만 젠체하며 늘어놓다가 이야기가 마땅히 가져야 할 재미, 반전, 감동을 놓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김초엽은 달랐다. 다양한 과학과 기술의 아이디어를 뼈대로 충분히 논리적이고 개연성 있는 가상 세계를 만들었다. 여기서 멈췄다면 그도 신통치 않았던 다른 과학자 SF의 실패를 반복했을 것이다. 대신 그는 가상 세계에다 따뜻한 상상력으로 사람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더구나 그 사람도 여성, 장애인, 이주민, 미혼모 같은 비주류다.

지금은 사라진 수인선 협궤열차와 그것과 얽힌 보통 사람의 이야기는 소설가 윤후명의 ‘협궤열차’로 영원히 남았다. 과학기술 급행열차를 타고서 불확실한 미래로 가고 있는 21세기 보통 사람의 열정과 불안의 흔적은 김초엽의 소설로 영원히 남을 것 같다. 이 작가의 멋진 출발과 그의 따뜻한 상상력을 응원한다.

SF 초심자 권유 지수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허블 발행ㆍ330쪽ㆍ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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