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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전 차관 “북미 협상, 손 놓고 구경 안 돼… 국익 위해 미국 단속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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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전 차관 “북미 협상, 손 놓고 구경 안 돼… 국익 위해 미국 단속해야”

입력
2019.09.19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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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평양공동선언 1주년…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 인터뷰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18일 본보 인터뷰에서 "북미 협상이 잘 풀리면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하라고 북한에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 제공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18일 본보 인터뷰에서 "북미 협상이 잘 풀리면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하라고 북한에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 제공

“지난 1년은 한반도 냉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구조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한계가 얼마나 뚜렷한지 드러난 기간이었다.”

대진대 교수인 김형석(54) 전 통일부 차관은 9월 평양공동선언 1주년을 맞아 18일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분단도 그랬지만, 남북끼리 아무리 잘해보려 해도 그 노력만으로 넘을 수 없는 국제적 조건이 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탄식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화원 영빈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한 게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9월 19일이었다.

결국 시동은 남북이 걸어도 한반도 비핵화 협상 진전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건 북미다. 따라서 일단은 북미 대화 촉진에 먼저 집중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북미 협상 결과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이후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북 제재가 풀릴 경우 이익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남북 경제협력을 북한이 도외시할 수 있는 만큼 미리 고리를 만들어놓는 식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_평양선언 이행이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과 북미, 북중 등 한반도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최고 지도자 간 만남이 이어졌지만 정점은 아무래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었다. 남북 정상이 평화 시대 진입과 더불어 사실상 불가침을 선언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한반도 문제에 남북관계가 갖는 구조적 한계가 평양선언 이행 과정에서 여실히 입증됐다. 아무리 남북이 잘하려 해도 국제사회 세력 구도나 이해관계와 분리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하나의 배경은 북한의 소극성이다. 국제사회의 불신과 제재의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를 적극 취했다면 원만히 이행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때처럼 우리와 합의해 평양선언 제5항의 비핵화 조치를 진행해도 됐지만 북한은 하지 않았다.”

_평양선언은 실현 가능한 구상이었나.

“남북이 북미관계 개선의 시동은 걸 수 있어도 동력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서로 이야기 잘 해보세요’ 할 수는 있지만 앞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레버리지(지렛대)는 없다.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북한에게는 제재 원인이 핵 개발인 만큼 경제 건설을 하고 싶으면 비핵화 조치에 집중하라고, 미국에게는 초기 조치로 북한의 두려움을 줄일 수 있는 인센티브를 조건부로라도 주고 그래도 북한이 엉뚱한 길로 간다면 철회하고 제재를 강화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각각 설득해야 한다. 이후 단계도 준비해야 한다. 북미 협상이 잘 되면 대북 체제 안전 보장, 비핵화, 제재 해제를 통한 경제 지원이 이어질 것이다. 예컨대 제재 완화로 무연탄 수출이 풀릴 경우 연간 5억~6억달러, 인력 송출이 허용되면 연 3억~4억달러 수입이 북한에 생기는데, 남북 경협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풀가동해도 연 1억 5,000만달러 수준이다. 남북 경협이 옆으로 빠져버릴 수 있다. 미리 남북 경제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적극 참여해 우리가 주도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_공교롭게 평양선언 1주년쯤 북미 실무협상 재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한이 평양선언에서 ‘영변 핵 시설 폐기’라는 카드를 꺼낸 건 우리를 이용해 미국을 움직여보겠다는 심산에서였지만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가 없었다. 협상 카드를 먼저 제시해 효과를 얻어보겠다는 기대를 접은 것 같다. 일종의 학습 효과다. 일단 원칙과 기본 입장만 거론하고 있다. 북한 지도층 입장에선 체제 보장보다 경제가 나아졌다는 걸 주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제재 완화에 더 관심이 크다. 미국 입장에서는 대선 기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만지작거리면 골치 아프다. 북한은 하노이 카드인 영변 핵 폐기에 플러스 알파(+α)를 제공할 의향이 있을 것이다. 관건은 미국의 제재 완화 여부다. 품목을 찍기 어려우면 올해 말인 노동 인력 귀국 시한을 연장하거나 무연탄 불법 환적 단속을 느슨히 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서로 국내 정치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선물을 교환하는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다”.

_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22~26일 방미하는 문 대통령이 회의 기간 트럼프 대통령과 9번째 한미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다시 촉진자가 될 수 있을까.

“할 수 있든 없든 간섭해야 하는 상황이다. 손 놓고 있으면 우리 입장이 협상 때 반영되지 않는다. 미국이 핵 폐기 대신 동결을 받아들이고 제재를 완화해주는 건 우리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가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어서 문 대통령이 뉴욕에 가는 게 아니다. 우리 입장과 국익, 이해관계가 소외되지 않도록 가서 단속해야 한다.”

_앞으로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공동 방역 같은 건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 정부는 이날 북한에 통지문을 통해 남북 간 방역 협력의 필요성을 거듭 환기시켰다.) 무엇보다 내부적으로 국론을 통합해 같은 목소리가 나오게 해야 한다. 이게 북한이나 미국에 대한 힘이다. 정부가 대북이나 통일 정책을 대내적으로 납득시키는 소통 노력을 강화했으면 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9ㆍ19 평양공동선언 주요 내용/김경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9ㆍ19 평양공동선언 주요 내용/김경진기자

◆김형석 전 차관은

남북 간 대화와 경색 국면을 두루 경험한 대표적 통일부 맨이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를 주로 담당해 왔다. 정세분석국장과 대변인 등 요직을 거쳤고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과 마지막 통일부 차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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