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별 주요 정책금융기관. 그래픽=김경진 기자

최근 산업은행(산은)과 수출입은행(수은)의 통합론을 제기한 이동걸 산은 회장이 지난해 여권 싱크탱크에서 발간한 관련 보고서를 참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보고서는 금융감독원장 출신인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이 작성한 것으로, 정책금융기관 분산에 따른 비효율 해소를 위해 지주사 체제의 통합을 제안하고 있다. 당사자인 산은ㆍ수은과 금융당국의 즉각적 반발을 부른 이 회장의 ‘폭탄 발언’이 여권과의 교감에서 비롯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18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은 “정책금융기관들의 업무 중복으로 인한 비효율 문제는 오래 전부터 공론화돼 왔으나 부처별 이해관계와 노조를 중심으로 한 기관 구성원들의 반발로 매번 흐지부지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확한 배경을 알 순 없지만, 이 회장의 발언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이 회장은 산은과 수은의 업무가 중첩되는 면이 있으니, 인력과 예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기업 지원에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정부에 통합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따로 교감은 없었다”면서도 “이 회장도 작년에 (내가 쓴)보고서 내용을 보신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정책금융기관, 통합형 체제로의 근본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제목으로 발표한 보고서는 역할ㆍ기능이 유사하지만 별개 기관들로 분산돼 있어 업무 비효율이 초래되는 현행 체계를 지주사 체제로 통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정책금융기관들을 물리적으로 하나의 조직으로 합치는 일이 어려운 만큼, 그 대안으로서 ‘통합정책금융지주회사’를 만들고 그 아래에 개별 정책금융기관을 자회사로 두는 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각 기관의 공통 업무를 한 곳으로 몰아주고, 그로 인해 생기는 잉여 인력을 다른 전문분야에 집중하면 되기에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이나 조직간 통합에서 생기는 갈등과 같은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제언했다. 19대 여당 국회의원을 지낸 뒤 2016~2018년 더미래연구소 소장을 거쳐 지난해 금융감독원장을 역임했던 김 위원장은 여권의 금융통으로 분류된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 연합뉴스

통합론을 두고 산은과 수은 측은 이구동성으로 “이 회장의 사견”이라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각 기관이 소속된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와도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16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기관들끼리 갈등을 일으켜서 경제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더 논란이 안 되면 좋겠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회장이 청와대 등 여권과 교감 없이는 문제제기를 하기 힘들었을 거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은 금융권 내 대표 ‘친문(親文ㆍ친문재인)’ 인사로, 은 위원장과 함께 금융위원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여권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은 “각 부처들은 산하기관이 통합돼 자신들의 업무 영역이 줄어드는 걸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부처 이기주의를 넘어 통합을 꾀하려면 결국 청와대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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