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델 회장이 1984년 대학 신입생 시절 창고에서 시작한 미국의 델테크놀로지스는 한때 개인용 컴퓨터(PC)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IBM, HP, 컴팩과 함께 세계 시장에서 PC 강자로 군림했던 델은 더 이상 PC 회사가 아니다. 경쟁사들이 사업을 쪼개고 매각하며 덩치를 줄인 반면 델은 거꾸로 PC, 주변기기, 클라우드, 보안, 데이터 분석, 대형 저장장치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정보기술(IT) 분야의 종합 솔루션 업체로 거듭났다.
결정적 계기는 2016년 세계 1위 데이터 저장장치업체 EMC와 합병이었다. 당시 델은 IT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인 670억달러를 주고 EMC와 합쳤다. 이때 EMC 관계사였던 가상화 솔루션전문 VM웨어, 보안업체 RSA, 클라우드 서비스 버투스트림,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피보탈 등이 한식구가 됐다.
지난 7일 델이 합병 3주년을 맞았다. 달라진 델의 위상과 향후 전략에 대해 본사 수석 부사장을 겸하는 김경진(63) 한국총괄사장을 만나 들어 봤다. 김 사장은 2003년 한국EMC 사장을 시작으로 16년째 최고경영자(CEO)를 맡으며 외국계 지사장 중에 최장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김 사장은 합병 성과에 대해 “양 사의 다양한 사업 영역과 기술이 합쳐져 완성도 높은 IT 회사가 됐다”며 “덩달아 국내에서도 위상이 커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20여가지 IT 분야에서 1등을 하고 있다”며 “특히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솔루션 제공 업체 중에 명실상부한 선두가 됐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은 앞으로 클라우드 서비스 확대로 데이터 산업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요즘 기업들은 비용을 줄이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수많은 데이터와 솔루션을 공유하는 클라우드를 도입하고 있다. 그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고 사업에 적용하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며 “이와 관련해 국내 금융권, 통신업체, 제조업체들과 적극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실어 나르는 5세대(G) 이동통신망이 중요하다고 보고 국내 통신 3사와 제휴를 맺고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었다. 김 사장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통신업체 및 자동차업체, 전자업체들과 5G로 기반 시설을 통제하는 스마트시티, 무인자동차 사업 등에 참여하고 있다”며 “국내 대기업은 물론이고 유럽의 폭스바겐, BMW와 무인자동차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의 무역 갈등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 사장은 “미중 갈등은 미국 본사 차원에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어서 큰 문제가 없다”며 “한일 무역 갈등이 더 걱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국내 반도체 생산에 부정적 영향이 나타나면 데이터센터, 서버 및 PC제조업체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미국 본사를 포함해 전세계 IT기업들이 한일 무역 갈등이 길어질까 봐 우려한다”고 전했다.
앞으로 델은 멀티 클라우드 시대에 대비할 계획이다. 멀티 클라우드란 기업 안팎의 다양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하나로 엮는 것을 말한다. 김 사장은 “속도가 느린 전통 기업들이 작고 빠른 기업들에 대응할 수 있도록 멀티 클라우드 솔루션 제공에 주력할 것”이라며 “클라우드의 말단에 해당하는 PC산업도 다시 부흥의 시대를 맞는 만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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