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를 둘러싼 악재와 비관적 전망 속에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역설적 호황을 누렸던 국내외 채권시장이 일제히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미중 무역분쟁 완화, 유럽ㆍ중국의 잇따른 부양 조치로 대외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이들 들어 국채 인기가 빠르게 하락(금리 상승)하는 모양새다. 시중금리의 바로미터인 채권금리의 상승은 투자, 대출 등 금융활동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요인이다. 다만 경기침체의 공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서 지난해 말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채금리 하락 추세를 뒤집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16일 금융권과 해외 언론에 따르면 주요국 국채금리가 이달 들어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국채금리는 국채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며, 금리가 오를수록 채권 공급이 늘고 수요는 줄어든다는 의미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13일 연 1.901%로 마감했다. 일주일 새 0.35%포인트가 오른 것으로 2013년 6월 이래 가장 큰 상승폭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금리 인하 기대로 계속해서 하락했던 독일의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주 역대 최저치(-0.72%)를 찍은 뒤 급반등하며 -0.45%(13일 기준)까지 올라왔다.
국내 채권금리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1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139%포인트 급등한 1.536%으로 마감했다. 지난달 역대 최저점(16일 1.172%)을 기록한 이래 지속적인 상승세다. 한국 채권금리의 상승은 해외보다 그 시점이 일렀다. 금투협은 △내년 정부 예산 확대에 따른 대규모 국채 발행 △안심전환대출 재원 마련을 위한 주택금융공사의 주택저당채권(MBS) 발행 등 공급 확대 전망과 함께 한국은행의 지난달 기준금리 동결을 채권금리 상승의 원인으로 꼽았다.
세계 국채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가 줄면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인 국채를 떠나 위험자산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특히 미중 무역협상의 전망을 밝게 하는 조치가 잇따라 나온 것이 이런 흐름을 부추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완전한 합의 이전에 중간 단계의 합의를 볼 수 있다고 했고, 양국 정부는 서로 일부 품목에 대해 관세 부과를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경기지표도 침체가 임박하진 않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물가가 상승하고 소비지출이 꾸준히 늘고 있고, 경기 침체의 전조로 주목을 받은 장단기 국채의 ‘금리 역전’도 완화됐다. 스위스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는 13일 보고서를 통해 “정치적 긴장의 완화와 미중 관계의 기대, 각국의 추가 부양책을 고려하면 선진국 금융시장에 낙관적”이라고 밝혔다.
시장은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완화 노선이 조정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16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통화정책을 예측하는 시카고선물거래소(CME)의 금리선물 시장은 오는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동결될 가능성을 18%로 예측했다. 한달 전만 해도 금리 동결 가능성은 0%였다. 안재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9월 FOMC에서 금융시장의 기대를 상회하는 통화정책적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작다”며 “견고한 미국 소비지표와 무역협상 흐름으로 연준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명분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최근의 채권시장 흐름 변화는 일시적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비록 미중 무역협상에 훈풍이 불고는 있지만 이미 부과한 관세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고, 국제 교역 부진으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제조업 경기가 수축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CNBC방송은 지난 13일 미국 대형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무역 협상에 대한 비관론이 여전히 강하다고 전했다. NH투자증권은 16일 보고서에서 “선진국 채권 금리 상승은 추세 전환보다 속도 조절일 가능성이 높으며, 중기적으로는 국제 금리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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