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최소투자액 11월부터 2배 인상에 “美 투자이민 막차” 설명회 북적 
 20대 취업, 40대 자녀교육, 70대 절세 목적… 加ㆍ포르투갈 등도 인기 
나라별 미국 투자이민 비자발급 현황. 그래픽=송정근기자

최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미국 투자이민 설명회장. 일요일 이른 아침 시간대 행사임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주최 측이 마련한 100여개 좌석은 금세 동났다. 서울뿐 아니라 부산, 제주 등에서 전국 각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투자이민 요건, 절차 등 설명에 귀를 쫑긋 세웠다.

요즘 서울 강남권 최고 유행 중 하나는 해외 투자이민 설명회다. 호텔이나 컨벤션 센터 등에서 번갈아 열린다. 올해 초 캐나다가 인기더니 요즘은 미국이다. 지난 7월 미국 이민국이 “11월부터 투자이민 최소투자액을 두 배 가까이 올린다”는 방침을 내놓자, 규제 강화 이전에 신청하려는 이들이 몰려들어서다. 그 덕에 이민회사들은 추석 연휴 때도 상담을 이어갔다. 김미현 한마음이민법인 대표는 “상담이 급격하게 늘어 정신이 없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일시적 붐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캐나다, 미국에 이어 최근엔 포르투갈ㆍ스페인 같은 유럽권 국가는 물론, 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 국가까지 투자이민 상담 국가로 떠올라서다. 투자이민 희망자들도 ‘40대 가장’에서 ‘20대 젊은이’와 ‘70~80대 노년층’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투자이민 열풍 뒤엔 한국의 불안한 정치, 경제적 상황이 놓여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영주권을 싸게 살 마지막 기회” 

미국 투자이민(EB-5)은 미국에다 투자해 10명 이상 고용을 창출하면 영주권을 내주는 제도다. 의사 등 전문직만 딸 수 있는 취업이민(EB1~4)보다 쉽다. ‘가성비’까지 좋다. 영국만 해도 투자이민 최소투자액이 200만파운드(약 30억원)에 달한다. 호주는 500만호주달러(약 40억원), 뉴질랜드는 1,000만뉴질랜드달러(약 76억원) 등으로 만만치 않다. 하지만 미국은 50만달러다. 달러당 1,200원 정도만 대입해도 6억1,000만원이면 된다. 선진국 영주권 가운데 가장 싸다.

하지만 미국 이민국은 지난 7월24일 연방관보(Federal Register)에다 투자이민 프로그램(EB-5) 변경안을 고시했다. 최소 투자금액을 간접투자의 경우 50만달러에서 90만달러(약 10억원)로, 직접투자는 100만달러에서 180만달러(약 21억원)로 올린다는 내용이다. 시행일은 11월21일이다.

이민업계는 큰 장이 섰다는 분위기다. 미국투자이민협회(IIUSA)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투자이민 청원서(I-526)를 낸 한국인은 391명이다. 100~150여명 수준에 머물던 투자이민 신청자는 2017년 200명을 돌파하면서 크게 늘고 있다. 업계에선 올해 역대 최고치인 500명을 넘기리란 예상이 나돈다.

최여경 이민법인 예스 대표는 “최근 환율 급등으로 추가 비용이 더 커졌는데도 이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미국행이 더 어려울 걸로 예상하는 이들이 많다”며 “최근 연예인, 정치인까지 상담 받으러 오는 걸 보고 미국 투자이민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걸 체감했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한국의 미국 투자이민청원(I-526) 수/김경진기자
 ◇자식 교육 걱정하는 중산층이 주 고객 

미국 투자이민을 알아보는 이들은 아무래도 고소득자들이다. 미국은 이민심사 때 자금출처를 철저히 따지기 때문에 한 번에 현금 6억5,000만원(투자금+각종 수수료) 정도를 동원할 수 있는 재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 높지 않은 투자이민 수익도 감당해내야 한다. 직접투자는 알아서 수익을 챙겨가야 한다. 투자센터를 통해 이뤄지는 간접투자는 5~6년 뒤 수익을 되돌려 주긴 한다. 하지만 영주권 취득 대가라 수익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거나, 많아 봐야 1~2% 수준에 그친다.

그래서 투자이민 상담의 주 고객층은 자녀 교육과 취직에 관심 있는 40~50대 장년층이다. 아이를 유학 보낸 강남의 대기업 직원, 전문직 종사자 등이 아파트를 전세로 돌리고 그 돈을 투자금으로 쓰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소연 한마음이민법인 부장은 “자식을 미국에 유학 보냈거나, 보낼 계획이 있는 분들이 미국 투자이민 막차를 타고 있다”고 귀띔했다. 미국은 영주권 신청 2년이 지나면 2년짜리 조건부 영주권이 나오는데 이때부터 학비 감면, 현지 취업 등 영주권자와 똑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지난달 24일 서울 역삼동 아세아타워에서 열린 미국투자이민 설명회. 이날 설명회장엔 10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이민법인대양
 ◇경제 불안, 젊은층ㆍ고령층도 떠민다 

최근 들어선 투자 이민 유행이 20대 젊은층, 70~80대 고령층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젊은이들은 취직 걱정이 제일 크다. 투자이민 세미나에서 만난 김모(25)씨는 “한국에서 대학 나와봐야 미래가 뻔하니 부모님에게 미리 유산 물려준다 생각하고 미국 영주권을 따달라고 했다”며 “미국에서 취업한 경력만 있으면 나중에 다시 한국에 와도 취직이 더 잘될 거 같다”고 했다.

고령층은 절세를 생각한다. 최근 70대 자산가의 미국 투자이민 상담을 진행한 A사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수십억을 물려주려다 50%를 세금으로 떼일 바에야 미국에서 제2의 인생을 살겠다는 이들이 제법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상속세 면세 한도가 1,100만달러(약 131억원)로 세금 부담이 우리에 비해 적다.

투자이민에 대한 동기야 제 각기 다르겠지만 그 뒤엔 정치 경제적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최여경 대표는 “실제 상담을 해보면 거의 대부분이 경기 불황을 걱정한다”며 “대개는 ‘더 이상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 ‘난 괜찮지만 자식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토로한다”고 전했다. 다른 이민업체 대표도 “이민 결정이 쉬운 게 아닌데 경제도 안 좋고 정치 상황도 복잡하다 보니 어차피 떠날 거라면 지금 떠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미국 밖으로 번져가는 이민 열기 

투자이민에 대한 관심은 미국 이외 다른 나라로도 번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엔 캐나다 투자이민 붐이 일었다. 캐나다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투자이민을 중단할 것이란 얘기가 나돌아서다. 18억원 이상의 순자산 보유자로 5년간 캐나다 국채에 10억원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조건이었음에도 그랬다.

지난달 11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열린 투지이민 설명회. 주말인데도 참석자들로 북적인다. 사진=한마음이민법인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은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도 투자이민 대상 국가로 관심을 받는다. 이들 나라는 일정 정도의 부동산(3억2,000만~6억4,000만원)만 사면 ‘골든 비자’나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 골든 비자는 일종의 장기체류증으로 부동산 거래, 취업 등 현지에서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 한 이민회사 대표는 “한국에서 힘들게 취업할 바에야 다른 나라로 가서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하며 살겠다며 나가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 비자도 인기다. 9,000만원 정도 내면 10년 거주증을 주는 방식인데, 국제학교 학비가 싼데다 미세먼지 청정지역이라 인기가 좋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화 가치가 하락하고 주식시장이 하락세를 거듭하는 등 실물경제가 위기에 견줄 만큼 안 좋다 보니 더는 자산가치를 지키기 어렵다는 심리가 자산가들 사이에서 팽배해지고 있다”며 “최근의 이민 열풍은 이런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걸로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민 열풍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이란 사회가 과거처럼 더는 한인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이민자가 기회를 얻기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민학회장 설동훈 전북대 교수는 “최근 국내 상황이 좋지 않고 시장 전망이 어둡다 보니 해외서 기회를 찾으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이런 욕망을 꺾을 순 없겠지만 정부가 이런 현상에 경각심을 갖고 한국에 정착해 살고 싶도록 정책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김진웅 기자 wo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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