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동북아 영향력 축소 부를 한미일 공조 약화에는 ‘반색’
이익 누린 전통적 냉전 구도에 불확실성… 유불리 불투명
“(한일) 지소미아(GSOMIAㆍ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로 제일 기뻐하고 박수칠 나라는 어디냐.”(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
“북한이나 중국이나 러시아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정경두 국방부 장관)
“정 장관 답변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김성원 한국당 의원)
“그 이유를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잘못된 답변이었다.”(이낙연 국무총리)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드문 촌극이 빚어졌다. 보수 야당의 입장에 사실상 동조한 국방장관을 총리가 공개 면박한 것이다. 우파의 견지는 선명하다. 자본주의 진영인 한미일 편에서 사회주의 연대인 북중러와 맞서야 한다는 게 그들의 당위다. 그러나 정부는 무 자르듯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다. 우파를 뺀 정치 세력 간에는, 패권을 놓고 각축 중인 미중 가운데 한 편을 들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우리는 국가 안보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것인데 한미동맹을 지키려고 그간 우호관계를 맺어온 중국을 경쟁자로 만들고 유사시 그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게 과연 현명한가.”(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
“우리가 미국과 동맹을 맺고 일본과 우호적인 안보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중 우호관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김종대 정의당 의원)
긴밀한 한미일 안보 공조가 패권을 유지하고 싶은 미국에게는 긴요한 수단일 수 있어도 한국의 이익과 부합하는 길은 아니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인 2017년 10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의 대중(對中) ‘3불(不)’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3년 전 어렵사리 마련한 한미일 군사동맹의 단초가 지난달 22일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중국과의 승부에 사활을 거는 미 전략가 그룹이 격한 어조로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정 장관과 마찬가지로 13일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일관계 악화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기쁘게 할 뿐이라며 지소미아 종료 결정 철회를 위해 한미일 3국이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 데이비드 시어 전 미 국방부 아시아ㆍ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뿐 아니다.
그들이 부각하는 위협 주체는 북한보다 중국이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한일을 상대로 “단기적으로 북한, 장기적으로는 중국이라는 공동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지소미아 종료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이튿날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공개 대담에서는 랜달 슈라이버 미 국방부 인도ㆍ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가 “한일 간 갈등의 유일한 승자는 우리 경쟁자들인데, 우리가 직면한 가장 전략적인 도전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국과의 경쟁”이라고 했다.
같은 달 29일 미 관영 방송 미국의소리(VOA)에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군사령관도 “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동북아에서 안정과 번영을 지키는 동맹 구조의 질을 약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이익보다는 중국의 이익에 더 부합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달 4일에는 마이클 그린 CSIS 선임 부소장이 미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 청문회에서 “일본보다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 대열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중국은 이를 하나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고 했다(5일 VOA).
미중의 이해(利害)가 길항하는 건 사실이다. 2012년 이명박 정부가 해당 협정 체결을 추진할 당시 이를 ‘잠재적 위협’으로 규정한 중국은,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가 기어이 일본과 지소미아를 맺자 “관련국들이 냉전적 사고를 고수하고 정보ㆍ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건 한반도의 대립을 심화시킨다. 이는 동북아시아 지역에 새로운 불안 요인을 더하고 평화ㆍ발전의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으며 지역 각국의 공동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외교부 공식 논평을 통해 강도 높게 비난했었다.
그랬던 만큼 미국의 동북아 역내 영향력 축소를 부를 한미일 공조 약화에 미국과 경쟁 중인 중국이 반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20세기 들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 냉전이 지속 중인 한반도 주변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동요가 심한 쪽은 중소(中蘇) 분쟁이나 미중 수교, 중국의 개혁ㆍ개방 등 균열 요인이 끊이지 않은 데다 지금도 북미 협상 진전 탓에 북한의 진영 이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사회주의 진영이었는데, 비교적 장기간 안정적이던 자본주의 진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역내 역학 구도상 중국에게 호재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중국이 틈새를 벌려보려 할 개연성도 충분하다. 시 주석의 연내 방한을 통해 한국을 포섭하는 전략을 적극 구사할 거라는 예상이 베이징 외교가에서 나온다고 한다. 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로 2017년 이후 악화한 한중관계를 시 주석 방한을 계기로 사실상 원상 복구하면서 미중 분쟁 국면에 미국의 동맹인 한국을 우군이나 최소 중립적 입장으로 만드는 게 중국의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나아가 자국 주도의 한중일 삼각 협력으로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구상도 수면 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올 연말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동북아 내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자국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게 중국의 심산이다.
그러나 중국의 속내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일단 중국이 동아시아 역내 경제 통합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한일 간 갈등은 원심력을 키우는 요인이다. 자칭궈(賈慶國)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 중국 정부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을 타결하려 하고 있는데, 사실상 정치 문제인 한일관계가 무역 부문 마찰로 작용한다면 중국 정부 입장에서 좋은 일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 큰 고민거리는 불확실성이다. 최근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펴낸 보고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과 중국’에 따르면 표면적으로 중국은 한미일 대 북중러 냉전 프레임이 청산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지만 실제로는 이 프레임 안에서 국가 이익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구해왔고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한일 갈등 탓에 전통적 냉전 구도에 입각한 동북아 국제관계가 흔들리려 하고 있고, 이런 판의 변화가 자국에 유리할지 불리할지 중국이 아직 결론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보고서를 쓴 양갑용 전략연 책임연구위원은 “대미 무역 분쟁 탓에 골머리를 앓는 와중에 홍콩 시위까지 터지면서 리더십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중국 정부로서는 예견하거나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관리해야 할 리스크가 하나 더 늘어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군사안보 협력의 대외 전개 또는 중지는 주권 국가의 자주적 권리이지만, 관련 당사자 간의 양자 처리는 반드시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에 도움이 되며, 제3자(중국)의 이익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지난달 23일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유보적 논평은 이런 형편의 반영이라는 게 양 위원의 해석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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