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 무엇을 남겼나] <6> 저자 등재, 무너진 연구윤리
연구자 48% “저자 갈등” 불구 표절보다 소홀히 다뤄져… “합의에 의한 결정방식 정착을”
※조국 법무부장관 인사 검증 과정에서 개인의 도덕성, 자질 시비와 연관해 정치ㆍ사회적 갈등과 논쟁이 빚어졌습니다. 더러는 누적된 사회 현안이기도 했고, 과거 보기 드문 양상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일보는 조국 장관 인사검증을 통해 표출된 정치ㆍ사회 이슈를 점검하는 ‘조국사태 무엇을 남겼나’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는 공정성 문제나 진영 논리, 세대와 계층 갈등, 교육 제도, 미디어 역할 등 10가지 주제를 뽑아 현상을 짚어보고, 전문가 의견을 들어 깊이 있는 분석과 함께 대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대한병리학회 관계자가 지난 5일 상임이사회 참석을 위해 서울 종로구 대한병리학회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대한병리학회는 이날 열린 편집위원회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이 고교 시절 제1저자로 등재된 의학논문을 직권 취소했다. 뉴시스

‘조국 사태’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부른 이슈는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고교 시절 의학논문 제1저자 등재였다. 논문의 책임저자인 장영표 단국대 교수는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도와주려고 한 일”이라면서도 결국 “지나쳤다”고 책임을 인정했다. 논란 이후 대한병리학회가 논문을 취소했지만 학계에 남긴 과제는 여전히 무겁다. 교수의 선의만으로도 학문적 기여도와 관계 없이 제1저자로 등극할 수 있는 부조리한 학계 관행과 이에 관대한 풍토를 뿌리 뽑는 계기로 삼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조 장관 딸이 저자로서의 자격이 없는데도 논문에 이름을 올린 행위는 ‘부당한 저자표시’에 해당한다. 대한병리학회는 지난 5일 편집위원회의를 열고 조 장관 딸이 저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부당한 저자표시는 크게 연구와 논문 작성에 충분한 기여를 했음에도 저자에서 제외됐거나 반대로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않았지만 저자로 표시되는 경우로 구분된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칙’은 모두 부당한 저자표시를 △없는 사실(데이터)을 만들어내는 위조 △사실(데이터)을 조작하는 변조 △표절 등과 함께 연구부정으로 정의하고 있다. 영국연구진실성사무국(UK RIO), 영국사회학협회(BSA) 등 유럽 학계에서도 저자 자격이 있는데도 누락된 경우를 ‘유령저자’, 저자 자격이 없는데도 등재된 경우를 ‘선물저자’ ‘손님저자’ ‘명예저자’로 지칭하며 연구부정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그간 부당한 저자표시에 대한 논의가 위조, 변조, 표절과 같은 다른 연구윤리 문제에 비해 다소 소홀히 다뤄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인재 연구윤리정보센터장(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은 “부당한 저자표시를 좀 더 경미한 연구윤리 위반, 심각하지 않은 연구부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업적 평가를 위해 다른 사람이 다 써놓은 논문을 가로채는 경우도 이에 속한다”며 “특정 목적을 위한 고의적인 행위라는 측면에서 결코 가벼운 연구부정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연구자 절반 ‘저자 갈등’ 겪어… ‘성과 가로채기’에 박탈감

통계에서 드러난 연구자가 겪는 ‘저자 갈등’은 세간의 인식보다 심각하다. 한국연구재단의 최근 5년간 발생한 연구부정 행위를 보면 총 332건의 연구부정 중 부당 저자표시가 86건(25.9%)으로 표절(122건ㆍ36.7%)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또 생물학정보연구센터(BRIC)에서 지난 2015년 7월 과학기술 분야 회원 총 1,1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최근 3년간 참여한 논문에서 참여 연구자 간에 저자 표기(Authorship)를 놓고 갈등을 경험한 적이 있었냐’는 질문에 48%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갈등이 있었다고 답한 사람 중 60%는 갈등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신정욱 전국대학원생노조 사무국장은 “노력해서 얻은 연구 성과인 실험 데이터를 교수나 실험실 선배 등 다른 사람이 가져가 힘들어 하고 박탈감을 호소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최근 5년간 유형별 연구부정 발생 수. 김문중 기자

특히 논문이 대학이나 대학원 입학의 주요한 스펙으로 활용되면서, 교수의 미성년 자녀와 같이 책임저자의 이해관계자가 특별한 학문적 기여 없이도 공저자가 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 5월 교육부가 발표한 미성년 공저자 논문 조사에 따르면 영어로 번역, 약물 처치와 같은 단순 실험보조 정도로도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흔했다.

연구부정을 철저히 검증해야 할 대학은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해 소극적인 태도로 대응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황은성 서울시립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대학이 연구부정을 파악해도 교수에게 징계를 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연구비 삭감 등 현실적인 손실을 우려해 덮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부터 성숙한 연구윤리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육부가 지난해 교수의 미성년 자녀 공저자 논문 총 139건의 검증을 대학의 자체 조사에 맡겼으나 대학이 이 가운데 단 12건만 연구부정으로 판정하는데 그쳤다. 반면 교육부가 외부 전문가로 꾸린 검토 자문단은 대학이 연구부정이 아니라고 한 나머지 127건 가운데 85건이 검증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정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지난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딸 논문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설문에 응한 의사 96%는 해당 논문을 취소해야 한다고 답했다. 연합뉴스
◇논문 저자, 연구 기여도 평가해 정해야

학계도 책임저자인 교수 마음대로 저자와 저자 순서를 정해 온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원칙대로라면 연구자가 논문을 투고하는 시점에 한 자리에 모여 저자와 저자 순서를 정하고 논문 내용과 출판에 대한 저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연장자, 논문 게재에 도움을 준 사람을 저자로 끼워주는 등의 관행이 이런 원칙을 종종 압도해 왔다. 엄창섭 대학연구윤리협의회장(고려대 의대 교수)은 “연구자에게 논문의 저자가 된다는 것은 명예, 승진, 연구비와 같은 상당한 이익을 취한다는 면에서 양보할 수 없는 권리”라며 “이번 기회에 연구에 대한 기여도를 평가해 저자와 저자 순서를 합의에 의해 정하도록 하는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해도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실장은 “정부 지침이 저자를 ‘연구 창출 성과에 기여한 자’로 정의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를 기여했다고 봐야 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보니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며 “대학 차원에서 저자 표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단순히 논문 건수로 업적 평가를 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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