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년 전 1만명에 못 미쳤던 변호사가 2만명을 넘어섰다. 매년 1,500명 정도의 신규 변호사가 변호사 시험을 거쳐 시장에 유입된다. 변호사 시장이 위기라는 말조차 이제 ‘상투적’이라 느껴질 정도. 시장은 포화상태에 달했고, 10년 전 2.73건을 기록했던 1인당 사건수임건수는 지난해 1.2건으로 뚝 떨어졌다.
짙게 드리워진 업계 불황의 그늘은 새내기 변호사뿐만 아니라 중견 변호사들에게도 손을 뻗쳤고, 이제는 업계에 발을 들인 이상 누구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급기야 변호사들 역시 이제는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고민에서, ‘벼넥시트(변호사+브렉시트 합성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모두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와중에 더 깊게 파고들어 새 길을 모색하는 이들도 있다. 비집을 틈이 없을 것 같던 시장에서 ‘새로운 우물’ 파기에 열정을 쏟는 변호사들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가열차게 도전하라”고 외치는 용감한 변호사 세 명의 도전기를 들어 봤다.
◇윤경 “세상은 저지르고 도전하는 사람의 몫”
윤경 변호사는 2010년 스물 두 해 동안의 판사생활을 접고 변호사 업계에 뛰어들었다. “명문대 나와 판사가 되면 다 잘 풀릴 줄 알았는데, 아무리 발버둥치고 스트레스를 극복해도 인생이 바뀌지 않더라”는 게 그 이유다. ‘나만의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도전은 느리지만 견고하게 이뤄졌다. 우선 법무법인 바른에서 9년을 보내며 시장을 익혔고, 뒤이어 주특기인 경매를 주로 다루는 법무법인(더 리드)을 세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윤 변호사는 1년여의 시간을 더 투자해 올해 4월 변호사로서는 처음으로 부동산 대체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자산운용사(아하에셋자산운용)를 만들었다. “투자자들의 수요가 주식 채권 등 전통자산에서 대체투자로 이동하고 있고, 시대 흐름에 맞춰 주특기인 공경매(공공기관이 집행주체가 되는 경매) 투자와 법률서비스를 결합한다면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상품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방면에서 탄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금융, 조세 등 분야의 전문가들도 대거 영입했다.
이미 중견변호사 반열에 올라 얼마든지 안정을 추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이유를 묻자 “세상은 저지르고 도전하는 몫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윤 변호사는 “젊은 사람들이 법률을 의료나 부동산투자 등과 엮어 새로운 것을 창출했으면 한다”며 “이미 포화상태인 특허, 공인중개사, 세무사 등과 싸우지 말고 법의 범주를 벗어나려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로운 걸 시도하는 사람은 항상 뭔가를 얻기 마련”이라며 “도전해야 세상을 차지할 수 있고, 그래야 인생이 바뀐다는 걸 젊은 변호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호석, 스타트업 전문변호사를 ‘스타트업’ 하다
국내 대형 로펌 중 하나인 세종에서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변호사’의 삶을 살던 정호석 변호사도 7년 전 제 발로 정글에 뛰어들었다. ‘스타트업’이란 표현이 낯설던 시절, 스타트업 업계에 법률자문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계기는 사소했다. 세종에서 근무할 당시 학교 후배가 소규모 기업을 차렸다며 엔젤투자를 부탁했고, 그 때 스타트업이 뭔지 처음 알았다고 한다. 정 변호사는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는데, 변호사가 법률적인 부분을 조금만 도와주면 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실제 이런 이유로 미국에선 일찌감치 스타트업 자문 전문 로펌들이 생겨난 반면 우리나라는 하나도 없어 내가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초기엔 변호사라기보단 외판원에 가까웠다. 법률자문 한 번 받아보라며 직접 홍보하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건 기본이고, 어쩌다 자문을 하게 돼도 비용은 공짜에 가까웠다. 당연히 대형 로펌에서 받던 월급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의 돈으로 생활했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도전했지만 어떤 시점엔 스스로 확신이 없어져 나약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헛발질일까”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얻은 결과는 ‘스타트업 자문전문 변호사 1호’ 타이틀이다. 세 명이 의기투합해 세운 법무법인 세움은 7년 만에 직원 포함 30여명이 근무하는 중견회사가 됐고, 그 사이 레진코믹스, 네이버, 위메프, 직방 등 1,000여개 기업들이 정 변호사의 손을 거쳤다.
정 변호사는 최근 블록체인 분야에 관심을 쏟고 있다. 다시 한 번 새로운 분야 발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변호사 시장이 어려워서 힘들다고만 할 게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시장이 어떤 것이고, 그 시장에서 요구하는 게 뭔지, 이를 위해 내가 어떤 자격과 요건을 갖춰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그러면 어려운 시장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성우린, 재주는 한국조선사가 돈은 영국 변호사가?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성우린 변호사는 여타 변호사들과는 다른 독특한 경력을 가졌다.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상선을 타던 그는 우연찮은 기회에 변호사가 됐다. 항해사 시절 한 영국 도선사 성 변호사에게 “한국은 큰 조선회사가 많은데 왜 분쟁 날 때마다 영국 변호사들에게 맡기는지 모르겠다”며 “한국 회사들 덕분에 영국 변호사가 먹고 살 정도”라고 한 것. 성 변호사는 그 한 마디가 마음에 박혀 “내가 직접 해상전문변호사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해양강국인데다 관련 법률서비스가 잘 발달돼 있다 보니 해양 관련 사건사고는 국제적으로 영국법을 준거법(근거가 되는 법)으로 사용한다.
해상전문변호사는 사실 새로운 분야는 아니다. 30~40명 정도의 규모가 매년 유지되고 있고, 법률사무소 김앤장의 ‘장’인 장수길 변호사도 대표적인 해상변호사 중 한 명이다. 쟁쟁한 해상전문변호사들 중에서도 성 변호사가 유달리 튀는 이유는, 그의 전방위적 활동 때문이다. 그는 선박충돌, 선박기름유출 사고 등 전통적인 해상사건뿐만 아니라 해상레저, 환경, 정책 등 분야로 법률서비스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성 변호사는 “전반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레저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만큼 전에 없던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해 법률자문이 다양하게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해당 분야에는 법률자문서비스가 거의 없다.
성 변호사는 현재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 등에서 법률자문을 맡고 있다. 가령 계곡이나 하천에서 노를 저으며 물의 흐름을 타는 ‘래프팅’의 경우 수상레저안전법으로 보호받지만, 신생 레저인 ‘리버버깅(공기주입식 작은 배를 타고 빠르게 흐르는 강을 래프팅하는 스포츠)’ 또한 현행법의 보호범주에 포함되는지 여부 등을 성 변호사가 자문하는 것이다. 성 변호사는 “리버버깅은 수상레저안전법에 포함되지 않는데, 이럴 경우 해양정책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직접 제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성 변호사는 “요즘은 전문변호사를 표방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이라며 “전문분야를 구축하되 그 속에 갇히기 보단, 할 수 있는 범위를 계속 넓히려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