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관제권 얽혀 항공기 충돌 우려
한국 ‘서귀포 인근 신항로 개설’ 제안에
日 “안전 문제 없다” 복선화 주장만 반복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신항로 개설 등 ‘제주남단 항공회랑 정상화’를 위해 일본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협의에 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이후 악화된 한ㆍ일 관계가 항공안전 분야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우리가 관리하는 하늘인데도, 한ㆍ중ㆍ일 3국의 ‘관제권’이 얽혀 항공기 충돌 우려가 높은 제주남단 항공로 정상화를 위한 논의에서 일본이 유독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실무선에서 진척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접 일본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 장관은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제주남단 ‘항공회랑’에서 항공기가 안전거리 이내로 두 차례나 근접하는 등 안전이 매우 취약하다”며 “그럼에도 일본이 대화를 회피하는 데 깊은 우려를 표하며, 즉각 대화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항공회랑은 항공로 설정이 곤란한 특수 여건에서 특정 고도로만 비행이 가능한 구역이다. 일반항로에서는 항공기가 고도를 바꿀 수 있지만 항공회랑에서는 안 된다.

◇한ㆍ중ㆍ일 관제 얽혀

항공회랑 문제는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3년 중국과 일본이 직항로를 개설하면서 관제를 어디에서 할지 결정해야 했는데, 당시는 한중 수교(1992년) 전이어서 중국이 한국과의 관제교신을 반대했다. 이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중재로 제주남단 공해 상공에 중국ㆍ일본이 관제하는 회랑을 만든 것이다. 회랑의 전체 길이는 519㎞, 폭은 93㎞이며 이 중 259㎞ 길이가 한국이 관제를 담당하는 비행정보구역(FIR)에 포함된다.

1983년엔 우리에게 제주남단은 사용하지 않는 항로여서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 한국에서 중국과 동남아로 향하는 항공편이 급증하면서 현재 제주남단 하늘길은 1일 통행 항공기가 880여대에 이르면서도 한ㆍ중ㆍ일의 관제권이 뒤섞여 안전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 6월 30일 제주를 떠나 중국 상하이로 향하던 중국 길상 항공 비행기가 근접 비행하는 중국 동방 항공 여객기를 피해 급히 고도를 낮추기도 했다.

이에 한ㆍ중ㆍ일은 지난해 10월 ICAO 주재로 항공회랑 정상화 실무그룹을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지난 1월부터 본격 협의를 진행 중이다. 우리 정부는 현재 제주 서귀포 인근 상공을 가로지르는 한ㆍ중ㆍ일 연결 신항로를 만들어 항공회랑과 교통량을 분산하는 방안을 지난 7월 ICAO와 중국ㆍ일본 측에 제시했다. 기존 항공회랑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한 방향으로만 사용하고, 신항공로는 한국이 전적으로 관제한다는 방안이다. 여기에 중국과 ICAO는 긍정적 입장을 표했다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제주남단 항공회랑. 그래픽=강준구 기자
◇일본 “안전 문제 없어”

하지만 실무협의에는 참석했던 일본은 우리의 차관급 회담 개최 요구(4월)에 아직 응답하지 않고 있다. 7~9월 추가협의 기간에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기존 항공회랑을 복선화하자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중이다.

일본은 신항로 이용 시 30마일 가량 이동거리가 늘어나 비행시간과 유류비가 증가한다고 주장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관제권을 한국에 넘길 경우 그간 없었던 제약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가 항공 안전 논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토부는 기존 ICAO, 중국, 일본과의 협의는 계속 진행하되, 동시에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지난 6일 일본 후쿠오카 관제소가 국제 기준에 맞춰 관제업무를 제공하는지를 판단할 자료를 일본 항공당국에 요청했다. 우리 정부의 안전감독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항공회랑 주변 공역에 매년 1~2회 안전평가를 실시하고, 국제사회와 협의해 항공회랑을 지나는 항공기의 공중충돌경고장치 정비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도 연내 마련할 계획이다. 김현미 장관은 “일본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한ㆍ중ㆍ일 자국민은 물론, 세계인이 안전하게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해줄 것을 요구한다”고 일본의 대화 참여를 재차 촉구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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