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회의원 평균연령은 55세가 넘어서 세계 최고 수준이고, 국민 중위연령보다 훨씬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다른 제도를 살펴보면 젊은 세대에게는 결코 발언권을 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질 지경입니다. 북한도 17세인 투표권 연령이 우리나라는 19세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18세 남자는 군대는 가야 하지만 투표는 할 수 없습니다. 교육감 선거에는 일제시대에 학교 졸업한 사람도 투표할 수 있지만, 고등학생은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한국일보 기획 ‘스타트업! 젊은 정치 <10> 젊은 정치를 응원해’

1908년, 프랑스의 라 샤펠 오생이라는 곳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화석이 발견됩니다. 이 화석은 훼손이 적었기 때문에 최근까지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유골이 거동도 어렵고 음식도 잘 못 씹는 노인의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무려 5만년 전의 원시인류도 노인을 봉양했다는 의미입니다. 노인봉양이 종교나 전통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집단에 뭔가 도움이 되는 행동이었을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는 증거입니다. 실제로 인류학자들은 노인이 가진 축적된 경험이 집단에 유익하기 때문에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나 관습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노인의 경험이 가치가 있다는 믿음은 우리나라 여러 조직에서도 쉽게 확인됩니다. 각종 회의에서 위원장을 선출할 때 나이를 기준으로 삼는 관례들은 물론, 기업에서 나이든 이들이 더 많은 의사결정권과 보상을 갖는 경향도 그렇습니다. 경험이 많으면 더 현명해지고, 따라서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 널리 퍼져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진실일까요? 노인이 많은 기업이 더 성과가 좋다는 실증연구는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최근의 기업사는 경험 없는 창업자들이 사회적ᆞ기술적 변화를 이용해 기존 기업들을 경쟁에서 밀어낸 역사로 가득합니다. 과거의 경험이 현명함이 아니라 경직성이 되어 새로운 시도를 주저앉게 한다는 연구도 많습니다. 경험의 가치가 의심스러운 대목입니다. 경험과 통찰을 인간이 아닌 존재가 제공하는 흐름도 시작되었습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은 경험 많은 경영관리자들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기능공들은 마이스터가 아니라 AR기기들로부터 도제훈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축적된 경험으로 자신의 지위와 보상을 합리화하던 (저 같은) 세대들의 정당성은 공격받게 될 것입니다. 정보 습득력과 유연성이 뛰어난 젊은 세대에게 의사결정권과 보상을 넘겨야 한다는 주장에는 진실이 있습니다. 젊은이를 공경해야 하는 시대가 오는 셈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기성세대의 힘이 너무 크고, 변화의 조짐도 별로 없습니다.

주요 선진국들의 의원 평균 연령은 대체로 40대 중후반이고, 그 나라의 중위 연령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55세가 넘어서 세계 최고 수준이고, 국민 중위 연령보다 훨씬 높습니다. 우리나라의 다른 제도를 살펴보면 젊은 세대에게는 결코 발언권을 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질 지경입니다. 북한도 17세인 투표권 연령이 우리나라는 19세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18세 남자는 군대는 가야 하지만 투표는 할 수 없습니다. 교육감 선거에는 일제시대에 학교 졸업한 사람도 투표할 수 있지만, 고등학생은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교육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내지 말라는 것이지요.

젊은이들의 주장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태도는 더 절망적입니다. 징집된 사병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청년층에 확산되고 있지만, 이를 진지하게 보도한 언론은 없습니다. 이집트조차 징집병에게 최저임금을 준다는 점을 아는 기성세대도 거의 없습니다. 최근 법무부장관 임명 국면에서 이런 태도는 더 확연해졌습니다. 대학생들을 기득권자로 정의하고 대자보 첨삭 교육을 시켜주겠다며 비아냥댄 진보 노인들이나, 학생들 집회를 유튜브 중계하며 젊은층도 태극기부대라고 신났던 보수 노인들 중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청년들은 수도 부족하고 권력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젊은층의 생각을 존중하는 기성세대의 각성이 꼭 필요합니다. 이들의 선택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출산을 멈추어 대한민국을 소멸시키는 청년층의 집단적 선택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젊은이를 공경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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