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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 인사가 이뤄진 9일 문재인(왼쪽부터) 대통령, 조국 법무부 장관, 윤석열 검찰총장이 각자의 자리에서 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류효진 기자. 배우한 기자. 이한호 기자.

검찰이 지배한 2주였다. 의도가 어떠했든 검찰은 정국의 최대 변수(變數)가 됐다. 윤석열호(號)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수사를 보는 시선은 엇갈렸지만 범죄를 처단하겠다고 동분서주하는 검사를 비난하고 탓하는 것만큼 궁색한 일도 없다. 특히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면 비판의 명분은 더 옹색하다. 곳곳에서 증거인멸이 시도되고, 관련자가 출국까지 해버렸다면 지체할 여지가 없다는 것도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일각에서 이러한 검찰의 행보를 수사를 위한 ‘직진본능’으로만 액면 그대로 보지 않은 것은, 수사의 이례적 범위와 타이밍에 더해 누적된 경험칙 때문이다. 통상 장관 임명에 가장 중요한 상수여야 할 민심, 여론을 수사라는 변수가 대신 좌지우지하게 됐고, 그 무대에 검찰이 자진 등판한 모양새가 어딘가 익숙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수사의 합법적 물리력이 정치로 작동하는 고전적 원리가 그랬기 때문이다. 의도했든 아니었든 검찰이 수사의 지배자를 넘어 이슈의 지배자, 여론의 지배자, 절차의 지배자, 인사의 지배자로 등극하는 순간 국민, 국회, 청와대의 자리가 좁아진다는 걸 익히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발휘하고 있는 게 법률가의 감각인지 정치인의 감각인지 예단하고 속단할 근거는 없다. 다만 검찰을 ‘국민을 위한 법률 서비스 기관’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명분이 세간에서 재차 힘을 받고 있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 무대에서 슬그머니 조연을 자처한 주연, 즉 정치권은 자성의 목소리 하나 없이 이성을 잃은 비난과, 물색 없는 환영만 쏟아낸다. 돌아보면 검찰의 힘이 막강했을 때는 늘 그만큼 정치가 취약했을 때다. 누군가는 부정부패, 정경유착으로 검찰 수사의 타깃으로 전락했고, 누군가는 검찰의 권력을 적극 활용해 정적을 제거했다. 적극적인 정치와 타협, 토론, 승복으로 해결해야 할 각종 정쟁은 스스로 다루지 못하고 고소·고발을 해 검찰에 판단을 맡겼다. 상대당과 대화하느니, 검찰이 내 편을 들어줄 것을 믿겠다는 식이다.

걸핏하면 고소·고발장을 들고 검찰청 민원실로 향하면서, 수사를 해도 안 해도 “정치 검찰을 규탄한다”고 공허하게 외치면서, 여야가 정권에 따라 공수만 바꿔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정치권은 차곡차곡 검찰의 존재감을 키워왔다. 최근 정국도 비슷하다. 각자 과도한 의미부여에 몰두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검찰 수사를 “내란음모 수사하듯 한다”며 과잉해석으로 판을 부풀리고, 야당은 “기소되면 사퇴”하라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종용하며 검찰에 화음 맞췄다.

검찰개혁을 할 기회가 영 없던 것도 아니다. 참여정부에서 제출된 고위공직자수사처 설립 법안을 미온적 태도 속에 자동 폐기시킨 것은 국회였다. 과연 정치권이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검찰공화국’을 규탄할 자격이 있는가. 정치가 그대로인데 검찰 조직을 백 번 뜯어 고친다고 권력기관의 탈정치화가 따라올까. 검찰의 힘을 뺀들, 그 권력의 공백을 다른 기관이 차지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검찰개혁, 사법개혁의 문제 모두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정치개혁의 문제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검찰은 검찰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장관은 장관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건 국회는 국회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여당은 뜬소문에 기대 막말로 검찰 비난에 앞장서며 혼란을 자초하고, 야당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박수를 치며 대여투쟁에 힘쓸 때가 아니다. 화려한 언사로 수사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대신 실력으로 검찰을 지배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 검찰이 쥔 정국의 주도권, 키, 칼자루를 어떻게 국민의 것이자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 것으로 가져와야 할지, 속이 타지도 않는가. 국민을 검찰공화국에 살게 하든지, 민주공화국에 살게 하든지. 결말은 하나뿐이다.

김혜영 정치부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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