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처럼 ‘과로사방지법’ 만들고 근로감독 강화해야
지난 5월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간호사 그룹 내의 괴롭힘인 ‘태움’에 의한 것이라는 유족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과중한 업무에 따른 부담이 누적되어 고인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이른바 과로 자살을 인정한 것이다. 같은 달 대법원은 실수로 회사인 서울메트로에 17억원의 손실을 입힌 데 대해 괴로워하다 등산을 가겠다며 집을 나선 뒤 숨진 채 발견된 김모씨에 대해서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취지로 판결했다.
자살에 대한 산재 승인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8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인정률은 91.5%로 사상 처음 90%대에 진입했고, 자살자에 대한 산재 신청 승인율도 2016년 34.5%에서 2018년 80.0%로 급격하게 올라갔다. 불과 2, 3년 전만 해도 근로자가 자살한 경우 개인의 성격이나 정신적 문제에 따른 것으로 치부하고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웠던 점을 고려하면 큰 변화다.
그러나 업무 스트레스 등 일과 관련된 근로자의 자살이 연간 500건 정도로 추정되는데도 산재 신청을 하는 경우는 연간 100건(2018년 95건)에 못 미치고 있다. 2017년 전체 자살 사망자는 1만2,463명이고 이중 근로자는 4,231명이지만 산재 신청자는 59명에 그쳤다. 김인아 한양대 의대 교수(직업환경의학교실)는 “변사사건 접수 시 가장 먼저 출동하는 경찰의 조서에 따르면 업무나 직장 관련 자살로 추정되는 경우가 연간 500여건에 달하지만 이중 실제 산재 신청을 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고 설명했다.
근로자 자살 예방을 위한 근본대책이 미비하다는 점은 풀어야할 숙제다.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범국가적 자살 예방 정책 시행이 시행 중이지만, 근로자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법률사무소 ‘일과 사람’의 권동희 노무사는 “일반 사고성 재해에 대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 등 처벌규정이 있어 재해예방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하지만, 과로와 업무 스트레스로 유발된 자살사건은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나 적극적인 예방조치의무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실시됐고 최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것은 다행이지만 전문가들은 근로자 자살 예방을 위한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 입법과 근로 감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과로사ㆍ과로자살 문제 대응경험과 과제 워크숍’에는 산재 인정을 받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또다른 근로자 자살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고 있는 유가족들이 다수 참석했다. 이중 인터넷강의업체 ST유니타스에서 1년 넘게 주 69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하다 지난해 1월 세상을 등진 웹디자이너 장모씨의 언니 장향미(40)씨는 “동생이 바랐던 것은 신입들이 야근하지 않는 회사였는데, 동생 죽음으로도 회사의 노동환경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답답해했다.
전문가들은 2014년 ‘과로사방지법’을 제정한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과로사나 과로자살 등 과로나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죽음을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과로사 예방법’을 제정하거나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 근로자의 정신건강을 보호하도록 강제하는 조항을 넣는 것도 방법이다.
김인아 교수는 이와 관련 “산업안전보건법에 회사가 과로, 직장내 괴롭힘, 감정 노동 등 위험 요인에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을 보호해야 한다는 조항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기적인 정신건강 진단과 심리상담 지원 등의 의무를 부여하는 것도 대책이 될 수 있다. 한인임 ‘과로사OUT 공대위’ 정책팀장은 “고용부가 기업의 과로 실태 등에 대해 정기적으로 감독하도록 법적으로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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