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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과학] “너무 많이 일하면 방전돼요” 쉴 땐 쉬는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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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과학] “너무 많이 일하면 방전돼요” 쉴 땐 쉬는 스마트폰

입력
2019.09.07 13: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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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 배터리 절감 기술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 때 문자와 통화 기능만 있으면 충분했던 휴대폰이 지금은 각종 영상 스트리밍과 초고화질 게임까지, 해야 할 일이 차고 넘친다. 할 일이 많은 만큼 힘 원천 ‘배터리’도 예전과 비교하기 힘들 만큼 대용량이 필요하게 됐다.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방전으로 휴대폰이 꺼지는 상황은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 그래서 휴대폰을 살 때면 대용량 배터리가 탑재됐는지 여부를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대용량 배터리와 휴대폰의 맵시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충분한 용량의 배터리를 집어넣자니 ‘늘씬한 자태’의 휴대폰을 포기해야 하는, 양자 택일의 고민에 휴대폰 제조사들이 직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게 바로 ‘네트워크 차원에서의 해법’이다. 물리적 용량을 늘린 덩치 큰 배터리를 쓸 게 아니라 스마트폰과 기지국을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정해진 배터리 용량을 최대한 조금씩 나눠 오래 쓰는 기술을 사용해보자. 즉 무조건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에 따라 효율적으로 힘(배터리)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동통신 업계에서는 이를 ‘배터리 절감 기술(Connected Mode Discontinuous ReceptionㆍC-DRX)’이라고 부른다.

 ◇깜빡 조는 스마트폰, “배터리 늘리는 중” 

자동차나 노트북PC를 떠올려 보자. 노트북PC는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전원 버튼을 눌러 끄지 않는 이상, 항상 깨어있는 상태다. 이용자 대부분은 굳이 전원을 끄기 보다는 ‘절전모드’를 설정해 사용한다. 사용자가 일정 시간 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면 노트북PC는 자동으로 절전모드에 들어가 작동을 잠시 멈추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ISG(공회전 제한장치)’도 마찬가지. 차량이 정차했을 때 불필요한 엔진구동을 멈춰 연료 소모를 줄이게 된다.

C-DRX도 원리는 비슷하다. 스마트폰과 기지국 사이에서 데이터를 실어 나르는 네트워크가 주기적으로 저전력 모드에 들어가는 게 바로 C-DRX다. C-DRX가 적용돼 있지 않은 상태라면 스마트폰 안에 탑재된 모뎀과 통신사 기지국은 쉴 틈 없이 통신 연결 상태를 유지한다. 계속 일을 해야 하니, 당연히 배터리 소모도 빠를 수밖에 없다.

5G C-DRX 적용 및 미적용에 따른 배터리 소모량 차이. 그래픽=송정근기자
5G C-DRX 적용 및 미적용에 따른 배터리 소모량 차이. 그래픽=송정근기자

C-DRX에선 항상 통신이 연결(On)된 상태가 아니라 실제 데이터가 송수신되지 않을 때 최소한의 통신 기능만 남기고 나머지는 꺼버리는(Off) 일을 주기적으로 반복한다. 통신기능이 꺼져 있을 때는 배터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통신기능이 꺼져 있는 상태를 통신업계에선 ‘잠들어 있는 상태’라고 표현한다.

유튜브로 영상 스트리밍을 한창 감상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C-DRX 환경에서 스마트폰은 스트리밍에 필요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된다. 문자나 전화 등이 언제 수신될지 온 정신을 집중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문자, 전화 수신 임무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졸고 있는 셈’이다. C-DRX가 적용되지 않은 상태라면 스트리밍을 처리하면서도 전화나 문자 수신에도 즉각 반응하려는 긴장 상태를 내내 유지하느라 많은 양의 배터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KT 관계자는 “계속 눈을 뜨고 모든 데이터 통신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잠들었다 깨면서 놓친 게 없는지 확인하는 시스템이 C-DRX”라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전화 수신을 놓치는 게 아니라 0.5초 만에 반응하던 걸 1초 만에 반응하는 정도”라며 “절전모드에 들어가 있는 노트북PC를 깨우려면 키보드를 누르던지, 마우스를 흔드는 작업이 필요한 것처럼 C-DRX에서도 잠시 잠들어 있는 스마트폰을 깨우는 시간이 필요해 반응 속도가 아주 미세하게 느려지긴 하나 이용자가 인지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15분 정도의 낮잠이 사람의 작업 능률도 높이는 것처럼, C-DRX의 배터리 효율성도 굉장히 높은 편이다. 최근 ICT 시험인증기관인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가 삼성전자 ‘갤럭시노트10플러스’를 가지고 시험한 결과 특정 유튜브 영상을 무한 반복했을 때 C-DRX를 적용하지 않은 경우는 배터리가 최소 6시간43분, 최대 6시간57분 지속됐다. C-DRX 적용 후에는 최소 10시간24분, 최대 11시간4분으로 배터리 사용 시간이 최대 65%(4시간21분) 늘었다. ‘내 휴대폰이 졸고 있다‘며 기분 상할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11년된 기술, 5G 시대 빛을 보다 

C-DRX는 사실 최신 기술이 아니다. 세계 이동통신 표준화 기술협력기구(3GPP)가 2008년에 이미 표준을 만들어 놓은, 10년이나 지난 기술이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잠깐 조는 사이 통화나 문자 수신을 놓치거나 통화가 끊기는 등 품질저하에 대한 우려도 있었고, 무엇보다 배터리 사용량에 민감할 정도로 데이터 사용량이 많지 않아 상용화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건 LTE 데이터 트래픽이 급증하던 2015년이다. 기지국 장비, 스마트폰 제조사, 네트워크 운용 시스템 등과의 연동을 거쳐 KT가 2017년 4월 1일 국내에서 가장 먼저 전국망에 적용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잇따라 같은 해 4월 중 도입했다. 당시 주력 스마트폰이던 삼성 ‘갤럭시S8’로 진행한 실험에서 C-DRX를 적용했을 때 배터리 사용 시간이 적용 전보다 최대 45%(4시간27분) 길다는 결과가 나왔다.

배터리 중요성은 5G 시대를 맞아 더 높아지고 있다. 올 7월 말 기준 LTE 가입자 한 명당 월 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9.5기가바이트(GB)였지만, 5G 가입자 사용량은 24.1GB에 달했다. 4월만 해도 5,938테라바이트(TB)였던 전체 5G 데이터 트래픽 발생량은 5월 1만3,987TB, 6월 3만574TB, 7월 4만4,951TB 등으로 폭증 추세다.

이에 따라 KT와 SK텔레콤은 LTE 기반의 C-DRX를 5G 기반으로 업그레이드했다. 5G 상용화 시점인 4월부터 C-DRX를 발 빠르게 도입한 것이다. SK텔레콤은 수도권에서 전국으로 확대 중이고 KT는 지난 8월 1일 전국망 적용을 마쳤다. LG유플러스는 마지막 최적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KT는 5G 스마트폰의 경우 5G 주파수를 우선 잡도록 설계해, 5G와 LTE를 동시에 잡아 각각의 모뎀이 모두 배터리를 소모하는 방식에 비해 배터리 소모량이 적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KT는 5G 스마트폰의 경우 5G 주파수를 우선 잡도록 설계해, 5G와 LTE를 동시에 잡아 각각의 모뎀이 모두 배터리를 소모하는 방식에 비해 배터리 소모량이 적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이동통신사들 사이에서는 묘한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KT가 상대적으로 C-DRX 도입에 우위를 보이고 있다 보니 다른 배터리 절감 요소들을 강조하며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견제하는 모양새다.

SK텔레콤은 5G와 LTE 주파수를 묶어서 5G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KT는 5G 주파수를 먼저 잡도록 설계한 것과 차이 나는 부분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LTE의 다운로드 속도와 5G 다운로드 속도가 합쳐지기 때문에 그만큼 더 초고속 다운로드가 가능해 배터리를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T 관계자는 “5G와 LTE 신호를 동시에 잡으면 스마트폰 속 5G 모뎀과 LTE 모뎀이 동시에 배터리를 소모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배터리가 빨리 닳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데이터 용량 등 콘텐츠 성질에 따라 5G 또는 LTE 중 적합한 주파수를 골라 사용하는 배터리 절감 기술도 함께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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