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이걸 드시면 당신은 사망하게 됩니다. 원하시는 게 이게 맞습니까?”

알림

“이걸 드시면 당신은 사망하게 됩니다. 원하시는 게 이게 맞습니까?”

입력
2019.08.30 04:40
23면
0 0
지난 5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소극적 안락사인 의사조력자살을 택한 로버트 풀러(75)는 “난 아직 여기 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숨을 거뒀다. 워싱턴주는 미국에서 존엄사를 허용하는 9개 주 중 하나로, 풀러는 워싱턴주에서 존엄사로 세상을 떠난 1,200명 중 한 명이 됐다. AP 연합뉴스
지난 5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소극적 안락사인 의사조력자살을 택한 로버트 풀러(75)는 “난 아직 여기 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숨을 거뒀다. 워싱턴주는 미국에서 존엄사를 허용하는 9개 주 중 하나로, 풀러는 워싱턴주에서 존엄사로 세상을 떠난 1,200명 중 한 명이 됐다. AP 연합뉴스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도록 하는 존엄사. 한국은 지난해 2월부터 일명 존엄사법으로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 환자의 의식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의학적 판단이 내려지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의 연명의료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시행 17개월을 맞은 지난달까지 총 5만3,900명이 존엄사를 선택했다.

연명의료를 중단해 자연사를 의도할 뿐 의도적으로 생명을 단축하거나 끊지는 않는 우리나라의 존엄사와 달리, ‘안락사’는 사람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긴다. 안락사 역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이나 수액 공급 등을 중단하는 소극적 개념과 의료인이 직접 약물을 투약하는 적극적 개념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안락사나 의사조력자살은 불법이다. 미국의 존엄사법은 의사조력자살까지 허용하고 있다.

스티븐 암스테르담의 장편소설 ‘이지 웨이 아웃’은, 이처럼 약물을 마시고 죽음을 맞는 적극적 안락사 허용 법안인 이른바 ‘961법안’이 통과된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난치병 및 말기 환자 961명을 대상으로 한 이 안락사 추천법안의 대상 환자들은 ‘넴뷰탈’이라는 약물을 마시고 3~4분 뒤 죽음을 맞는다. 주인공 에번은 이 죽음의 과정을 돕는 ‘안락사 어시스턴트’다. 에번의 역할은 환자에게 넴뷰탈을 건네고, “이걸 마시면 당신은 사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원하시는 게 이게 맞습니까?” 재차 묻는 것이다.

일종의 죽음의 집도자 역할을 하지만, 에번 역시 그 죽음들로부터 완전한 제3자일 수 없다. 에번에게는 파킨슨병에 걸린 엄마 비브가 있다. 비브는 농담처럼 자살을 말하고, 에번에게 자신의 차례가 되면 그 ‘마법의 약’을 가져다 달라고 말한다. 병이 급속히 악화되어 가는 중에도 치료를 거부하는 비브는 자신에게도 ‘존엄한 죽음’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타인의 죽음을 앞당기는 일을 하면서도, 에번은 기를 써서 어머니의 생을 붙들어두려 애쓴다. 이런 에번의 모습을 통해 소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와, 이를 막을 ‘윤리’ 중 어느 것이 우선일 수 있는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스티븐 암스테르담. 바다출판사 제공
스티븐 암스테르담. 바다출판사 제공

뉴욕에서 태어나 편집자와 북 디자이너, 파티시에 등 여러 직업을 거친 작가는 2003년 호주 멜버른으로 이주해 실제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호주는 현재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며 절망에 빠진 환자와 보호자들을 수도 없이 봐야 했던 작가는,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는지” 묻는 이들에게, “없다”는 답변밖에는 해줄 수 없다는 데서 괴로움을 느꼈다. “별 도움이 안 돼 죽음이라는 주제가 다시 떠오르게 될 때면 ‘물론입니다. 제가 약물을 구해드릴게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차라리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일이 내 업무가 아니라 다행이라고도 느꼈다”고 했다는 작가에게, 소설은 그 고민과 안도의 결과물인 셈이다.

소설 안에는 죽음 앞에 선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스스로 안락사라는 선택을 내렸을지라도,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는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젊은 아내와 어린 딸을 둔 가장은 몇 번이고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망설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내린 선택일지라도 왜 자신만 죽어야 하는지 해소되지 않는 원망과 분노에 흐느끼는 환자도, 위 세척으로 넴뷰탈을 게워낸 뒤 몇 달간의 고통스러운 삶이라도 연장하고 싶어하는 환자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죽음의 모습은 삶의 모습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죽음의 태도는 삶의 태도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향해가는 비브를 이해하기 위해서 에번이 해야 했던 일은 어머니의 삶을 돌이켜 보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소설 마지막 에번은 결국 스스로 어머니에게 넴뷰탈을 투여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그러나 소설 내내 에번과 함께 비브의 삶을 함께 복기했던 독자라면, 에번의 선택을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지 웨이 아웃 

 스티븐 암스테르담 지음ㆍ조경실 옮김 

 바다출판사ㆍ448쪽ㆍ1만 4,800원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