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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경제의 허리, 中企군단 ‘미텔슈탄트’… 한우물ㆍ고품질 전략이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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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경제의 허리, 中企군단 ‘미텔슈탄트’… 한우물ㆍ고품질 전략이 경쟁력

입력
2019.08.28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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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주권, 기술 독립을 향하여] 

 세계 히든챔피언 절반이 獨에… 기술ㆍ인력 집중 투자 

 산학연 촘촘히 연결… “우리나라도 개방적 혁신 필요” 

독일 중소기업(미텔슈탄트)이 차지하는 항목별 비중. 그래픽=강준구 기자
독일 중소기업(미텔슈탄트)이 차지하는 항목별 비중. 그래픽=강준구 기자

#1947년 창립한 독일의 가전기업 ‘빈터할터’는 최고급 호텔과 레스토랑 등에서 사용하는 업소용 식기세척기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보통 가전기업들이 세탁기, 냉장고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하는 수평적 다각화를 꾀하지만, 이 회사는 오직 식기세척기에만 매달렸다. 물 준비 장치와 세척제까지 식기세척과 관련한 폭넓은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빈터할터는 전 세계 호텔 식기세척기 시장에서 2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1731년 창업 이후 주방용 칼 제조의 외길을 고집하는 ‘헨켈’은 다른 기업들이 모방할 수 없는 합금 기술과 열처리 기술로 명품 식칼을 생산하고 있다. 18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한 작은 공업소에서 출발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보쉬’는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꼽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른 분야에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한 우물만 파서 세계적인 기술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다. 최근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10년 이상 세계 경제의 우등생으로 군림했었던 독일을 떠받치는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들을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 부른다. 미텔슈탄트는 독일의 중소기업을 뜻하는 말로 19세기 독일 사회에서 귀족층과 저숙련 노동자 사이에서 중간층을 형성했던 숙련기능인들이 근대 중소기업을 창업한 것에서 유래했는데, 이들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강소기업으로 성장하면서 독일의 ‘경제주권’을 지키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독일의 미텔슈탄트는 종업원 300명 미만, 연 매출액 5,000만 유로 미만의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한 기업으로 정의된다. 2013년 기준 미텔슈탄트의 수는 360만개로 독일 전체 기업의 99.3%에 해당한다. 독일 총 고용의 60%를 담당하고 있고 국내총생산(GDP)의 51.8%를 창출한다. 독일 전체 기업 매출액의 31.8%, 총 부가가치의 47.1%가 미텔슈탄트에서 나온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강소기업을 뜻하는 ‘히든챔피언’의 절대 다수도 미텔슈탄트다.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은 연 매출 40억 달러 미만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수출을 위주로 하며 세계 시장에서 1~3위 또는 소속 대륙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강소기업을 히든챔피언이라 지칭했는데 2012년 기준 독일의 미텔슈탄트 중 1,307개가 히든챔피언이다. 전 세계 히든챔피언 2,700개의 48.4%를 차지하며, 미국(366개), 일본(220개), 오스트리아(116개), 스위스(110개)보다 월등히 많다.

 ◇미텔슈탄트 경쟁력은 ‘한 우물 파기’와 고품질 고가격 전략 

독일 미텔슈탄트의 탄탄한 경쟁력은 틈새시장을 겨냥한 고품질, 고가격 전략에서 나온다. 독일에는 ‘코끼리가 노는 곳에 춤추러 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독일 중소기업들은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대신 기술, 인력에 대한 투자에 주력한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고품질 제품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해 저임금에 기반한 저가 제품과 차별화를 꾀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제품 전문화로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미텔슈탄트의 비즈니스 전략을 ‘극단적 집중(Extreme focus)’이란 말로 표현했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력이 필요한데, 독일 중소기업이 보유한 강력한 기술경쟁력의 밑바탕에는 체계적인 기술인력 육성제도가 있다. 독일 전체 직업훈련생의 82.4%가 중소기업에서 훈련 받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면 본격적인 재교육이 시작되는데 장인(匠人)을 우대하는 마이스터 제도는 독일의 재교육 프로그램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중소기업연구원 노민선 박사는 “한국은 대학진학률이 69%가 넘는 ‘선 진학 후 취업’이 일반화 돼있는 반면 독일은 대학진학률이 30%에 불과해 일단 현장에서 일을 하며 필요한 공부를 하는 ‘선 취업 후 진학’ 모델이 잘 자리 잡았다”며 “우리도 중장기적으로 직업 교육 활성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재 부품 수출의 다양화, 촘촘한 산학연 연계 

사실 독일 경제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을 들었다. LG경제연구원의 ‘제조 강국 독일 기업의 경쟁력 해부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유럽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독일 산업 가운데 전자, 광학 산업 등이 일본의 파상적인 공세에 급격히 위축됐다. 텔레풍켄, 그룬디히, 베가, 뢰베, 노르트멘데 등 주요 기업들은 작고 가벼운 제품을 앞세운 일본 전자 기업의 유럽 진출로 급격하게 시장을 빼앗기며 무너졌다. 라이츠, 롤라이, 칼차이스 등 광학 기업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여기에 통일 이후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등 후유증을 겪은 독일은 낮은 성장률, 높은 실업률, 대규모 재정적자 등에 시달렸다.

독일 경제가 새롭게 주목 받은 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부터다. 독일은 먼저 기초 산업인 소재 부품 분야의 수출 품목을 다양화했다. 한국이나 일본은 선박, 자동차, 반도체, LCD 등 특정 품목에 수출이 집중된 반면, 독일은 수출액이 월등한 자동차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품목들의 수출액이 고르게 높다. LG경제연구원의 이서원 책임연구원은 “2010년 한국과 독일, 일본 3국 가운데 독일이 수출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품목은 678개였고, 일본은 123개 품목, 한국은 55개 품목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실제 독일은 자동차 외에도 화학, 의약, 항공, 기계, 신재생 에너지 등 다양한 품목에서 강력한 비교 우위를 앞세워 거의 전 산업 부문에서 세계 수출 1,2위를 다투고 있다.

촘촘하고 치밀하게 이어지는 산학연 연계도 부품 소재 기업들이 기술력을 갖추는 근간이 됐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산업의 보쉬, 지멘스, 컨티넨탈, 풍력산업의 리파워, 디스플레이 산업의 머크, 화학의 바스프 등 기존 산업에서 신산업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부품 소재 기업들은 막스-플랑크 연구소, 프라운호퍼 연구소, 헬름홀쯔 연구소 등 산학연 연계의 기술 개발을 통해 탄탄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노민선 박사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R&D의 86.9%는 혼자 진행하는 ‘단독형’”이라며 “다른 대학이나 기업, 연구기관 뿐 아니라 필요하면 글로벌 협력도 강화해 경쟁력 있는 다양한 주체의 도움을 받으며 서로 역량을 키우는 ‘개방형’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재ㆍ부품ㆍ장비 국산화는 절대 1~2년 안에 해결되지 않는다. 10년 뒤를 내다보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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