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보라카이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고 지난 23일 오전 4시 43분 팬퍼시픽항공 8Y700편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직장인 최모(25)씨는,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다가 항공사 측으로부터 황당한 안내를 받았다. 전날 오후 필리핀 칼리보공항에서 공항 사정으로 승객들 짐을 비행기에 싣지 못한 채 출발했으니, 주소를 적어내면 다음날까지 짐을 택배로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최씨는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남성 2명이 타더니 ‘수하물 지연 도착 안내문’을 나눠주면서 주소를 적어내라고 했다”라며 “출발 전에 아무런 안내를 받지 못했고 도착 후에도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고 말했다.
승객들은 부친 가방에 자동차 키, 휴대폰 유심, 상할 우려가 있는 냉동식품, 이날 곧바로 출근하는데 필요한 옷과 속옷 등이 있다면서 분통을 터뜨린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승객들은 이날 오전 비행기로 짐이 들어올 수 있다는 얘기가 돌자 오후까지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뒤늦게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최씨는 “부친 가방에 차 키가 있어서 공항에 주차한 차를 쓰지 못하고 서울 집으로 갔다가 다음날 다시 오느라 쓰지 않아도 될 버스비와 주차비 등을 썼다”라며 “인천공항에 있는 사무실까지 찾아갔으나 ‘죄송하지만 내부 규정에 따라 보상은 못해준다’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한 승객도 “주말에 출근해야 하는데, 화장품 등이 없어서 불편을 겪었다”라며 “항공사 측에 항의했더니 한국소비자원에 신고하라고 했고 소비자원은 외국기업이라서 (피해구제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승객들은 귀국한 다음날 23일 오후 늦게야 짐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일부 승객들은 가방 안에 있는 비닐 팩이 터져있는 등 짐이 파손됐다는 추가 피해도 호소했다.
팬퍼시픽항공은 지난달 29일 칼리보공항을 떠나 인천공항을 향할 예정이었던 8Y704편이 기체 결함으로 출발이 7시간 넘게 늦어져 승객들이 공항에서 노숙을 하는 등 최근 기체 결함으로 인한 운항 지연이 잦아 승객들 원성을 샀다.
이 항공사는 국토교통부의 항공운송서비스 평가 2016~2018년 소비자 보호 부문에서 이용객 대비피해구제 접수 건수가 많고 법정 소비자 보호조치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년 연속 F등급(매우 불량)도 받았다.
본보는 이날 팬퍼시픽항공 측에 수 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다. 다만 이 항공사는 앞서 잦은 운항 지연에 대해 “승객들에게 설명을 드릴뿐 (언론 등) 제3자에게는 따로 설명을 하거나 응대를 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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