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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조국 사태와 공정성의 신화

입력
2019.08.26 19:00
수정
2019.08.26 22:3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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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5일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에 차려진 인사청문회 사무실로 출근하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5일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에 차려진 인사청문회 사무실로 출근하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AP통신과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에서 흥미로운 뉴스 하나를 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국무부에서 정치적 동기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이 수시로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가해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정무직 공무원’ 케빈 몰리 국제기구국 차관보와 그의 선임보좌관이었던 메리 스털(올해 1월 사임)이고, 피해자는 ‘직업 공무원’ 수십명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스털 전 보좌관은 ‘오바마 정권 유임자들’, ‘반역자들’ 등의 정치 보복적 언사로 국무부 직원들을 몰아붙였다. 몰리 차관보는 이를 보고받고도 시정 조치를 취하긴커녕, 거꾸로 직원들에게 “(당신들이) 대통령의 의제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을 찍어내기 위해 밑도 끝도 없이 정치색을 덧씌운 셈이다. 실제로 몰리 차관보의 부임 이후 국제기구국을 떠난 직원은 50명에 달한다.

이 같은 처사의 부당함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여기서 짚으려는 건 정치 세계에서 흔하게 이뤄지는 ‘상대방에 레떼르(라벨) 붙이기’다. ‘내 편’과 ‘네 편’의 경계를 긋고, 자신한테 유리한 프레임을 짜는 데 그만한 방법이 없는 탓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정권 교체 때마다 튀어 나오는 ‘전 정권 인사(또는 부역자)’라는 표현, 수구 세력의 단골 메뉴인 ‘종북 좌파’ 딱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합리적 근거가 부족한 낙인은 ‘마녀 사냥’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누군가를 ‘비난의 수사(修辭)’로 포획하려는 시도엔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고 봐야 한다.

타인과 관련해서만 그러할까. 공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인물들 중에는 특정 이념에 입각한 본인의 정체성을 공개하는 경우가 꽤 많다. 자신의 신념을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해 스스로 이미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거운 책임이 따르고, 위험도 크다. 그에 걸맞지 않은 언행을 하면, 진정성이 통째로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자를 자처해 온, 그러나 이제는 ‘내로남불’ 비판에 휩싸인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그런 사례다.

개인적으로는 조 후보자가 절대로 법무장관을 해서는 안 될 ‘결정적 흠결’이 드러났다고 보진 않는다. 숱한 의혹들이 제기됐지만, 그의 불법 행위는 물론이고 부적절한 개입이 확인된 건 아직 없어서다. 가장 큰 공분을 부른 딸의 장학금ㆍ논문 특혜 논란에서도 그렇다. “입진보의 위선”이라는 증오와 조롱으로 가득한 자유한국당의 비난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기득권과 특혜를 누리기만 했을 뿐, 내려놓은 적은 결코 없었던 그들로선 가당찮은 지적이다.

물론, 조 후보자만이 검찰 개혁 등의 과제를 완수할 수 있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나온 객관적 사실 관계와 합리적 의심에 기초한 의혹들을 청문회에서 검증한 뒤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의 임명 여부 결론이 어떻게 나든 정치적으로야 커다란 파장이 일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부분에는 큰 관심이 없다. 조 후보자가 낙마해도 그 빈자리는 어차피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 인사가 채우게 될 것이다.

오히려 ‘조국 사태’가 일깨워 준 불편한 진실은 ‘공정성’이란 신화일 뿐이라는 사실인 것 같다. 조 후보자 딸 논란과 관련, 그의 가족은 손에 쥐고 있는 경제ㆍ문화ㆍ사회적 자본을 최대한 활용해 ‘특권의 대물림’ 코스에 올라탔다. 조 후보자가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지적은 틀렸다. 그보다는 이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진단이 정확하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불공정성을 줄이려는 제도적 장치와 함께, 기득권층의 ‘자기 제어’ 노력도 필요하다”고. 예컨대 의학전문대학원 유급까지 했던 딸이 6학기 연속 장학금을 받는 과정에서 조 후보자가 이렇게 대처하는 식이다. “1, 2학기 동안 장학금 받아서 공부했으면 충분하다. 이제는 우리보다 형편이 나쁜 학생에게 양보하자. 그게 ‘분배의 정의’야.”

김정우 국제부 차장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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