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게 인권을 부여하고 말고는 특정 집단의 인준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인권은 한정된 자원이 아니기에 그것을 두고 내가 얼마나 많이 지녔는지 아닌지 저울질하는 가치도 아니다. 그러니 동성애나 난민 등 소수자의 권리가 신장된다고 해서, 나의 권리가 박탈되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십여 년 전, 대학에서 ‘인권과 평화’라는 교양필수과목을 들은 적이 있다. 학교에서는 인권의 가치가 교육 이념과 맞닿아 있었기에 중요한 수업으로 여겼고, 나 또한 다양한 주제를 통해 인권을 접할 수 있어서 흥미롭게 들었다. 오래 전에 들었던 수업이 새삼 떠오르는 이유는 요즘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을 당연시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에서 인권의 가치를 떠올리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연세대학교에서는 온라인 수업 ‘연세정신과 인권’을 필수과목으로 개설한다고 발표했다. 이 수업은 존엄, 역사, 사회정의, 젠더(성평등), 장애, 노동, 환경, 공동체, 난민 등 인권에 관한 13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2020년도에 입학생은 필수로 들어야 한다. 그리고 학교 측은 ‘인간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을 체득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해 이 수업을 개설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발표 이후, 일부 보수 개신교인들이 학교 앞에서 인권 수업 개설에 대한 반대 시위를 열었다. 반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유독 인권과 젠더, 인권과 난민 수업 개설을 반대했다. 그들에 따르면, 젠더 교육은 여성과 남성 이외에도 다른 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동성애를 옹호하게 되고, 또 난민 교육에 대해서는 특정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게 되면 일반 국민이 역차별당하는 우려가 발생할 수 있기에 “무분별한 인권교육”에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인권’ 앞에 “무분별한”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은 인권을 분별 가능한(인정할 수 있는) 것과 무분별한(인정할 수 없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러한 인권에 대한 인식은 종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설립된 대학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성소수자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무지개 티셔츠를 입고 예배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거나, 목사 인준 과정에서 동성애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묻는다거나, 성소수자 강연자를 초청하는 강의를 기획했다는 이유로 공격과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개인에게 인권을 부여하고 말고는 특정 집단의 인준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인권은 한정된 자원이 아니기에 그것을 두고 내가 얼마나 많이 지녔는지 아닌지 저울질하는 가치도 아니다. 그러니 동성애나 난민 등 소수자의 권리가 신장된다고 해서, 나의 권리가 박탈되지 않는다. 내가 그동안 누렸던 권리가 소수자에 의해 침해당하거나 빼앗길 것이므로 ‘역차별’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소수자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주는 사회적 효과의 혜택을 입고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경험한다.

대학 밖에서는 이미 젠더, 인권, 난민 강의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늘고 있다. 소수자적 감수성을 익히고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이 소모임 단위에서 대형 강의까지 기획하고 참여하며 교류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기획이 늘어난 배경에는 갈수록 많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자신을 소수자로 인식하고 차별을 경험하는 상황에 놓이면서, 더는 차별받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서 대학 내 인권교육을 반대하는 시위를 바라본다면, 그들의 행보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알 수 있다.

인권교육은 대학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영역에서 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진행될 것이다. 인권, 소수자를 위한 교육은 더 이상 선택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권과 평등과 민주적 가치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지향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인권과 평등의 가치는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필수적으로 체득해야 할 삶의 기술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더 다양한 관점의 소수자 인권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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