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메리카 유카탄반도 남쪽에 붙어 있는 신생 독립국 벨리즈는 ‘카리브해의 보석’이라 불린다. 벨리즈의 국토 면적은 2만2,966㎢로 남한의 4분의 1 정도고, 인구는 40만명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은 나라는 원시 그대로 보존된 자연 경관과 과거 이 땅의 주인이었던 마야인들의 유적 등 신비롭고 이국적인 매력으로 각국 여행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특히 해안가 산호초 보호구역에 위치한 검푸른 색의 거대 해저 싱크홀 ‘그레이트 블루홀’은 전 세계 다이버들의 성지로 일컬어진다.

마냥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벨리즈에도 골칫거리가 있다. 바로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과테말라와의 영토 분쟁이다. 1783년 당시 과테말라를 식민 통치하던 스페인이 해적을 퇴치해준 대가로 영국에 현재 벨리즈 영토의 점유권을 준 것이 분쟁의 씨앗이 됐다. 벨리즈는 1798년부터 영국의 통치를 받기 시작해 1871년부터 ‘영국령 온두라스’라는 이름의 직할 식민지가 됐다. 오늘날 벨리즈 국민들이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역사의 영향이다.

과테말라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자마자 영국에 영토 반환을 요구했다. 논쟁 끝에 두 나라는 1859년 지금의 국경선에 조건부로 합의했지만 영국이 약속한 원조를 이행하지 않으면서 파기됐다. 이후 첨예한 갈등이 계속됐다. 1945년 과테말라는 헌법에 영국령 온두라스가 자국 영토의 일부임을 명시했다. 그리고 1964년 영국령 온두라스에 내정자치권이 인정됐을 때 자국 주권이 침해당했다며 영국과 국교를 단절했다.

1973년 영국령 온두라스는 국명을 벨리즈로 개칭했고, 8년 뒤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영토 분쟁은 여전했지만 지난한 세월을 거치며 과테말라의 태도가 조금씩 누그러졌다. 과테말라는 1985년 개헌을 통해 벨리즈가 자국의 일부라는 주장을 폐기했고, 1991년 벨리즈와 국교 수립에 나섰다. 그리고 1998년에는 벨리즈 전역을 요구하던 과거 주장에서 한발 물러나 절반인 벨리즈 남부 지역에 대한 영유권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더는 진전이 없자 벨리즈와 과테말라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단을 구하기로 2008년 합의했다. 단, 양국이 각각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이에 따라 과테말라는 지난해 4월 국민투표를 시행해 96%의 찬성으로 ICJ 제소를 가결했다. 그리고 올해 5월 벨리즈도 55.4%의 찬성률로 국민투표를 마치며 제소가 확정됐다. 지난 6월 11일(현지시간) ICJ는 성명을 통해 접수 사실을 확인했다. 판결까지는 앞으로 수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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