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종료 선언에 갈등 심화… 日 경제보복 철회 가능성 더 낮아져
22일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연장 거부 결정이라는 초강수 탓에 문재인 대통령의 8ㆍ15 광복절 경축사에 담은 유화 제스처로 반전 계기가 마련된 듯했던 한일관계가 다시 급랭하는 모습이다. 일본이 당장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하는 등 격하게 반응하고 있고, 일본에게 반격의 빌미를 준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한국 배제 조치 이후 보류해왔던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경우 한일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미일 안보 공조를 중시하는 미국이 적극 개입할 명분이 생긴 셈이어서 오히려 파국을 피할 기회가 제공됐다는 평가도 있다.
일단 경제에서 안보로 전선(戰線)이 확대됐다는 점에서 한일관계에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미국 AP통신은 이날 이번 결정으로 동북아시아 역내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인 한일 간 긴장 관계가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이번 결정이 한일 양국 간의 기존 역사와 무역 분쟁을 추가로 확대하고 대북 안보 협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예상했다.
실제 서로 상대의 소극적 자세를 탓하면서 갈등 분야가 늘고 자연스레 수위도 높아지는 양상이다. 일본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반발해 7월 초에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8월 초 안보상 전략물자의 부실 관리를 이유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강수를 뒀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소극 대응에 경제 보복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에 한국이 이날 지소미아 연장 거부로 안보 협력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이전보다 갈등이 더 심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우리가 촉구 중인 일련의 수출 규제 조치 철회를 일본이 수용할 가능성은 확 줄었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오히려 전략물자에 대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린 이후 실제 운용 과정에선 규제 정도를 조절해왔던 일본이 28일 2차 조치에서 보다 실효성 있는 집행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우리가 던져버리면서 지렛대가 사라졌다”고 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역사 갈등에 경제 보복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수출 규제 조치가 명분이 없다는 비판 여론이 일본 내에 작지 않았는데 우리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반동 흐름이 생길 수 있다”며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를 시행하더라도 탄력적으로 운용할 거라는 기대를 더 이상 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관세 인상이나 송금 규제, 비자 발급 기준 강화 등 추가 보복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도 있다. 그러나 굳이 카드를 꺼내지는 않으리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유의상 동아시아평화번영연구소장(전 외교부 동북아1과장)은 “국제사회 여론을 중시하는 일본이 정경분리 원칙과 자유무역주의를 어겼다는 국제적 비난을 키우려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며 “예를 들어 비자 발급 엄격화 같은 경우 자충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쓸 수는 없는 카드”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지소미아 파기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외교 소식통은 “지소미아 연장 거부 결정 전 정부가 한미일 안보 공조가 흔들릴 것을 염려하면서도 개입에는 소극적이던 미국 정부와 소통하면서 적극 중재할 수 있도록 구실을 제공하려 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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