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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원 선생 첫발 후 100년…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 집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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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원 선생 첫발 후 100년…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 집대성”

입력
2019.08.22 04:40
수정
2019.08.22 18:1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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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적도의 한인들] <하> 인도네시아 한인 첫 뿌리, 장윤원

총괄편찬위원 신성철 대표 “기록 찾아 네덜란드 현지조사도”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공동 총괄편찬위원을 맡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가 19일 자카르타 소재 재인도네시아한인회 회장실에서 100년사 출간 목표와 의의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공동 총괄편찬위원을 맡은 신성철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가 19일 자카르타 소재 재인도네시아한인회 회장실에서 100년사 출간 목표와 의의 등을 설명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 역사가 집대성된다. 한인 사회의 역량이 총동원된다. ‘독립운동 망명객’ 장윤원(1883~1947) 선생이 인도네시아에 첫발을 디딘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내년 9월 책자 출간이 목표다. 인도네시아는 특히 우리나라와 관련해 ‘최초’ ‘1호’ 수식어가 붙은 역사가 넘친다. 공동 총괄편찬위원을 맡은 신성철(55) 데일리인도네시아 대표를 19일 만났다. 그는 1989년 인도네시아 한상기업에 취업한 뒤 99년부터 온라인 미디어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에 첫 장을 연 '독립운동 망명객' 장윤원 선생의 가족. 으른쪽부터 장윤원, 차남 순일, 장남 남해, 장녀 창포, 화교 출신 부인 황항아. 김문환 칼럼니스트 제공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에 첫 장을 연 '독립운동 망명객' 장윤원 선생의 가족. 으른쪽부터 장윤원, 차남 순일, 장남 남해, 장녀 창포, 화교 출신 부인 황항아. 김문환 칼럼니스트 제공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를 100년으로 보는 이유는.

“1920년 9월 20일 장윤원 선생이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당시 바타비아)에 도착한 시점을 시작으로 잡았다. 앞서 1910년대 한인 인삼 상인들이 인도네시아를 다녀가기도 했으나, 독립운동 및 초기 한인 사회 구축에 앞장선 장윤원 선생의 업적과 체류 기간(27년), 여기에 묻힌 점 등을 고려해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의 뿌리로 보고 있다. 그간 연구는 이뤄졌지만 기록이 많지 않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현지 조사도 구상하고 있다. 기록을 찾으면 서훈 신청도 해보고 싶다.”

인도네시 자카르타 남쪽 타나 쿠시르 공동묘지에 있는 '독립운동 망명객' 장윤원 선생의 뫼. 묘비에 새긴 출생지 'SEOUL(서울)'이 선명하다. 부인 및 차녀와 합장돼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 자카르타 남쪽 타나 쿠시르 공동묘지에 있는 '독립운동 망명객' 장윤원 선생의 뫼. 묘비에 새긴 출생지 'SEOUL(서울)'이 선명하다. 부인 및 차녀와 합장돼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중점을 두는 부분은.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는 양국의 경제, 정치 환경과 궤를 같이하는 만큼 인도네시아 산업, 특히 제조업 성장에 기여한 한인 기업 진출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인도네시아는 사실상 한국 기업들의 해외 시장 개척에 발판을 마련해 준 국가다. 무엇보다 1호가 많다. 1968년 ‘한국 해외 투자 1호’ 남방개발(KODEC)의 원목 사업과 이듬해 진출한 코린도그룹, 1973년 ‘한국 해외 생산 플랜트 수출 1호’인 대상기업(당시 미원)의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 건설, 1981년 ‘한국 최초 해외 유전 개발 사업’ 서마두라 유전 공동 개발이 그렇다.

방위 산업 분야도 최초가 많다. 우리가 개발한 프로펠러 훈련기 KT-1과 제트 훈련기 T-50을 처음 수입한 나라, 우리 기술로 만든 잠수함을 가장 먼저 구매한 나라, 우리와 전투기 공동 개발을 위해 협력하는 첫 나라가 바로 인도네시아다. 여기에 1980년대 후반 봉제 신발 등 노동집약적 산업과 이후 이어지는 전자산업, 중화학공업, 금융, 정보기술(IT), 유통, 한류로 대변되는 문화, 화장품과 패션 등 산업 전반의 진출 역사를 다룰 것이다.”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참전한 양칠성(왼쪽)이 1948년 11월 네덜란드 군에게 붙잡힌 뒤의 모습. 오른쪽 옆은 양칠성의 일본인 상사다. 인도네시아 역사단체 히스토리카가 전시한 사진을 재촬영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참전한 양칠성(왼쪽)이 1948년 11월 네덜란드 군에게 붙잡힌 뒤의 모습. 오른쪽 옆은 양칠성의 일본인 상사다. 인도네시아 역사단체 히스토리카가 전시한 사진을 재촬영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논쟁이 되는 인물은 어떻게 처리되나.

“1942년 포로감시원으로 왔다가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에 참전한 양칠성이 대표적이다. 친일을 했다는 연구와 마지막 순간 ‘(인도네시아) 독립’을 외쳤다는 목격담이 양립하는 게 현실이다. 그 역시 우리 역사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일 뿐인 만큼 공과를 따지기 전에 사실에 근거해 기록하는 게 옳다고 본다. 그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인정한 ‘외국인 독립 영웅’이다. 시각 차이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양칠성이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연결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편찬진 구성과 집필 목적은.

“박재한 재인도네시아한인회장을 편찬위원장으로 하고 연구, 자료 수집, 집필, 편집, 자문, 관리 등 각계 인사 30여명이 참여하는 편찬위원회를 꾸렸다. 아울러 모든 한인이 함께 만든다는 취지에 따라 공모를 통해 한인들이 소장한 기록과 사진 등을 취합할 방침이다. 100년사는 한인 사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지표이고, 앞으로 100년을 살아갈 후대에겐 길잡이다.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인도네시아 한인 사회의 역사를 재정립하고 한인 공동체 정신을 바로 세우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사는 곳이라 기록을 남기고 싶었는데 기회가 돼 참여했다.”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위원들이 지난달 26일 자카르타 소재 재인도네시아한인회 회의실에서 출범식을 마치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 제공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편찬위원들이 지난달 26일 자카르타 소재 재인도네시아한인회 회의실에서 출범식을 마치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재인도네시아한인회 제공

-고국에 바라는 바는.

“인도네시아는 ‘관계 1호 국가’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상호 보완 및 협력을 통해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 나라다. 다양성이 공존하고 통일성을 지향한다. 1998년 군사 독재를 종식시키고 착실하게 민주주의를 단계적으로 발전시킨 이슬람 국가다. 신(新)남방 정책 덕에 최근엔 많이 알려지고 있다. 편견을 버리면 공유할 부분이 차고 넘친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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