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룸’ 한국 첫 전시 내년 1월까지 부산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레인룸’. 100㎡(약 30평) 크기의 방 안에서 거세게 비가 내리지만 사람이 들어가면 그를 중심으로 반경 1.8m 안은 내리지 않는다. 부산=김지은 기자

100㎡(약 30평) 크기의 방에서 인간의 사유는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쉴 새 없이 비가 쏟아지는 레인룸(Rain Room)이다. 레인룸에서 내리는 비의 양은 1시간에 2,000~3,000L, 소나기 같은 거센 빗줄기를 상상하면 된다. 그러나 들어가면 내 주위로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반경 1.8m의 고요다. ‘쏴-’하는 소리도 나의 귀 옆에선 한 걸음 쉬어간다.

내가 비를 멈추게 하는 것일까. 신비한 힘이 생긴 듯 우쭐해진다. 그러나 착각이다. 실은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통제 당하고 있다. 방의 구석 천장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나를 지켜보는 카메라의 빨간 불빛이 보인다. 이 3D 모션 감지 카메라가 사람을 인지하면 비가 멈춘다. 단순한 듯하지만 사람이나 장애물이 앞에 있으면 브레이크가 자동으로 밟히는 자동차의 기술보다 훨씬 복잡하다. 레인룸을 만든 아트 그룹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의 플로리안 오트크라스는 “아이디어는 5초 만에 얻었는데, 구현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레인룸은 그래서 전시를 할 때마다 새로 설치한다. 2012년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뉴욕 현대미술관(MoMA), 상하이 유즈 박물관, 로스앤젤레스 LA카운티미술관(LACMA), 호주 미빙이미지센터 자카로프 아트 컬렉션에서 전시됐다. 한국에서 소개되는 건 처음이다.

14일부터 시작한 이번 부산 전시도 랜덤 인터내셔널의 멤버 중 20여 명이 석 달간 준비에 매달렸다. 랜덤 인터내셔널은 전체 멤버가 25명이다. 오트크라스는 “전시되는 도시의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시마다 비의 냄새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기술적인 요소도 점차 보완이 된다”고 설명했다. 레인룸 옆에 비밀스럽게 있는 기술실에는 물 4톤을 채울 수 있는 물탱크, 정화시설(레인룸의 비는 먹어도 문제 없을 정도의 수질이다), 캐비닛 두 개 크기의 컴퓨터가 있다.

‘레인룸’은 런던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트 그룹 랜덤 인터내셔널이 만들었다. 사진은 랜덤 인터내셔널의 작가 플로리안 오트크라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레인룸에 들어갔지만, 비를 홀딱 맞고 말았다. 류소영 큐레이터는 “사람 사이의 간격이 1.8m 이내로 좁거나,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경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을 한 사람으로 인식했다가 흩어지면 컴퓨터가 혼란을 느끼는 것이다. 또 사람을 인지하는 데 1, 2초 정도가 걸리므로 걷는 방향으로 팔을 미리 뻗은 뒤 나아가고 천천히 걷는 게 좋다. 10분에 12명으로 관람 인원을 제한한 건 그래서다. 연인끼리도, 사장과 수행비서라도, 부모와 자식 관계라도 레인룸 안에서는 홀로 다녀야 한다. 류 큐레이터는 그래서 “레인룸은 내게는 사색의 공간이었다”며 “비를 맞는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이 방에서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누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니 레인룸에서 비를 맞든, 맞지 않든 무에 그리 중요할까. 오트크라스는 “우리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 환경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반추하고 싶어 레인룸을 만들었다”며 “그러나 관객들이 어떤 선입견도 없이 레인룸에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레인룸 전시는 내년 1월 27일까지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의 특성상 온라인 예매(www.busan.go.kr/moca)를 해야만 관람할 수 있다.

부산=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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