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8월 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였다. 2009년 우리는 전직 대통령이 슬픔 속에서 세상을 떠나는 걸 목격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모습이 마치 그분 삶의 전부인 듯이 회상한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그런 모습으로만 기억되어선 안 되는 현대사적 인물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월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김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이 요구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수행하고, 그와 함께 복지국가 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두 작업은 오늘날 대한민국 복지국가 시스템의 빛과 그늘로 연결된다.
복지국가와 관련하여 김대중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사회보장 제도를 시혜적 조치가 아닌 ‘권리’의 관점에서 개편했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나라는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이 빈곤 상태에 있더라도, 그가 장애나 인구학적 기준(18세 미만, 65세 이상)을 충족하지 못하는 이상 사회보장의 수혜 대상에서 제외했다.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기업 등에서 일하여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걸 전제한 것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기간 동안 많은 기업과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이 시스템이 대량 실업과 빈곤층의 생활보장에 불충분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통령은 인구학적 기준을 폐지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새로 제정하여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두 번째 업적은 4대 사회보험(산재보험, 건강보험, 연금보험, 고용보험 등) 체제를 정비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안전망의 기틀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김 대통령은 여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국가 단일 건강보험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국민연금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특히 국민연금의 확대는 자영업자 등 비공식 영역의 900여만명을 가입시키는 큰 작업인데도, 집권 1년 차에 결정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사회보험 제도는 김 대통령의 결단과 추진력, 그 과정에서 애쓴 정부 관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부가 정책 실행 주체로서 사회보장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1999년 의약 분업 실시 과정에서 의료계 휴폐업 사태가 벌어지고, 관련 부처가 의사협회, 약사협회, 시민단체 3자와 의약 분업 방안에 합의하고 정부에 건의하는 형식으로 일을 진행하자, 김 대통령은 이를 크게 질책했다고 한다. 정부가 정책 실행 과정에서 빗겨나 있으면 안 되고 스스로 실행 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도서출판 삼인, ‘김대중 자서전’). 이런 대통령의 책임감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의료 체제는 이해관계자의 반발을 극복하고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복지국가와 관련한 가장 큰 과제가 김대중 대통령의 재임 기간 동안 싹텄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된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시작된 노동 유연화 정책은 그 후 10여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로 인하여 비정규직, 하청 근로자, 영세 자영업자 등과 같은 비공식 고용이 확대되고, 이들은 사회보험의 보호로부터 배제되었다. 이러한 사회보험 사각지대 문제는 지금 플랫폼 노동 영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노동의 현실에 맞는 사회보험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우리 세대가 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위기 속에서도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김대중 대통령의 고민과 결단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혁신 과정에서 반발과 부작용이 있었지만, 김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기존 패러다임의 전환 또는 비공식 영역에 대한 사회보험의 확대는 항상 이해관계자의 반발과 기술적 어려움을 야기하지만, 복지국가의 기틀은, 지도자 및 정책 참여자들의 사명감과 용기가 이를 압도할 때 정립될 수 있는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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