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준 룰루랩 대표
“트러블이나 붉은 부분은 별로 없네요. 하지만 모공이 넓은 편이고 나이에 비해 주름과 피지가 많은 편이어서 따로 관리가 필요하겠어요.”
피부과 의사의 말이 아니다. 인공지능(AI) 비서가 내린 진단이다. 스타트업 룰루랩이 개발한 AI 피부관리 비서 ‘루미니’는 피부 상태를 점수까지 매겨가며 분석한 뒤 필요한 화장품이나 관리방법을 추천해 준다.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사내 벤처로 성공 가능성을 입증 받아 룰루랩을 설립한 최용준 대표는 손바닥 만한 피부 상태 측정 기기와 측정치를 분석하는 AI 솔루션을 결합해 루미니를 만들어 냈다. 단 한번의 촬영으로 주름, 색소침착, 붉은 정도, 모공, 피지, 트러블, 유ㆍ수분 등 7가지 항목 상태를 점검하고 결과에 맞는 제품이나 관리법을 제공한다.
룰루랩은 이제 막 2년 3개월이 지난 신생 벤처기업이지만 루미니는 올리브영 등 국내 뷰티 편집숍과 백화점으로 출근해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의 피부를 봐주고 있다. 사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스타’다. 유럽 내 약 5,000개 매장을 보유한 약국 체인 ‘유니파르코’와 계약하고 연간 1억명이 방문하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몰에 입점하는 등 11개국에 진출했다. 최근에는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모회사 LVMH그룹이 혁신 기업으로 선정해 현재 해외 진출, 기술 협력 등을 논의하고 있다.
◇영상처리ㆍAI 알고리즘, 피부를 읽다
루미니에 들어간 대표적 기술은 영상처리와 AI 분석 알고리즘이다. 루미니 기기를 얼굴 앞에 들고 있으면 영상으로 얼굴 전체를 촬영하면서 빛을 쏴 반사되는 비율 등을 기반으로 피부 안쪽의 정보까지 끌어낸다. 청진기처럼 얼굴에 갖다 대는 방식이 진단 범위가 제한적인 기존 피부 진단 기기와 가장 큰 차별화 포인트다. 최 대표는 “기존 방식은 갖다 댄 부분만 분석하기 때문에 다시 분석할 때 연속성도 떨어지고 전체적인 진단이 어려워 헬스케어 가치를 실현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설명했다. 루미니는 전체 분석을 주기적으로 받을 수 있어 피부 상태 변화 추이, 피부가 좋아진 원인 분석, 잘 맞는 제품 등을 알아낼 수 있다.
분석 알고리즘 고도화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피부를 스캔할 땐 같은 사람이라도 조명 등 환경에 따라 색, 빛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아 분석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데, 이 변수를 자동 조정하도록 알고리즘을 구현했다. 사람마다 얼굴 부위별 면적이 다르지만 일일이 부위를 알려줄 필요 없이 AI가 스스로 파악해 부위별 피부 항목을 구분ㆍ분석한다.
이렇게 똑똑한 알고리즘이 가능한 이유는 충분히 확보해 둔 ‘피부 데이터’ 덕분이다. 현재 룰루랩이 확보한 피부 데이터는 총 20만여건이다. 20만여명의 피부 데이터를 국가별, 인종별, 나이대별로 축적해 둔 것이다. 여기에 기본 데이터가 많을수록 알고리즘 연산이 더 정확해 지는 ‘딥러닝’ 기술을 적용했다. 피부과 전문의의 분석과 비교해 정확도가 95% 이상이라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지금도 루미니가 설치돼 있는 장소에서는 한 곳당 하루 300여명의 피부 데이터가 계속 쌓이고 있다.
최 대표는 “루미니는 스캔과 분석, 추천 3단계로 진행되는데, 추천도 단계별로 7가지 항목이 있다”며 “클렌징, 토너, 에센스, 모이스처라이저, 아이크림, 스페셜케어, 선크림 등 보통 화장할 때 거치는 단계별로 필요한 제품 등이 추천된다”고 말했다. 그는 “올리브영 매장이 우리나라에 1,000개”라며 “어떤 제품이 어떤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지 통합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매장도 방문 고객 연령, 적정 제품 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피부분석 넘어 질병 예측까지
루미니는 뷰티와 관련된 많은 것들을 바꾸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K-뷰티’가 열풍이긴 하지만 ‘한국 화장품’이란 막연한 이미지만 있을 뿐 특정 제품에 대한 인지도는 부족한 상황인데, 루미니가 해외 판로 개척과 개별 브랜드 인지도 상승의 통로가 되고 있다. 두바이몰에 설치된 루미니가 한국 화장품을 추천해 주고 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피부과로부터 협업 제안이 잇따르는 것도 고무적이다. 루미니가 전문가의 역할을 대신해 피부과 의사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직접 수행할 때 비효율적인 부분들을 개선해 주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아직 병원은 수작업으로 정리하는 경우가 많아 담당자가 이직하거나 그만두면 고객 정보까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요즘에는 자기만의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피부과 의사들도 많아져 루미니 솔루션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에스테틱에서도 투명하지 않은 가격 등 ‘바가지 비용’을 걱정하는 소비자들이 많은데 객관적인 데이터로 다가감으로써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룰루랩의 비전이 “인류 삶의 질 발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생명공학 전공자인 그의 원래 관심사는 유전자 정보와 질병 사이의 상관관계였다. 최 대표는 “질병에 걸리면 가장 먼저 초기 증상이 피부에 나온다”며 “피부 온도, 홍조, 색소 등 변화가 많이 일어나는데 전 세계 어느 병원도, 어느 화장품 회사도 피부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더라”고 말했다.
피부 데이터를 쌓기 시작하고 이를 분석하는 솔루션을 개발해 낸 건 그가 이루고자 하는 최종 꿈 ‘인류가 질병으로부터 더 안전해 지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첫 발이다. 지금은 개발과 운영 비용 등을 감안해 화장품과 관리법을 추천하는 기업간거래(B2B)만 하고 있지만, 곧 누구나 루미니를 집안에 들이는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B2C)로 확장시켜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한 뒤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로 진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최 대표는 “5년 정도 시간이 지나 나라별로 최소 100만개 이상의 피부 데이터가 쌓이면 화장품뿐 아니라 건강기능 식품을 추천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피부 데이터와 생활 습관, 건강 데이터로 질병을 예측하는 솔루션까지 나아가는 게 룰루랩의 청사진”이라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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