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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 설립자에 잔여재산 준다는데… ‘폐교 먹튀’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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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 설립자에 잔여재산 준다는데… ‘폐교 먹튀’ 어쩌나

입력
2019.08.16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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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 무더기 폐교 위기에 ‘자발적 퇴로’ 방안 검토 

 입학정원이 지원자보다 많아져 2년 내 최대 38개교 폐교 예상 

 공공재 학교법인을 사유 재산 인정… 정부가 경영 잘못을 덮어주는 셈 

서남대 학생들이 2017년 8월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학교 정상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서남대는 지난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 당시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았지만 법인 비리 해소 및 구조조정 등 정부가 요구한 과제를 이행하지 못해 결국 지난해 2월 폐교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남대 학생들이 2017년 8월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학교 정상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서남대는 지난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 당시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았지만 법인 비리 해소 및 구조조정 등 정부가 요구한 과제를 이행하지 못해 결국 지난해 2월 폐교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정부가 사립대학이 자진 폐교하면 설립자가 잔여재산을 일부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무더기 폐교’ 사태가 닥치기 전에 퇴로를 마련해 줘, 대학이 자발적으로 문을 닫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는 원칙적으로 공익법인, 즉 공공재인 학교법인을 사실상 설립자의 사유재산으로 인정해주는 특혜라는 지적이 많아 논란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지난 6일 ‘대학혁신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사립대학 학교법인 해산 시, 잔여재산의 일부에 한하여 귀속주체의 범위를 완화하는 등 자발적 퇴로(자진폐지) 유도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사립학교법에는 별도 정관이 없을 경우 잔여재산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 귀속하도록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설립자도 남은 재산을 일부 가져갈 수 있도록 이 범위를 완화하겠다는 의미다. 임용빈 교육부 사립대학정책과장은 “2024년에는 대학 입학정원보다 학생 수가 12만명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교육부가 강제 폐교했을 때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고려하면 선제적으로 퇴로를 열어두는 것도 좋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마땅한 퇴로가 없다 보니 운영이 어려운 대학도 자발적 폐교 대신 버티는 쪽을 택하고 있다는 게 교육부의 생각이다. 실제로 2000년 처음 폐교 대학이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문을 닫은 대학은 총 16곳뿐이다. 전체 대학 수가 372곳(2019년 기준)임을 고려하면 미미한 숫자다.

해당 내용은 지난 2016년 6월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대학구조개혁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도 담겼다. 하지만 당시 야당인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사학에 대한 지나친 특혜라며 강하게 반대, 더 이상 논의되지 못했다.

정부가 방향을 급선회한 배경은 학령인구 급감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교육부에 따르면 당장 내년인 2020년부터는 대학 입학정원(49만7,218명ㆍ2018년 기준)이 처음으로 입학가능자원 47만9,376명보다 많아진다. 정부는 지난해 8월 국회 교육위원회 업무설명 자료집에서 2021년까지 최대 38개 대학이 폐교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구원 기자
박구원 기자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거 10년 동안 사립 초중고를 대상으로 설립자에게 남은 재산을 돌려주도록 했을 당시 100여개 학교가 자진 폐교하는 등 효과를 봤다”며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는 1997~2006년 고등학교 이하 사립학교에 한시적으로 사립학교법 특례(해산 및 잔여재산귀속에 관한 특례)를 적용했었다.

반면 이런 법안은 근본적으로 학교가 공공재산이라는 원칙에 위배되는 만큼, 반대 여론도 적지 않다. 황희란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학교법인은 공적인 재산인데다 국내 대학의 경우 설립자의 기여보다는 학생 등록금 등 민간 재원으로 몸집을 불려온 게 크다”며 “경영을 잘못해서 폐교가 됐으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사립 초중고와 달리 대학은 자산규모가 훨씬 큰 만큼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설립자의 ‘먹튀’ 가능성도 제기된다. 방정균 ‘사립학교 개혁과 비리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대변인(상지대 한의예과 교수)은 “교육부가 이를 허용하면 운영이 어려워진 사학재단과 지방대는 경영 개선 노력을 하기 보다는 잔여재산을 가져가기 위해 일부러 폐교를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며 “교육부는 설립자의 퇴로보다는 폐교 대학의 학생이나 교수를 위한 대책을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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